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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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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에는 행간이 없다

1년 365일 문 닫지 않으니 틈을 찾기가 어려운 온라인서점
등록 2021-04-17 15:16 수정 2021-04-23 02:18
인터넷서점 알라딘 메인화면 갈무리

인터넷서점 알라딘 메인화면 갈무리

드러나지 않는 부분은 대개 미와 추, 극단으로 엇갈리기 마련인데 후자는 드러나야 마땅한 경우가 다수겠으나, 전자는 언젠가 불현듯 깨달았을 때 향기가 더욱 깊고 진한 터라 애써 당장 드러내지 않아도 뒷맛이 나쁘지 않다. 감춰진 의미를 읽어낼 때 ‘행간을 읽는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숨겨둔 행간을 찾아내는 과정은 독서의 맛과 멋이라 하겠다. 그런데 또 다른 책의 세계 온라인서점에서는 행간을 찾아보기 어렵다. 책을 파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은 언제나 드러내려 애쓰지 감추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별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도 끊임없이 소식을 전하며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쉴 새 없이 알린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온라인서점에서 벌어지는 대부분 일을 시차 없이 확인할 수 있다. 전자상거래업의 본질이자 특성이고 그 덕분에 오늘날 같은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일하는 이들에게는 예상 밖 곤란함을 전한다.

앞서 말한 접근 가능성은 독자뿐 아니라 경쟁사와 거래처, 하물며 팀장이나 본부장 같은 상사에게도 똑같이 열려 있다. 현행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뒤로는 직접적 가격경쟁이 줄어들어 상황이 나아졌지만(물론 그만큼 다른 어려움이 생겼을 거라 짐작하는 게 직장인의 상식이겠다), 할인·쿠폰·적립금이 난무하던 시절에는 경쟁사 상황 점검이 주요 업무였다. 다른 서점에서 더 싸게 판다면 우리 서점을 찾는 독자에게는 손해라는 생각으로, 매일 경쟁사의 구석구석 요소요소를 살펴 격차를 줄이고 한 걸음 앞서 내디디려 애쓰던 시절이다. 어쩌면 자기가 일하는 서점을 둘러보는 시간보다 다른 서점을 둘러보는 시간이 더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미처 알아채지 못한 상황을 상사가 먼저 보고 링크를 건네는 상황은, (그것이 각자의 임무라는 걸 충분히 알지만) 지금 떠올려도 피곤한 일이다.

행간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놀랍게도 대화는 생겨난다. 종종 다른 온라인서점 담당자와 소통하는지 질문받는데, 그것은 정말 드문 일이고 마땅한 기회나 계기가 없는 형편이다.(물론 실제 만난다고 해서 즐겁게 나눌 이야기가 있을지는 다른 문제겠다.) 그럼에도 같은 분야를 맡는 다른 서점의 담당자는 익숙하다. 이름뿐 아니라 상대가 고르는 책의 성격, 같은 책을 다르게 소개하는 시선, 비슷한 시기에 주목하는 주제나 출판사 등, 때로는 합을 겨루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같은 책을 더 널리 알리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시 말해 더 많이 팔고자 하는 마음은 같기에 다름을 감각하고 차이에서 배우는 ‘간접 대화’가 자연스레 쌓이고 우연히 만날 기회가 닿았을 때 오랜 친구처럼 반갑게 ‘직접 인사’를 건네게 된다.

간접적이라도 대화는 아름답다. 그렇지만 행간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행간은 틈에서 생겨날 텐데 1년 365일 온라인서점문을 닫지 않으니 틈이 생길 여유가 없다. 각자가 진행하는 여러 일이 그대로 모두에게 노출되니 틈은 행간이 되기 전에 빈틈이 된다. 그래서 반대 방향으로 틈을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곳보다 빠르게, 다른 곳에서 팔지 않는 책을, 다른 곳보다 멋진 혜택으로. 벌어지지도 않을 서로의 틈에만 집중하다보니 행간을 향하는 틈에는 자리가 없다. 흡족한 책을 맞춤한 방법으로 전하려는 시도, 판매가 충분해도 그저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잠시 머뭇거리며 내용과 맥락을 살피려는 노력이 각자의 행간일 터. (판매자로서) 결과뿐 아니라 (독자로서) 행간에도 충분한 자리가 주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박태근 인터넷서점 알라딘 도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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