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답장 감사합니다.” 내 일터에서 회신받는 전자우편에 종종 쓰여 있는 말이다. 또 사무실 전화기로 전화가 오면 벨이 미처 다 울리기 전에 곧잘 수화기를 든다. 회사 매뉴얼에 적힌 ‘전화 응대시 전화벨이 2번 이상 울리기 전에 받기’보다 빠른 편인 거다. 그런데 지금 내가 읽지 않은 카톡(카카오톡) 메시지는 592개다. 오, 가장 마지막으로 확인하지 않은 카톡방 메시지는 24일 전에 왔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인지치료를 위해 미국에서 직구한 타이머도 배송되는 데 7일이 걸렸다. 그렇게 쌓인 카톡은 한번에 몰아 읽고 있다. 결국 카톡 프로필 상태 메시지에 이렇게 걸어뒀다. “카톡 답장이 느립니다. 양해 부탁드려요.”
다른 메신저 앱들의 ‘안읽음’ 사정도 비슷하다. 문자 468개, 텔레그램 53개, 당근마켓 17개, 인스타그램 6개, 페이스북 3개(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은 접속 안 한 지 오래여서 그나마 적은 수준이다). ADHD를 앓는 탓이라기엔 나는 정리정돈만큼은 좋아하고, 친구들 안부를 챙기는 편이다. 친구들이 싫은 게 아니다. 막상 만나면 ‘오디오 비우지 않고’ 꽉꽉 채워서 잘 대화하고, 즐겁게 떠든다. 단지 카톡이 두렵다.
5년 전쯤 ‘콜포비아’(Call Phobia·전화 통화 기피)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카톡과 달리 전화는 발신자가 누구인지, 어떻게 답변할지 생각하고 검토할 수 없어 부담스럽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제 콜포비아는 그룹 샤이니의 태민과 키가 방송에서 언급할 정도로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카톡도 부담스럽다는 이야기가 있긴 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 논의가 그러한데, 근무시간 외에 업무 관련 메시지를 받아 사생활과 여가를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래서 메신저 앱들은 발 빠르게 비즈니스용 앱을 개발했고, 최근 카톡은 비즈니스 프로필을 따로 설정하는 기능을 도입했다.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톡(Talk)포비아는 사생활에 대한 문제다.
이 증상은 2년 전부터 시작됐다. 당연히, 사람들과 서서히 멀어졌다. 그 와중에 큰 기복 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지인들도 있는데 답장이 늦거나 ‘안읽씹’(메시지를 읽지 않고 답장하지 않는 것) 상황을 이해하는 이들이라 서로서로 양해해주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려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보다가 ‘요즘 늘어나고 있는 톡포비아’라는 제목으로 2021년에 올라온 글을 발견했다. “별다른 용건 없이 계속 쭉 이어지는 일상톡 나누기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짐 (…) 카톡을 계속하고 있는 게 쉬는 시간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진 듯 (…) 회사 점심시간에 같이 얘기 나눈 주제 ㅎㅎ” 그리고 여기에 공감하는 댓글들. ‘어쩌다 한번 시간 내서 전화하거나 약속해서 만날 텐데 톡으로는 하루 종일 대화하는 기분’ ‘쉬는 시간 방해받는 기분’ ‘카카오 주식은 있는데 카톡은 앱도 안 깔았다’.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카톡은 화장실 오갈 때, 식사 시간, 유튜브 보는 시간에 충분히 할 수 있다. 톡포비아는 단지 물리적 시간이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다. 일종의 마비 상태다. (계속)
도우리 작가
*청춘의 겨울: 언론에서 청년문화를 다루는 방식이 ‘봄’이라면 이 칼럼은 ‘겨울’입니다. 지금, 여기, 청년이 왜 데이트앱, 사주, 주식 등에 빠지는지를 서른이 된 도우리 작가가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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