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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각에 깊이 따위는 없다

뇌과학과 인지심리학으로 해석한 생각 <생각한다는 착각>
등록 2021-10-10 16:36 수정 2021-10-11 02:07

인간의 신념과 선택적 행동은 깊은 생각의 산물이라는 게 통념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그 후학들은 얼핏 이해되지 않는 행위와 심리도 정신분석을 통해 드러나는 ‘무의식’의 세계에 뿌리가 닿는다고 봤다. 20세기 심리학계를 풍미한 단어 연상과 꿈의 해석, 심리치료와 행동실험, 생리적 반응 기록, 뇌 영상 연구의 목표도 인식의 표면 아래 숨어 있는 감정과 동기, 신념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영국의 인지과학자 닉 채터는 <생각한다는 착각>(김문주 옮김, 웨일북 펴냄)에서 “(인간의 마음에) 뒤틀린 무의식이라든지 우리의 생각이 뚫고 나오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감하고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인간 정신의 내적 심연은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상이며 우리 마음은 지극히 평면적이고 얄팍하다는 것이다. 책의 원제가 ‘마음은 납작하다’(The Mind is Flat)이다.

지은이는 최근 몇십 년 새 눈부신 발전을 이룬 인공지능(AI)을 예로 든다. 방대한 빅데이터와 광속 연산을 통해 스스로 개선하는 능력을 갖춘 기계학습(머신 러닝)은 특정 분야에선 인간을 능가하는 수준까지 왔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을 추출하고 체계화해서 인공지능을 창조하려는 프로젝트는 실패하고 있다. ‘우리가 말로 하는 직관적 설명이 구체화돼야 한다는 가설’이 틀렸기 때문이다. “각자의 선택과 행위에 대한 설명과 정당화는 임시변통적이고 잠정적이며 즉석에서 만들어진다.” 예컨대 ‘세금 인상이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 아니면 손해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는 어느 쪽 답변이든 나름의 논증을 곧장 그럴듯하게 ‘날조’할 수 있다.

프로이트가 <꼬마 한스와 도라>에서 한스가 쓰러진 말을 보고 공포심에 사로잡힌 것을 ‘아버지 살해와 친모 상간 욕망’이라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해석한 것을 두고도 지은이는 “문학적 창작과 심리학을 혼동”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말의 눈가리개=아버지의 안경’ ‘말의 재갈=아버지의 콧수염’이란 해석은 “혁신적이고 매혹적인 이야기꾼”인 프로이트가 과학의 영역에 신화와 문학을 적용했다는 지적이다.

지은이는 인간의 뇌를 ‘즉흥시인’에 비유한다. 뇌는 시시각각 맞닥뜨리는 정보들의 다양한 조각을 잇고 통합해 그 순간 가장 타당한 행동을 선택하는 엔진이다. 뇌의 작동과 인간 행동이 불합리하고 멍청한데도 첨단과학이 생물학적 컴퓨터인 뇌를 따라잡지 못하고 인간이 가장 영리한 생명체인 것은 모순 아닐까? 지은이는 뇌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놀라운 유연성에서 답을 찾는다. “인간 지성의 비결은 제대로 구조화되지 않고 절대 예상치 못한, 매우 가변적인 입력물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능력”에 있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충당하고 변형해 자유분방하게 이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며,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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