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팔레스타인 여성이 2025년 3월19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에 있는 도시 칸유니스에서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폭격에 의해 무너진 천막 현장을 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이 또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였다. 2025년 3월18일(현지시각) 점령지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역을 무차별 공습했다. 최소 400명이 넘게 살해당했다. 사상자 상당수는 여성과 어린이다. 이것은 분쟁이 아니다. 동등한 두 당사자의 싸움이라 할 수 없다.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서 건국을 선언한 이래로 80년 가까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지속해서 괴롭히고 있는 이스라엘의 침략이자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이다. 이런 점령자 이스라엘을 감싸는 나라가 세계 1위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아랍인 집단살해를 정의(올바른 도리)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미국은 2001년 10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때 9·11 테러 주범 알카에다의 거점 제거와 함께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으로부터 이슬람 여성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정당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학살 행위를 ‘테러와의 전쟁’으로 포장한다. 그러면서 ‘퀴어(성소수자) 친화적인 나라’로 이미지를 세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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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침략과 정복, 학살을 일삼으며 인권을 짓밟고 평화를 해치는 이스라엘과 미국을 비판하는 아랍 페미니스트 단체가 있다. ‘거북섬’(북미 대륙 원주민이 북미 대륙을 부르는 말)을 거점으로 삼아 활동하는 ‘팔레스타인인 페미니스트 컬렉티브’(Palestinian Feminist Collective·PFC)다. 2021년 공식 출범한 단체로, 팔레스타인 사람을 비롯해 아랍인 활동가 200여 명이 속해 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팔레스타인·레바논계 트랜스젠더 페미니스트 야잔 자자(33) 활동가를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도움을 얻어 2025년 3월18일 만났다.

‘팔레스타인인 페미니스트 컬렉티브’에서 활동하는 팔레스타인·레바논계 트랜스젠더 페미니스트 야잔 자자 활동가가 2025년 3월18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자자 활동가는 미국과 이스라엘 등 서구 사회가 가진 ‘젠더화된 이슬람 혐오’를 비극의 원인으로 본다. “이슬람을 폭력적·차별적·억압적인 종교, 문화로 보면서 적대시하고 있어요. 무슬림 남성을 폭력을 일삼는 사악한 자로 묘사하는 반면, 무슬림 여성은 그런 폭력에서 구출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죠. 그렇다고 그들이 무슬림 여성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도 아니에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봉쇄해 구호물자 반입을 막아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빈곤과 기아에 떨게 하고, 검문소와 감옥에서 팔레스타인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저지르고, 산부인과 병원을 파괴하죠. 미군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들과 여아들을 죽이거나 성폭행했어요.”
“강간은 남성 모두가 여성 전부를 두려움의 상태에 가둬두는 의식적 위협의 과정”이라 말한 수전 브라운밀러는, 점령지에 대한 정복군의 행동, 식민지에 대한 제국적 권위의 개입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강간을 말하기도 했다.(책 `성차별주의는 전쟁을 불러온다'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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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만행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성소수자도 그들의 공격 대상이다. 팔레스타인 성소수자가 이성애와 성별 이분법에 부합하지 않는 성정체성을 이유로 가족에게 또는 사회에서 차별받고 혐오 범죄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약점을 이용한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사람들 동향을 감시하고 저항세력 첩보를 수집하기 위해 퀴어 팔레스타인 사람의 취약성을 이용하고 있어요. 가족 구성원이 이스라엘 저항세력에 참여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성소수자에게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또는 에스엔에스(SNS)로 몰래 접근한 다음, 그 가족 구성원에 관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면 ‘네 퀴어 정체성을 가족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식이에요. 이들을 협박해 이스라엘 점령군의 정보원이 되도록 강요하는 거죠. 이스라엘 점령군 검문소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요. 검문소를 통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 휴대전화를 수색하면서 그의 퀴어 정체성이 드러나는 정보를 확인하면 ‘우리 정보원이 되지 않으면 네 퀴어 정체성을 가족에게 밝히겠다’고 아우팅 협박을 하죠. 협조를 거부하면 구타하기도 해요.” 자자 활동가의 말이다.
이스라엘은 이런 실상을 은폐하기 위해 ‘브랜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이미지 쇄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텔아비브를 ‘퀴어 친화적인 도시’로 만들고, ‘하마스와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미국이 테러 조직으로 지정한 단체), 이란은 나 같은 게이(남성 동성애자)를 살해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저는 자유롭습니다’와 같은 문구가 쓰인 광고를 신문에 싣는 방법으로 이스라엘이 성소수자에게 안전한 장소라고 홍보하고 있다. 자자 활동가는 이스라엘이 ‘퀴어 해방’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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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 철폐와 같은 젠더 정의(젠더를 이유로 하는 차별과 억압의 종식) 실현과 집단학살, 식민 지배는 같이 갈 수 없어요. 생존을 위협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 지배와 미국의 제국주의가 계속되는 한 젠더 평등은 이뤄질 수 없습니다. 군사주의(국가의 군사적 통제가 적법하다고 주장하는 신념 체계) 아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 체제는 해방과 자유, 평등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자자 활동가가 속한 PFC는 이스라엘에 의한 집단학살 종식이 최소한의 목표다.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지원하는 모든 형태의 원조를 끝내는 것, 이어 팔레스타인 땅의 완전한 해방, 팔레스타인 주변 국가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으로 추방당해 난민이 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귀환을 PFC와 자자 활동가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팔레스타인 난민은 약 590만 명에 달한다.(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
그런 자자 활동가에게 한반도 분단은 남 일 같지 않았다. 그는 3월18일 비무장지대(DMZ)와 가까운 민간인 통제선(민통선) 지역에 들어가 남북출입사무소가 설치된 도라산역을 방문하고, 미군이 훈련을 받는 곳인 워리어 베이스도 봤다. 민통선 밖에 있는 북한군·중국군 묘지도 찾았다. 자자 활동가와 동행한 사람이 그에게 북한에 있는 이산가족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미국 제국주의,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 아래서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같은 고통(이스라엘의 군사 점령과 봉쇄로 가족이 흩어져 서로 만날 수 없는 일)을 겪고 있어요. 심지어 이스라엘은 사망한 팔레스타인 사람의 주검을 가족에게 돌려주지 않는 일도 많아요. 유가족이 가족을 잃은 슬픔마저 제대로 슬퍼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울 뿐입니다.” 자자 활동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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