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희덕
거미불가사리, 닭, 지렁이, 버섯. 나희덕 시인의 신작 시집 ‘시와 물질’(문학동네 펴냄)에 등장하는 비인간들이다. 시인은 취약한 것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그들 대신 말한다. 에코페미니스트 철학자 발 플럼우드, 장애운동가 겸 동물운동가 수나우라 테일러, 생태인류학자 애나 로웬하웁트 칭,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 천문학자 칼 세이건 등이 시인의 여정에 동참한다.
“린 마굴리스는 말했지/ 진화의 가지런한 가지는 없다고/ 가지런한 가지는 생명의 궤적이 아니라고// (…) //칼 세이건은 말했지/ 우리는 아주 오래전 별 부스러기들로 이루어졌다고”(‘세포들’ 부분)
서양 철학이 기초를 닦고 진화론이 발전시킨 서구 남성 백인 중심의 ‘인간’과 ‘휴머니즘’의 관점을 제고하라는 메시지가 뚜렷하다. 시집 전반에 인간이 배제한 비인간 존재의 취약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응답하며 관계 맺기를 강조하는 에코페미니즘 사상이 깔려 있다. 나희덕의 ‘에코페미니스트 선언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절단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거미불가사리’)는 르네 데카르트가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을 확립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뒤집은 것이다. “닭과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닭과 나’)에서 서로 다른 종을 오버랩시킨 시인은 악어에게 붙잡혀 죽다 살아난 플럼우드의 경험을 통해 “먹이로서의 인간”(‘누군가의 이빨 앞에서’)을 표현한다. 인간이 지배한다고 여겨온 ‘물질’의 활기와 능동성을 강조한 측면에서는 신유물론과도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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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비평적 시도 여러 편 담겼다. 제빵공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샌드위치’), 자신의 주검을 수습할 이들을 위해 국밥값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기초생활수급자(‘존엄한 퇴거’)의 모습에서 사회적 비극과 비판의식을 드러낸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당시 국회 앞을 찾은 시인은 여의도광장이 관제 행사 무대를 넘어 “목소리들에 의해 깨어”(‘광장의 재발견’)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 와중에 발을 헛디뎌 다치는 시인의 모습에서 일종의 기시감이 느껴진다. 이 시대에 시는, 시인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 편의 시가/ 폭발물도 독극물도 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수많은 시가 태어나도 달라지지 않는 이 세상에서”(‘시와 물질’)라고 낙담하지만 시인은 현실에 눈감지 않는다. 누가 알랴. 이 시집이라는 물질로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지. 이 시집이 얼마나 강력한 폭발을 일으킬지. 평화로 가는 길이 얼마나 어렵고 숨죽이는 싸움이 될지 예견하는 시 ‘평화의 걸음걸이’에서는 시인의 예지력까지 다시금 발견할 수 있다. 148쪽, 1만2천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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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은 왔으나
이창훈 지음, 삼인 펴냄, 2만5천원
1975년 4월9일, 30분 간격으로 8명의 사형이 차례대로 집행됐다. 4·9통일평화재단의 이창훈 사료실장이 박정희 쿠데타 세력이 자행한 만행 중 첫손가락으로 꼽히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산화한 이들의 삶을 약전으로 재구성했다. 재판기록, 유가족과 관련자들의 증언, 신문기사 등 자료를 수집하고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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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읽는 사람
허태임 지음, 마음산책 펴냄, 1만7천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산림생태복원실에서 사라져가는 식물을 지키는 연구와 훼손된 숲을 되살리는 일을 하는 식물분류학자가 쓴 일과 식물 이야기. 씨앗에 독성 물질을 심어놓는 귀룽나무, 향기롭고 우아한 모습으로 장미 품종을 접붙일 때 도움을 주는 찔레꽃 등 생명의 숲을 이루는 존재를 다정하게 소개한다.

우리의 연애는 모두의 관심사
장강명 등 지음, 마름모 펴냄, 1만6천원
장강명, 차무진, 소향, 정명섭이 내놓은 불륜 또는 금기의 앤솔러지. 각 작품에 등장하는 음악의 정보무늬(QR코드)를 삽입해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한다. 책 뒷부분에는 이 앤솔러지에 함께하기로 했으나 원고를 마치지 못하고 작고한 정아은 작가에 대한 기억을 담은 ‘작가의 말’을 실었다.

AI와 기후의 미래
김병권 지음, 착한책가게 펴냄, 2만8천원
인공지능(AI)과 기후는 어떤 관련이 있으며 이는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인공지능 투자와 기후투자, 민주주의가 서로 균형을 이루는 정책은 있는가?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인 지은이가 한국의 디지털 편향과 생태에 미치는 악영향을 폭로하고 생태 친화적인 인공지능을 위한 규제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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