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포비아’를 이대로 뒀다간 인간관계가 망할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하지? ‘워라밸’을 지키면 되지 않을까? 퇴근 뒤엔 업무용 카톡방 알림을 꺼두고, 비즈니스 계정을 만들거나 아예 업무용 휴대전화를 따로 만들거나. 그런데 푸시 알림이 울린다. ‘고객님이 납부하실 임대료 내역은….’ 연체하기 전 후다닥 은행 애플리케이션(앱)에 접속한다. 그런데 인증서 암호 입력 횟수를 초과했단다. 암호 차단을 풀기 위해 카톡 인증서를 켠다. 무사히 납부하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니 QR체크를 해야 한다. 다시 카톡을 켜서 QR코드를 연다. 이제 음식을 주문하려 메뉴판을 보니 콩나물국밥이 1천원 올랐다. 외식을 줄이자 다짐하고 휴대전화를 켜는데, 마침 카카오쇼핑에서 밀키트 할인을 알려줘 결제한다. 밥을 먹으며 카카오TV에서 인기 뉴스도 잠깐 본다. 이제 지인들의 대화에 답장 좀 해보려는데, 왜 이렇게 지치지? 안부를 굳이 묻지 않아도 중학교 동창이 자신과 똑 닮은 파트너를 만나고, 결혼한 것과 아이 이름이 무엇인지까지 안다. 알고 싶지 않아도 카톡 페이지 맨 상단에 누가 프로필을 업데이트했는지 보여준다. 편리해질수록 톡포비아 증세는 심해지는 것 같다. 카톡의 편리함이 오히려 ‘토크’(talk)의 지분을 점점 빼앗아간다. 관심 들여 대화해야 알 수 있던 것을 너무 쉽게 알려주니까 말이다. 안부를 묻고,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하고, 공감하는 등 대화의 너무 많은 기능을 플랫폼에 외주를 줘버린 것 같다.
카톡은 이제 사적인 대화뿐 아니라 삶에 필요한 전반적인 것까지 점령했다. 카톡 앱에선 온라인 역세권에 사는 기분이다. 이제 카톡 없이 삶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직장에서 퇴근해도 또 다른 벌이로 활동하는 일에 또다시 출근해야 하고, 그러면 다시, 카톡이다. 사무실, 은행과 언론사, 관공서, 온갖 물건과 서비스를 취급하는 매장까지 빼곡하다.
어쨌든 카톡 대화는 점점 편리해지고 있다. 많은 정보를 전시하는 만큼 빠르게 반응하는 기능도 덩달아 많아진다. 웃음과 감사의 손짓은 카카오 캐릭터 이모티콘이 다양하게 표현해준다. 이모티콘으로도 부족하면 ‘짤’을 보내는데, 다른 브라우저로 들어가지 않아도 카톡방에서 바로 검색해서 보낼 수 있다. 감정도 외주를 줄 수 있게 됐다. 1년 전 톡에 대한 감정 표시 기능도 생겼다. 친구가 꼭 읽어보라며 전송한 기사에는 읽지 않고도 ‘하트’ 표시로 간단히 공감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외주 줄 수 없는 대화의 기능은 ‘침묵’인데, 이게 카톡에선 가능하지 않다. 침묵은 단지 답장을 기다리는 상태와는 다르다. 서로의 말을 곱씹는 시간을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일이다. 침묵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란 그만큼 대화의 맥락이 많이 쌓인 관계다. 그런데 메시지 플랫폼들은 상대가 메시지를 읽었는지, 입력 중인지, 실시간으로 접속 중인지, 몇 분 전에 접속했는지까지 알려준다. 미세먼지처럼 온갖 푸시 알림, 뉴스, 이모티콘, ‘좋아요’가 떠돌아다니는 와중에 침묵의 공간을 지킬 방법은 무엇일까.
도우리 작가
*청춘의 겨울: 언론에서 청년문화를 다루는 방식이 ‘봄’이라면 이 칼럼은 ‘겨울’입니다. 지금, 여기, 청년이 왜 데이트앱, 사주, 주식 등에 빠지는지를 서른이 된 도우리 작가가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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