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불가능 노동자가 되라.” 랜선 사수들이 말하는 요즘 시대의 ‘일잘러’(일 잘하는 사람)다. 회사가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결국 나 자체가 경쟁력을 갖춘 대체불가능토큰(NFT·Non-Fungible Token)이 되라는 거다.
그리고 ‘나’라는 토큰을 한 종목에 투자하지 말라고 한다. 그 종목이란 ‘상사’다. 미국 미래학자 제이슨 솅커는 <코로나 이후 불황을 이기는 커리어 전략>에서 ‘상사라는 리스크’를 오래, 깊게 생각하라고 당부한다. 상사 리스크란 상사가 우리를 해고하거나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이다. 상사가 배움을 주기는커녕 위협이 된 것이다. 상사를 한 명만 두는 것은 ‘저축한 돈을 전부 한 종목의 주식에 투자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식시장이 열리는 시간이 출근 시간인 아침 9시와 같나보다.
솅커는 한 가지 주의점을 덧붙인다. 열심히 배워 다른 직원들을 능가하되, 다른 직원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고. 그는 대규모 콘퍼런스에서 금융예측 전문가로 나서며 “회사에서 요구하는 수준 이상으로 역량을 발휘”해 대체불가 노동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가, 주요 회사 관계자의 심기를 건드렸던 일화를 들려준다. “콘퍼런스에 패널의 연사 중 한 명으로 좀더 작고 눈에 덜 띄는 매킨지 최고 선임위원이 있었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한 거물이었고 나 같은 비교적 풋내기가 기조연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연출하기) 전략일까? 우리가 ‘꾸안꾸’ 혹은 ‘청순하되 섹시하게’라는 모순율을 익히 알듯이, 그것에 도달하기 어려울뿐더러 그렇게 되더라도 지속되기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다.
반대로 대체불가능 노동자가 되지 말라고도 한다. 디자인기업 CBO(최고 브랜드 관리자) 여현준씨는 ‘사일로 효과’(Silo Effect·곡식 등을 저장하는 굴뚝 모양의 창고인 사일로에 빗대어 조직 장벽과 부서 이기주의를 뜻함)라는 개념을 든다. “지식과 기술을 독점하는 개인은 조직과 사회에 결과적으로 해악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의 퍼포먼스를 따라가느라 많은 사람이 철야에 시달리게 되고, 그 탁월함을 가르쳐주지도 않기 때문에 그와의 협업은 성장도 뭣도 아닌 착취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결국 ‘꾸안꾸’ 노동자여야 할 뿐 아니라, 대체불가능 노동자가 되라면서 되지 말라는 얘기다. 랜선 사수님들, 모여서 합의 좀 하고 오세요.
그런데 우리는 점점 ‘강제로’ 대체불가능 노동자가 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사업장마다 노동자를 최소 인원만 남기고 자른 탓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래서 실직이라는 리스크, 상사라는 리스크가 치솟아 더 노동자 대체가 쉬워졌다는 거다. 결국 많은 사람이 랜선 사수의 강의에 학자금을 납부 중이다.
사무실에서 에세이레터 <풀칠> 발행인 이상우씨의 이 문장을 보고 키보드를 몰래 탁, 쳤다. “회사에서 사수는 무관심으로 신참이 사회인의 소프트웨어를 탑재하도록 돕는다. 그 소프트웨어의 이름은 ‘각자도생’이다.”
도우리 작가
*청춘의 겨울: 언론에서 청년문화를 다루는 방식이 ‘봄’이라면 이 칼럼은 ‘겨울’입니다. 지금, 여기, 청년이 왜 데이트앱, 사주, 주식 등에 빠지는지를 서른이 된 도우리 작가가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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