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1827년 출판된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작품으로 1628년부터 1630년까지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지역의 한 약혼 커플이 겪는 시련이 줄거리다. 역사적으로는 밀라노 폭동과 1630년의 페스트(흑사병)가 배경이다. 실존인물과 역사적 사건이 사료로 제시돼 역사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먼 나라 이야기이지만 본당신부가 얽힌 내막은 웃지 않을 수 없다.
약혼자들에게 시련의 시작은 본당신부다. 결혼 당일 돈 압본디오 본당신부가 주례를 설 수 없다고 한다. 지역의 힘센 나리가 약혼녀를 노리면서 결혼을 성사시키지 말라고 불한당을 통해 협박했기 때문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요리조리 핑계를 대어 주례를 거절한다. “자네는 약혼녀를 생각하겠지. 하지만 난 목숨을 생각해야지. 사랑하는 형제여, 자네가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껴도, 난 할 말이 없네. 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
돈 압본디오는 사자처럼 용감한 마음을 지니고 태어나지 못했다. 우리 대다수가 그렇다. 돈 압본디오는 날카로운 발톱과 송곳니도 없으면서 잡아먹히고 싶지 않은 초식동물 처지가 자기 처지임을 일찍 알았다. 귀족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고 용기 있는 자는 더더구나 아닌 자신은 ‘철제항아리 사이에서 함께 여행하는 부서지기 쉬운 점토항아리’라는 것이다. 자신이 몸담은 사제의 고귀한 목적과 의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삶의 방식은 모든 대립을 회피하고, 피할 수 없는 대립에는 굴복하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더 힘센 편을 들었지만, 늘 그 뒤쪽에 서 있었다. 다른 편에 자발적으로 그의 적이 된 게 아님을 피력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그는 큰 재난 없이 60년을 살았다.
본당신부로서 주례를 해야 함에도 왜 하지 않았는지 추기경이 물어도 얼버무릴 뿐이다. 속으로는 추기경이 잔소리가 많다고 생각한다. 추기경이라 하더라도 권세 있는 귀족이 살아 있는 한 총칼과 불한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신부들이 힘없는 자의 편을 드는 건 개가 다리를 꼿꼿이 펴려는 것처럼 쓸데없는 일이라고 본다. 성직자의 위엄을 훼손하고 세속의 일에 간섭하는 것이다. 본당신부의 핑곗거리와 속마음이 그럴듯하다. 무서운 것을 피하고 곤경에서 도망치려는 인간 본능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100여 쪽의 분량으로 1630년 밀라노의 페스트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와 유사하다. 보건 당국은 이상한 열병을 처음에는 페스트가 절대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페스트성 열병이라고 고친다. 진짜 페스트는 아니나 어떤 의미에선 페스트라 할 만하다는 뜻이다. 병이 확정되면 군중은 병의 ‘이유’를 찾는다. 독이나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원인’이라고 지목된다. 맹목적이고 무분별한 공포감 아래 불확실한 의심이 의혹으로 바뀌고, 사람들은 이방인에게 폭력을 가한다. 현재라고 무엇이 다를까.
25만 명이던 밀라노 인구는 페스트가 지난 뒤 6만5천 명이 남았다. 소설의 본 압본디오와 달리, 현실의 신부들은 페스트 시대를 용감하게 살았다. 펠리체 카자티 신부가 격리병원 운영을 맡았고 수많은 사제가 헌신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관리자였고, 고해 신부였고, 요리사였고, 세탁부였다. 펠리체 신부는 페스트에 걸리고 살아남는다. 대부분의 동료 사제는 죽음을 맞이했다. 역사가는 전한다. “이곳에서 수만 명의 환자들이 신부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도시 전체는 전멸했을 것이다.”
최영화 아주대 감염내과 교수
*이번호로 ‘독서방역본부’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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