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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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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비효율적으로 즐거운 첫 집

서툴고 허술하면서도 완고한 독립 에세이 <첫 집 연대기>
등록 2021-02-24 01:42 수정 2021-02-24 10:54

“사람이 바뀌려면 사는 곳이 바뀌어야 한다.” 30대 중반 한 남성이 부모와 함께 살던 집에서 독립하기로 한 이유 중 하나는 우연히 본 이 글귀 때문이었다. 저자 역시 독립 판타지가 있었다. 동작대교 서쪽 어느 녹지에 위치하며, 근처에 대학교와 도서관이 있고, 노량진 수산시장이 두루 가까운 집이라는. 예산 1500만원을 갖고 말이다. 그러나 이내 집을 구하는 과정이 “괜찮은 집들이 얼마나 비싼지 알게 되는 과정”임을 알게 된다.

결국 저자는 오래된 단독주택 2층을 얻는다. 놀라운 건 무려 정원도 있고, 차고도 있는 집이지만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5만원이란 점이다. 그 정도로 집이 낡았고, 집 구조도 일반 집과는 달랐으며, 좀 특이한 건물주 할머니가 1층에 산다. 남은 돈 1천만원으로 집을 고쳐 쓰면 되겠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덜컥 계약해버린다. 건물주만 좋은 일 시킨다는 주변인들 말을 듣고서도 말이다. 이쯤 되면 라이프스타일 잡지 에디터가 쓴 책이지만, 인테리어 안목을 기르는 노하우를 풀어내지 않았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첫 집 연대기>(박찬용 지음, 웨일북 펴냄)는 그가 얹혀사는 부모 집에서 나가고(1부 나가기), 집을 고치고(2부 고치기), 채우는(3부 채우기) 과정을 오롯이 담았다.

읽다보면 독자 입장에선 ‘독립을 포기하겠다’거나 ‘고치지 않고 그냥 살라’고 말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매번 계산기를 두드리고, 건물주 눈치를 보며, 온갖 청승을 떨어야 하는 탓이다. 그런데도 비상식적인(?) 그의 선택을 응원하게 된다. 다른 건 몰라도 좋은 바닥을 포기할 수 없어서 이탈리아 타일을 깔고, 책상이 없어 종이 상자 위에서 원고 작업을 하면서도 집 안의 첫 의자는 스위스에서 사온 이야기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 확고한 취향만은 부럽기도 하다. 또 집에 냉장고와 부엌, 세탁기는 물론 텔레비전과 와이파이 없이도 살 수 있음에 놀라고, 나아가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마저 스며든다. 무엇보다 궁상맞고도 치열한 과정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기록해, 읽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저자가 최근 2년 연장 계약을 해 이 집에서 계속 산다고 하지만 또 이사해 새 에세이를 내줬으면 할 정도로.

첫 집을 고치고 채워가면서 “제자리걸음만 하던 삶의 어딘가가 바뀌고 있다는 기분”을 저자는 느꼈다. 그는 택시를 이용하기 어려운 집 위치 때문에 버스를 타고 다녔고, 덕분에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다. 건물주 할머니 눈치가 보이고 번거롭다는 점 때문에 배달 야식도 끊었는데, 덕분에 여드름이 없어졌다. 특이한 건물주와 어려운 관계 속에서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배웠다. 책을 읽다보면 ‘집의 개념이 바뀌고 있는 기분’이 든다. 오직 효율만을 추구하는 이 도시에 이렇게 비효율적이지만 경이롭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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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레이철 시먼스 지음, 강나은 옮김, 양철북출판사 펴냄, 1만7천원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에 비해 학업 성취도가 높아도 자신감은 낮다. 자기 자신을 자기대로 받아들이지 못해서다. ‘넌 뭐든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듣고 자라서 ‘뭐든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소녀에게 줄 메시지는 단순하다. 착한 여자도 강한 여자도 필요 없다. 그 자신으로 충분하다.

아픔은 치료했지만 흉터는 남았습니다

김준혁 지음, 계단 펴냄, 1만8600원

2020년 의료파업의 소통 실패를 저자는 의사 집단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과학을 통해 존립 근거를 마련했기에 소통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의사는 왜 웃지 않나, 의사는 남의 아픔을 느낄까, 의사의 실력은 누가 평가할까 등 도발적인 질문을 한다.

살자편지

정청라 등 지음, 니은기역 펴냄, 1만5천원

자연을 해치지 않으며 에너지를 적게 써 농사짓는 이를 청소년기후행동은 ‘작은 농부’라고 부른다. 작은 농부 아홉 명에게서 온 편지를 모았다. 최성현은 좌충우돌해가며 삼각괭이나 삽으로 1천 평 논밭 농사를 짓는 이야기를, 냉장고를 사용하지 않는 비건인 김미수는 생태부엌에 대해서 들려준다.

검은 노래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1만4천원

1949년 폴란드에서 쉼보르스카는 등단 시집을 준비하지만 출간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1952년 작 시집에도 이 시들은 발견되지 않는다. 시인이 타계한 뒤 2012년 가편집본인 원고가 발견된다. 옮긴이는 제2차 대전 참상에 대한 시가 왜 없었나 하는 의문을 해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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