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화가 나고 분노에 떤다. 다 밉다. 일찍 퇴근하는 사람들이 얄밉고, 가뿐해 보이는 걸음이 보기 싫다. 여행을 갔다 왔다거나 어느 날 친구를 만나 술 한잔했다는 말도 듣기 싫다, 샘이 난다. 화가 치밀고 욱하는 내 마음을 본다. 다 싫다. 내 마음 나도 어쩔 수 없다. 하소연을 퍼부어도 들어주는 친구가 있다면 전화해야 할 시점이다. 이성으로야 어쨌든 견뎌야 한다는 것이겠지만 세상은 넓고 환자는 많으며 코로나19 확진자를 진료하는 의사는 적다.
전화를 받은 친구는 “네 안의 책임감이 극에 달한 거지?”라며 살가운 말을 못하는 자신을 대신해 위로의 말을 찾기 위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첫 댓글은 길었다. 코로나19로 최전선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나요? ‘곧 끝날 거야’ 할 수도 없고, ‘고생해라’ 할 수도 없고. 한마디? 정말 힘든 사람에게 말 한마디로 어찌 위로를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런 마음 버리시고, 위로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잘 들어주는 것, 판단하지 않고 비평하지 않고 잘 들어서, 만에 하나 그의 어려움을 내게 덜어줄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지요. 수당 올리고 인원 충원하기, 진심 어린 고마움의 인사말 하기… 줄줄이 댓글이 달렸다. 친구가 나를 위해 위로의 말을 찾는 것을 보니 억울한 마음이 조금 풀린다.
커트 보니것의 단편집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뒤적인다. 몇 장을 넘기니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 나는 현실에서 탈출한다. 울 수 없으니까 웃기는 것이라는 커트 보니것은 언제나 나를 웃기는 데 성공한다. 2081년 모든 사람이 마침내 평등해졌다.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똑똑하지 않고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잘생기지 않았다. ‘평등을 위한 핸디캡 부여 사령부’가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이다.(‘해리슨 버저론’) 수없이 떠들어대는 노인에게 이 개보다 머리 나쁜 사람아, 입 좀 다무는 게 어떻겠나라고 넌지시 비튼다.(‘톰 에디슨의 털북숭이 개’)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방음이 안 되는 집에서 혼자 있는 아이가 옆집 부부 싸움을 말리려 라디오에 화해를 신청했는데 총성이 난다.(‘옆집’) 미국령 독일 마을에서 수녀들이 돌보는 고아 흑인 아이가 아빠를 찾아 나서는 2차 세계대전 이야기도 있고,(‘난민’) 미국과 소련의 우주선 틈바구니에서 유인 미사일에 실려 죽어야만 했던 두 나라의 아들들을 애도하는 아버지들의 애틋한 편지도 있다.(‘유인 미사일’) 커트 보니것의 반전 의식이다. 우주 전자파로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기계가 있다면 사겠는가? 어떤 문제가 있을지 모르는데?(‘유피오의 문제’) 영생의 약이 싸게 공급돼 사람들이 아무도 죽지 않을 때는 몇 세대가 같이 살아야 하는 집보다 유치장이 도피처가 될 수도 있다.(‘내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
특별한 연애 이야기부터 현실 비판, 풍자, 기발한 상상력과 비틀기가 여기저기 있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그래 오늘도 무사히 갔네, 이만하면 운이 좋았어, 아직은 견딜 만하다고 느낀다. 글의 무엇이 화가 난 나를 건졌을까? 나는 왜 그의 글에서 늘 건져지는 것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최영화 아주대 감염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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