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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집은 내일이면 어제가 되고

[방 꾸미기 중독기②] 인사도 안 하는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아는 ‘오늘의집’
등록 2022-07-21 01:25 수정 2022-07-21 11:01
필자가 ‘오늘의집’에 올린 방 사진. 파란색 동그라미를 누르면 인테리어 가격과 브랜드 링크로 연결된다. 오늘의집 애플리케이션 화면 갈무리, 도우리 제공

필자가 ‘오늘의집’에 올린 방 사진. 파란색 동그라미를 누르면 인테리어 가격과 브랜드 링크로 연결된다. 오늘의집 애플리케이션 화면 갈무리, 도우리 제공

이케아 카탈로그의 별칭은 ‘인테리어 성경’이다. 오프라인으로 발행했던 카탈로그의 배본 부수가 <해리 포터> 시리즈나 성경에 버금갈 정도로 세계 최대 규모이기도 하지만, 선과 악을 구별하듯 인테리어의 미와 추를 제시하는 역할이 핵심적인 이유다.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오늘의집’의 주요 성공 요인도 집 이미지 덕분이었다. ‘집들이’ 탭에는 몇만 장의 집 이미지가 빼곡하다. 그중에서도 ‘비포 앤 애프터’ 콘텐츠는 인테리어에 대한 욕망을, 그러니까 현재 인테리어가 불충분하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자극한다. 오늘의 집은 곧 어제의 집으로 밀려나고 이용자는 다시 내일, 모레, 글피의 집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성경을 신의 아들 예수가 아니라 그 계시를 받든 선지자들이 썼듯이, 이케아 카탈로그나 오늘의집 콘텐츠는 이용자가 제작한다. 결국 ‘이용자=콘텐츠 데이터베이스(DB) 생산자’다. ‘제품 줄게, 사진 다오!’라는 이름의 마케팅은 헐값에 다량의 콘텐츠를 납품받으려는 전략일 수 있다. 또한 이케아 카탈로그 속 소파에서 차를 마시고, 책상에서 책을 읽는 사람 대부분은 이케아 디자이너이거나 카탈로그 편집 책임자다. 오늘날 집은 모델하우스가 됐고, 각자는 그 사이를 지나는 모델이 돼버렸다.

오늘의집은 언뜻 보면 커머스(상거래) 플랫폼 같지 않다. 메인화면 사용자환경(UI)은 거의 집 이미지로만 구성됐기 때문이다. 그 이미지를 클릭하면 흰색의 ‘+’ 기호가 적힌 작은 파란색 동그라미가 다닥다닥 따개비처럼 붙어 있다. 이 동그라미를 누르면 상품명과 브랜드, 가격까지 뜬다. 우리는 몇 년을 같은 집에 살아도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의 얼굴을 모른다. 혹여 마주치더라도 빠르게 시선을 돌리거나 이웃이 충분히 멀어질 때까지 현관문 앞에서 대기한다. 그런데 이웃집 숟가락 개수를 알던 시대에는 무례했을 행동일 테지만, 이제 사람들은 남의 집을 매일 뚫어지게, 뻔질나게 쳐다본다. 그러고는 브이로거의 집에 나온 조명을 보고 바로 견적을 뽑을 수 있다. ‘150만원이네, 저 만달라키 헤일로 호라이즌 조명은 타오바오 짭(모조품) 아니고 정품 같아 보이니까. 중고로 샀다면 80만원쯤일 테고.’

인테리어는 행복, 휴식, 창의력 등 ‘잘 살고 있다’는 정서까지 점령했다. 오늘의집에서는 ‘자취하고 나서 퇴근 뒤의 삶이 행복해졌어요’ ‘머무는 것만으로도 쉼이 되는 나만의 도피처’ ‘아이의 창의력이 쑥쑥 부부의 바람을 모두 담은 집’이라는 제목은 ‘예쁜’ 집에만 달아주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론상으로는 돈을 모아 서울에 집을 살 수 있는 것처럼, ‘누구나 예쁜 집에 살 수 있다’는 오늘의집이 표방하는 말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적고 소중한 내 예산을 쥐고 ‘다이소-마켓비-한샘·일룸-이케아’ 가구의 위계 사이에서 고민한다. 엄마가 사준 꽃무늬 이불 커버는 바꾸더라도 체리색 몰딩은 사진에 안 나오니 견디는 식으로 타협한다. 그러면 방 전체는 아니더라도 한쪽에 예쁨은 들일 수 있다. 조립가구의 수명과 인테리어 유행 주기가 집 계약 기간보다 짧은 게 문제지만. 삶의 이미지조차 임차 중이다.

도우리 작가

*청춘의 겨울: 언론에서 청년문화를 다루는 방식이 ‘봄’이라면 이 칼럼은 ‘겨울’입니다. 지금, 여기, 청년이 왜 데이트앱, 사주, 주식 등에 빠지는지를 서른이 된 도우리 작가가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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