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운동회 마당에 보따리장사를 다닌다는 소문이 친정아버지 귀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도둑질 빼고는 다 해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학교는 다 가도 친정집이 있는 다수초등학교 운동회 날은 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운동회마다 다 많이 파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산골 학교에선 얼마 팔지 못했습니다. 방림은 부자 동네여서 다들 방림초등학교 운동회를 기다립니다. 큰올케 친정은 방림입니다. 사돈어른은 방림 유지입니다. 큰올케가 막내딸이라 사돈어른이 연세가 많으셔서 사돈할아버지, 사돈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꿈에 사돈할아버지가 사돈애기는 방림학교 운동회에는 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꿈은 반대라 하지만 방림학교 운동회가 가까워오자 걱정이 됩니다. 그래도 이미 운동회에 재미를 붙인 나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좀 비싼 물건은 아줌마들이 잘 안 가져갑니다. 새로 들어온 로켓과 비싼 물건을 여느 때보다 세 배는 더 많이 챙겼습니다. 남편은 욕심이 과하다고 짐 지고 다닐 일 있냐고 했습니다. 방림은 집에서 가까운데도 첫차로 가서 나무 그늘 좋은 곳을 골라 자리를 잡았습니다. 물건이 늘어나니 이날은 더 바빠졌습니다. 멜로디언을 불다가 간간이 로켓에 태엽을 감아 쏘아올립니다. 장난감 로켓은 상당히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로켓이 날아가 떨어지면 사람들이 주워 들고 와서 사갔습니다.
한창 신나게 파는데 사돈할아버지가 친구분들을 데리고 오셨습니다. 우리 사돈애기라고 소개하며 남들이 잘 사지 않는 로봇이며 여러 장난감을 많이 사가셨습니다. 좀 있다 보니 사돈댁이 친구분들과 오셔서 우리 사돈댁이라고 장난감을 또 사가셨습니다. 올케의 올케언니도 오셔서 우리 애기씨 큰시누이라고 장난감을 사갔습니다. 사돈댁에선 사돈의 팔촌까지 찾아와 물건을 팔아줬습니다.
점심은 옆에서 송편 파는 아줌마에게 홍옥 사과 몇 개 줬더니 송편을 한 대접 줘서 먹었습니다. 똘마니 아줌마들도 다 집에서 양은도시락에 밥과 김치를 싸갖고 와서 먹습니다. 그까짓 물건 서너 알갱이 팔아서 밥 사먹고 하면 뭔 돈이 남나 하면서 절대 사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점심시간에도 자기 자리를 비우는 일이 없이 정신 차리고 물건을 팝니다. 춘삼이댁만은 언제나 점심을 사먹습니다. 사람이 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지 하며 배를 팔다 버려두고 가서 국밥도 먹고 술도 한잔하고 옵니다. 종일 앉아 배도 깎아 먹습니다.
사람 욕심이란 물건이 잘 팔리니 하나도 남기고 싶지 않아 더 열심히 팔았습니다. 오후가 되니 피곤이 몰려와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 놉니다. 그러잖아도 서툰 멜로디언 연주가 더 형편없이 삑삑 소리가 납니다. 누가 “아줌마, 그 좋은 악기로 그렇게뿐이 못 불어요? 온 동네가 다 시끄럽네” 합니다. 중학생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였습니다. “그렇게 잘 불면 네가 불어봐라” 하니, 아이는 멜로디언을 낚아채듯 뺏어가 불기 시작합니다. 머나먼 저곳 스와니 강물 그리워라~ 이 세상에 정처 없는 나그네의 길~ 아, 그리워라 멀고먼 옛 고향~. 아이는 <희망의 속삭임> <봄처녀> <아, 목동아> 등 여러 곡을 연주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스와니강>은 애처로울 만큼 여러 번 연주했습니다.
사람들은 아줌마 동생이냐 아들이냐고 물어봅니다. 아무도 이 아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짓궂은 청년들은 “이 아줌마 점원도 뒀네” 하며 놀립니다. 뜻밖의 지원군을 얻어 장난감은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한창 바쁜 시간에 어떤 아줌마가 씩씩거리며 날개에 금이 간 로켓을 들고 와서 소리칩니다. “아줌마, 이렇게 망가진 장난감을 팔면 어떻게 해요!” 오전에 멀쩡한 것을 팔았는데 몇 시간 갖고 놀다가 망가뜨리고 떼쓰러 온 것이 분명합니다. 경우 없는 아줌마와 싸울 시간에 물건을 파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억울하지만 그러냐고 그냥 새것으로 바꿔줬습니다. 사람들이 ‘저 아줌마는 어디 가나 경우가 없다’고, ‘아이가 망가뜨린 것을 아줌마한테 덤터기를 씌운다’고 수군거립니다.
운동장에는 계주를 응원하는 함성을 끝으로, 자지러질 듯한 아이들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반평짜리 내 운동장 가게에는 금이 간 로켓 하나와 60센티짜리 멜로디언이 남았습니다. 멜로디언 불던 아이는 한가해지니 주머니에서 종이 건반을 꺼내 입으로 노래하며 실제처럼 연주합니다. “소리도 안 나는 걸 왜 치나?” 하니, “아줌마 잘 들어보면 피아노 소리가 들려요” 합니다. 자기는 도시에서 피아노를 배웠는데 방림 산골짜기로 이사 온 지 6개월이 되었답니다. 음악가가 꿈인데 피아노가 없는 지금도 매일 종이 건반으로 연습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 꿈을 놓치지 마라” 해주었습니다. 속으로 나도 꿈은 버리지 않고 산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실습용으로 쓰던 멜로디언을 자기가 가져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잖아도 아이에게 일한 값을 얼마나 줘야 할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팔고 하나 남은 멜로디언을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연주할 때 진지한 모습은 간데없이 악기를 받아들고 한참을 껑충껑충 뛰었습니다. 신나게 운동장을 뛰어다니다가 돌아서서 아이는 머리를 깊게 숙이고 다시 뛰어갔습니다. 아이의 뒷모습에, 얘야 꿈을 꼭 이루거라, 말없이 응원을 보냈습니다.
전순예 45년생 작가·<강원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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