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수 브이로그들.
“백수 되면 백수 브이로그 찍으려고 했는데 졸업 전에 레드오션 돼버렸어.” ‘실업급여 중독기’를 쓰던 몇 달 전, 트위터에서 본 말이다.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즈음 나 역시 ‘백수 브이로그(video+blog·일상을 찍은 동영상 콘텐츠)’만 찾아 봤는데 장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았고 이 중 몇몇 유튜버는 구독자가 몇십 만을 넘기도 했다.
‘40대 백수 브이로그’ ‘31살 탈모 빚 1800 옥탑방 자취 고정 수입 0’ ‘미혼 독거 노처녀 일상 비혼주의자 불안한 미래’ ‘흙수저 백수 지방대 아싸 히키코모리 우울증 생일’…. ‘백수 브이로그’를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제목들이다. 공통된 특징이 있다. 많은 나이, 백수, 좁은 집, 빚, 가난, 평균 이하 외모, 질병 등 선뜻 드러내기 힘든 처지를 앞다투듯 나열하는 식이다. 보통 누군가와 일상을 나눈다고 할 때,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드러내지 않는 형편들이라는 점에서 놀라웠다. 브이로그형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만 봐도, 안 그래도 멋진 연예인들이 일상까지 멋지게 보여주기 바쁘니까.
백수 브이로그의 내용은 기존 브이로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에 이부자리에서 일어나고 식사 메뉴를 고민하고, 먹방을 보며 밥을 먹고, 식후 커피를 마시고, 산책하고, 씻는 등 말 그대로 일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백수 브이로그는 감성 대신 ‘짠내’가 난다. 라면으로 삼시 세끼를 때우는 법을 공유하고, 고무 다라이에 러시 브랜드의 ‘배스밤’(입욕제)을 풀며 목욕한다. 수도료를 절약하기 위해 물티슈로 몸을 닦으며 샤워를 대체하고 좁은 고시원에서 하기 어려운 ‘홈트’ 대신 동네 놀이터 철봉에 매달린다. 영상 연출은 보정은커녕 조악하다.
백수 브이로그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인기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우선 ‘허세 브이로그 말고 이게 찐 일상이지’ ‘신박하다 신박해’처럼 ‘힙한 감성을 보여준다’는 기존 브이로그 문법에서 벗어난 점에 재미를 느끼는 반응이 있었다. 대부분은 ‘왜 이렇게 짠내 나는 원룸살이 공감 가냐’ ‘사는 게 힘드니까 이상하게 힘든 사람들 찾아보네’ 등 공감하고 응원하는 내용이었다. 그냥 공감이 아니라, 백수 브이로그의 제목처럼 자기 처지를 밝히며 공감하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30살 백수 노스펙 고졸입니다. 나 같은 사람도 많아요…’ ‘저도 고시원은 아니지만 조그만 원룸에서 10년째 혼자 살고 있는 희귀질환 환우입니다’ ‘저는 39살 편돌이입니다. 젊었을 때 사업을 크게 하려다가 망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등등. 콘텐츠에 대한 감상이나 평가 위주인 다른 유튜브 영상에선 잘 볼 수 없는 반응이었다.
고시원에서 평수를 넓혀 이사한 원룸에서 세련되지 않아도 취향껏 꾸민 인테리어를 보여주는 ‘랜선 집들이’를 하고, 방 안으로 들어온 무지갯빛에 손을 대 팔찌나 반지를 만들어 노는 모습을 보며 일상이란 그냥 있는 그대로 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백수 브이로그 댓글 가운데 마음에 걸리는 반응도 있었다. (계속)
도우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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