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도처럼 쏴 하고 몰려오면 온몸이 전율한다. 파도가 사라진 볼에는 홍조가 남는다. 조금씩 다르지만 자신의 육체를 인지하고, 육체의 ‘동물성’을 자각하고, 뒤따라 상실감이 덮치는 감정적 흐름이 따라온다. “나를 휩쓸고 가는 순간마다 정신은 스스로 그다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진실을 깨닫도록 내몰린다. 내가 필멸하리라는 사실!” 완경 시기에 오는 열감이 일으키는 감상이다. 다시 스타인키가 완경기에 이르러 자신에게 닥치는 열감을 세어나간 것이 <완경 일기>(원제 ‘Flash Count Diary’, 박소현 옮김, 민음사 펴냄)의 시작이었다. 열감은 강의하던 중에, 설거지할 때, 차를 마실 때 무턱대고 덮쳤다.
생명체가 빛을 잃어가는 신호로 여겨지는 완경은, 많은 이에게 질병으로 여겨졌다. 생명의 빛을 얻기 위해, 병원에 간 여성들은 호르몬 투입을 ‘처방’받았다. 호르몬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호르몬 잃은 여체를 “‘노상 변사체’ 취급”한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아니다’에 가깝다. 저자는 ‘신사분’(sir)이라고 두 번 불린 날, 거리의 쇼윈도에 비친 낯선 중성적 인물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새로운 세계로 진입했음을 깨닫는다. “수십 년 동안 이 모든 우주가 나를 대상화하고 있다는 압박감에서 탈출하고자 온갖 방법을 수없이 시도해보았지만 대체로 실패로 돌아갔다. (…) 나는 마침내 약간의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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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트랜스젠더의 호르몬에 의한 성의 변화를 기록한 글을 읽으며, 자신의 완경 경험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이제 호르몬이 수시로 점령하지 않으니 나만의 생각에 힘쓰면서 마음껏 사고를 펼칠 수 있지요”라는 트랜스젠더의 말은 바로 자신의 처지를 대변했다. 그는 자신이 분노를 참지 않고 표출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간의 결혼생활에서 그는 화내기보다 슬픔 속에 보냈다. 소설가 진 리스가 말한 대로 “이 여성은 내가 아니야”라는 느낌을 완경기에 와서 벗어났다. 여전히 연구에서는 이 ‘분노’를 완경기의 특성 중 하나로 ‘과민성 짜증’이라고 명한다. ‘경험’자는 이렇게 ‘분노’한다. “진정한 존재의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분노는 (…) 본질적인 생명의 불꽃이다.”
“이제 그곳을 빠져나온 사람은 보다 광활한 영역으로 나아간다. 과거 유년기를 보내기도 했으며 우리 스스로도 그런 곳이 자신에게 있었는지 잠시 잊어버리기 마련인 바로 그 탁 트인 공간 말이다.”(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무엇보다 이 책은 완경기 여성이 오랫동안의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현명하게 성찰한다는 것의 증거다. 책은 단어를 까다롭게 고르며 번역됐다. 월경을 수치스럽게 여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의미의 일본어에서 유래한 생리 대신 ‘정혈’ 또는 ‘월경’을, 아이가 들어가는 주머니라는 자궁 대신 중립적인 단어 ‘포궁’을 썼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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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선·구형찬 지음, 창비 펴냄, 2만원
지난 500만 년간의 진화는 인류가 감염균을 불러들이고, 이에 맞서 싸운 투쟁의 기록이었다. 말라리아 치료약을 먹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처럼 원시인같이 진화하지 않은 면도 존재한다. 신경인류학자와 인지종교학자가 공동으로 균과 인류가 공진화해온 역사를 살펴본다.

천쉐 지음, 채안나 옮김, 글항아리 펴냄, 1만5천원
대만 퀴어문학의 경전 <악녀서>의 저자가 쓴, 2009년 결혼 뒤 10년간의 레즈비언 부부 생활 이야기. “나를 주욱 포기하지 않아서 고마”운 배우자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글 사이 동성결혼 쟁취를 위한 분투가 섞여 있다. 대만은 2017년 이성 간 혼인제도에 위헌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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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모 만화, 창비 펴냄, 1만7천원
첫 장면, 사려니숲을 거닐던 남자는 사람들이 몰려들자 도망치지만 다가오는 물에 삼켜진다. 세월호 참사에서 학생 20여 명을 구해낸 김동수와 그 가족의 4·16 이후 삶을 그렸다. 김동수는 학생 구출 뒤 어깨 인대 수술을 해야 할 정도지만 남는 건 후회다. 더 구했어야 한다는.

숀 캐럴 지음, 김영태 옮김, 프시케의숲 펴냄, 2만5천원
“이론물리학 박사쯤 되면 양자역학을 겁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인이라면 겁낼 필요가 없다.” 물리학자 사이에는 해석을 놓고 벌이는 의견 불일치가 있다. 그러나 일반인 입장에서 양자역학은 세상에 대한 포괄적인 답을 제시한다. 일반인을 위한 양자역학 해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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