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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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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내수공업하는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며

축제와도 같은 순간을 선사해줬던 작품 <그녀의 심청>
등록 2021-07-17 16:43 수정 2021-07-20 22:00
<그녀의 심청> 최종판 단행본 표지 구성. 위즈덤하우스 제공

<그녀의 심청> 최종판 단행본 표지 구성. 위즈덤하우스 제공

웹툰 단행본은 편집자 한 명이 최소 두 달에 한 권을 내는 숨 가쁜 사이클로 돌아간다. 덕분에 웹툰 편집자로 지낸 5년이라는 길고도 짧은 시간 동안, 판권지에 내 이름이 달린 단행본은 15종 50권이다(세상에… 나 정말 소처럼 일했구나). 그간 출간한 책들을 떠올릴 때면 편집 과정의 괴로움과 출간 이후 성취감이 동시에 밀려오는데, 그런 책 가운데도 유독 내 마음에 오래 남아 ‘그래, 내가 그 맛에 여태 이 일을 붙잡고 있는 거지! 힘내자!’ 하고 주먹을 불끈 쥐며 기합을 넣는, 축제와도 같은 순간을 선사해줬던 작품이 있다.

2019년 봄, 당시 속한 부서의 상반기 주요 업무 목표 중 하나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웹툰 단행본 펀딩을 1회 이상 여는 것이었다. 작고 소중한 우리 팀의 인원은 총 3명, 그중에서도 막내인 나는 맨 마지막 차례였다. 분명 그랬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텀블벅용 한정판 단행본의 기획안과 굿즈(기념품)를 구상하고 있었다. 선배들이 준비한 작품이 여러 이유로 펀딩이 불발되면서 팀 막내인 내가 총대를 메게 됐다.

텀블벅을 진행한 내 담당작은 웹툰 <그녀의 심청〉(사진). 이 작품을 선정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백합 장르’(여성 간의 연애와 우정을 다룬 작품)임에도 웹툰 플랫폼 저스툰(현 코미코)의 간판 작품으로 이름을 날렸고, 작품에 대한 독자의 애정과 충성도가 매우 높았으며, 활발히 트위터 활동을 하는 인기 트위터리안인 웹툰 작가님의 성향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펀딩 소식이 빠르게 전파되는 텀블벅의 특성과 시너지효과를 낼 것이라 기대했다.

지금이야 텀블벅에서 웹툰 단행본 펀딩이 활발하게 진행되지만, 당시만 해도 웹툰 단행본이 성공한 경우가 손에 꼽힐 때였다. 그래서 팀 프로젝트의 첫 타자가 된 것이 무척 기대되고 설레었다… 는 건 거짓말이고! 사실은 크라우드펀딩 관련 지식이 하나도 없어서 준비하는 동안 긴장감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하나하나 가내수공업을 하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준비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몇 개 꼽자면, 먼저 텀블벅용 한정판 단행본이던 <그녀의 심청: 스페셜 에디션〉의 기획안을 작성, 편집할 때다. 웹툰 작품에 대한 코멘터리북이 국내에 거의 없어서 완전히 새로운 책을 만든다는 개념으로 기획해야 했기에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먼저 총 80화로 완결된 작품의 회차별로 명장면, 명대사를 꼽아서 한 꼭지씩 정리했다. 작가님들께는 회차별 코멘터리를 작성해주십사 부탁드렸다. 그리고 캐릭터 가상 인터뷰라는 코너를 만들어 잡지 인터뷰처럼 캐릭터들을 인터뷰했고, 작품 초기 구상 단계를 소개하는 코너를 만들어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려 했다.

그리고 웹툰 편집자의 숙명과도 같은 존재, 한정판 굿즈를 만들고 제품 사진을 찍을 때도 좌충우돌이었다. 작품에 나오는 ‘운명의 붉은 실 팔찌’와 똑같이 생긴 팔찌를 제작하기 위해 주말에 여러 업체를 방문하고, 팔찌 샘플을 만들고, 작가님께 보여주며 태슬(여러 가닥의 실)을 달지 말지 1시간 동안 토론하고…. 제품 사진을 찍을 때는 같은 팀 과장님과 함께 팔찌를 차고 개량한복을 입은 채 직접 모델로 나서기까지 했다. 이외에 작가님들을 모셔다가 회의실에 감금해놓고(?) 2시간 동안 단행본 세트케이스 300장에 친필 사인을 부탁한 일부터 새벽까지 사무실에 혼자 남아 단행본 교정교열을 보던 일까지, 참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대망의 펀딩 오픈일. 페이지를 열자마자 놀라운 속도로 모금액이 차올랐다. 목표액이던 1천만원은 30분도 되지 않아 달성됐다. 그리고 한 달 뒤, 펀딩은 1억원이 모이며 성황리에 종료됐다. 그때의 기쁨과 보람은, 앞으로도 나를 웹툰 곁에, 책 곁에 계속 머물게 할 것 같다.

유선 디앤씨웹툰비즈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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