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구석구석 훑는 시선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남성이 아닌 여성의 시선이다. 뭐가 묻기라도 한 걸까? 그렇다기엔 시선의 궤적이 넓다. 대체로 내 얼굴부터 가슴과 허리, 다리 그리고 다시 얼굴로 돌아와서 내 귀의 피어싱을 바라본다. 이 궤적이 반복되기도 한다. 이 시선의 의미를 정확히 깨달은 건 다른 여성을 똑같이 훑는 나를 발견했을 때다.
그 여성의 몸에서 읽었던 건 단지 겉모습이 아니라 ‘치명의 수준’이었다. 애인 혹은 관심 있는 남성이 있을 때는 그 여성이 그 관계를 빼앗을까봐,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에 그 여성이 들어왔을 때는 자리 혹은 동료들과 쌓아온 친밀함을 그가 가로지를까봐. 요즘 말로 이런 걸 ‘오징어 지킴이’라고 한다. 어떤 남자를 오징어라고 생각하는 나를, 그의 여자친구가 지나치게 경계하는 행동을 뜻한다.
익숙한 구도다. 시어머니, 시누이와 며느리의 관계다. 아들에게 자신보다 며느리가 우선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시어머니는 ‘아들을 빼앗겼다’고 표현한다. 남성적 응시(Male Gaze)다. 남성적 응시란 여성을 대상화하는 가부장적 관점을 뜻한다. 짧은 치마를 입었다고 자신과 자고 싶어 한다고 멋대로 해석하는 게 대표적이다.
여성이 여성에 대해 남성적으로 응시할 때의 공통점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기존 관계와 커뮤니티 관계의 구도를 뒤흔드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미국 인류학자 게일 루빈은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정상 가족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지만, 여기(딸과 아내, 어머니)에서 벗어나는 섹슈얼리티는 억압 대상이라고 했다. 가족을 해체하고 유산 상속 등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자의 숱한 내연녀가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 죽임을 당한 이유다.
내가 구석구석 훑는 여성의 몸은 나 자신이기도 했다. 예전 남자친구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스스로 치마 길이와 네크라인의 깊이를 검열했다. 페미니즘이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자기 몸 긍정주의)의 세계를 알려주었지만 색안경을 벗듯 단번에 여성의 몸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는 건 아니 었다.
보디 포지티브를 위해 주로 네거티브한 방식을 찾았다. 화장품들을 내다 버리고 쇼트커트를 하거나 무조건 편한 옷을 찾았다. 또 미러링으로 남성의 몸을 평가하고, 남성에 대한 성애는 ‘옳지’ 않아 보여 무성애를 지향해봤다. 하지만 내 몸과 더 친밀해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관계의 기초를 유혹이라고 인정하는 믿음, 나아가 자신의 매력을 확신하는 자기 긍정의 힘”(<유혹의 학교>, 이서희 지음)은 언제쯤 감각할 수 있을까? 갑자기 파티를 기획하고 싶어졌다. 치명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두고 치명적인 콘셉트의 옷을 입고 모여 고민을 나누는 ‘치명 파티’. 홀로 치명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망상했던 것들을 구체적인 상상으로 바꿔낼 수 있지 않을까? 설렌다! 일단, 오늘도 퇴근길에 치명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드라마 <마이 네임>(사진)의 한소희에 빙의해 남성들을 때려눕히고, 욕망하고, 권력의 중심을 겨누는 상상을 할 거다.
도우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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