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에 모처럼 진짜 휴식들을 누렸을까? 어떤 사람에게는 추석이 연휴를 틈타 일하기 좋은 ‘가짜 휴식의 날’이다. 연휴에 카페에서 풀타임 근무를 한 나를 포함해, 일하거나 휴식도 일처럼 하려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다.
나는 올해 추석에 가족을 못 만났다. 따로 사는 가족 중 막내가 코로나19에 재감염돼서다. 그래서 엄마는 장 보거나 전을 부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이번 추석이 그간의 가족 모임에 대한 거리두기 제한이 풀리고 처음 맞는 명절인 만큼, 가사와 육아노동에 시달린 여성이 얼마나 많았을까.
나는 추석 연휴에 프리랜서 업무로 들어온 프로젝트 노동을 하다가, 어학원에서 일하는 친구를 보러 갔다. 어학원 바로 앞 ‘가짜 커피’ 브랜드 카페에서 친구 취향의 시럽을 추가한 아메리카노를 사서 들어갔다(‘가짜 커피’ 브랜드란, 하루에도 몇 잔이고 들이켤 수 있도록 아메리카노 가격만큼 모든 음료 가격이 저렴한 브랜드를 말한다). 어학원 홀에 들어서면서 친구에게 오두방정을 떨며 인사하려다 입을 손으로 황급히 막았다. 연휴인데도 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방문한 사람에게 주는 어학원 기념품이라며 봉투를 건넸다. 강의 할인권과 비타민C 음료, 공책 그리고 비알코올 ‘가짜 맥주’가 들어 있었다. 어떤 마케팅 담당자 아이디어인지 몰라도 정말 센스가 있다.(이 마케터는 연휴에 쉬었기를 바란다. 내가 아는 마케터는 연휴에도 일했다.) 가짜 맥주는 마실 때 취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다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어 죄책감을 제거할 수 있으니까. 취업 준비 노동에도 가짜는 필수다. 건너 건너서는 연휴에도 대학원 수업이 열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학업 노동, 강의 노동을 한 사람들에게도 연휴는 필수다.
친구들을 만나고 귀가한 날 밤, 풀타임 알바를 앞두고 좀처럼 잠이 안 왔다. 이날만큼은 어떻게든 쉬려는 사람들이, 연휴에도 영업 중인 카페를 찾아 좀비처럼 몰려들어서 바락바락 진짜 커피를 마시려 한다는 걸 아니까. 진짜 커피의 특징은 진짜 비싼 디저트를 곁들인다는 거다. 파스타 가격의 아이스크림 크로플 주문이 계속 들어왔다. 손님들이 겨우 누리는 진짜 휴식에 감히 불편을 끼쳐서 안 그래도 밀린 주문에 다시 메뉴가 추가되지 않도록 느글느글한 크로플 연기에 코를 막아가며 몇 번이고 익었는지 확인해가며 굽고, 커피를 내리고, 아이스크림을 뽑고, 쌓인 설거지를 하고, 또 구워댔다. 그날 크로플 기계 손잡이는 부러졌고, 나는 그 손잡이에 맞물린 나사를 조이다 손을 데었다. 돈으로 설명하면 더 와닿겠다. 그날 하루에만 나와 다른 아르바이트 동료 둘이서 거의 70만원 매출을 냈다.
다행히 그날 저녁 잡혔던 프로젝트 회의는 하루 미룰 수 있었다. 대신 내내 잠을 잤다. 단잠이라기보다 다음날 일하려고 미리 자두는 ‘가짜 수면’ 같았달까. 가짜 찾기 놀이를 해보자. ‘가짜 식사’라면? 인간 사료인 시리얼이나 폐기 직전의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는 거. 지난달엔 <가짜 노동>이라는 제목의 책까지 나왔다. 연휴에 간만에 연락한 강사 친구는 자면서도 가르치는 꿈을 꿨다기에, “꿈에서 일한 시간까지 시급을 쳐야 해”라고 했다. 이 농담은 항상 실패가 없다. 모두가 진짜 노동 뒤에 진짜 식사를 하고, 진짜 커피를 마시다가 진짜 퇴근을 하고, 진짜 수면을 하는 날은 언제 올까?
글·사진 도우리 작가
*청춘의 겨울: 언론에서 청년문화를 다루는 방식이 ‘봄’이라면 이 칼럼은 ‘겨울’입니다. 지금, 여기, 청년이 왜 데이트앱, 사주, 주식 등에 빠지는지를 서른이 된 도우리 작가가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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