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많이 투명해졌다지만 여전히 ‘부패’ 관련 뉴스는 차고 넘친다. 2018년 세계경제포럼 보고서를 보면 부패가 낳는 연간 경제손실이 세계 총생산(GDP)의 5%, 2조6천억달러(약 2940조원) 규모에 이른다. 전세계에서 뇌물로 제공되는 돈도 1조달러를 훌쩍 넘는다. “그런데 세상은 왜 아직까지도 망하지 않고 있는 걸까?” 나라 안팎에서 부패 방지 운동에 앞장서온 정치학자 김정수의 <반부패의 세계사>(가지 펴냄)는 “이 당연한 질문에서 출발”한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부패가 있는 곳에 그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고대 수메르와 그리스·로마부터 중국 전국시대, 근대 유럽의 선거개혁과 옴부즈맨, 20세기 들어 국제투명성기구와 유엔반부패협약과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까지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부패의 역사만큼이나 길고 질겼던 반부패의 역사를 소개한다. ‘반부패’ 실천이 반드시 도덕적으로 선한 동기에서 비롯하는 건 아니다. 반부패는 도덕적 가치와 밀접하게 연관된 개념인 까닭에 늘 정쟁과 권력투쟁의 수단이 돼왔다. 지은이는 단순한 도덕적 당위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 법치, 시민적 권리와 참여를 실천하는 과정”으로서 반부패를 강조한다.
부패의 가장 흔한 사례는 뇌물이다. 고대 아테네 사회는 부패를 ‘자유의지와 판단력 상실’로 여겼다. 이는 자유시민과 폴리스의 운명을 위협하는 반역 행위나 다름없었으며 시민권 박탈, 추방 같은 중형으로 다스려졌다. 고대 로마에서 부패를 뜻하는 ‘코룸페르’(corrumpere)는 ‘모두’(cor)와 ‘파괴하다’(rumpere)라는 낱말의 합성어였다. 영어 단어 부패(corruption)의 어원이다. 17세기 유럽에선 왕권신수설을 폐기한 사회계약론이 등장하면서, ‘공적인 것’이 왕실과 귀족집단이 아닌 시민사회 영역으로 확립됐다. 공과 사의 진정한 구별이다. 17~18세기 영국 선거에선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인구 변동이 반영되지 않은데다, 지주와 귀족의 입김이 절대적인 ‘부패 선거구’가 큰 문제였다. 이는 선거개혁과 부패방지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권력의 부패는 내부 통제와 감시만으로 견제하기 쉽지 않다. 바로 여기서 지은이는 ‘알아낼 자유’(언론 자유)와 ‘알 권리’, ‘알릴 의무’(내부 고발)의 당위성과 가치를 재확인한다. 1980년대 들어 많은 남미 국가가 관료와 기업의 부패로 최악의 채무 위기를 맞은데다, 저개발국에 대한 개발원조금마저 ‘검은돈’으로 뒤바뀌는 현상이 심각해졌다. 국제투명성기구(1993년)와 유엔반부패협약(2003년)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은이는 “반부패는 개인의 청렴과 실천의 합이 ‘산술’을 넘어 ‘기하급수적’으로 질적 효과를 발휘하는 집단적 노력과 과정”이라고 말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미래로 가는 길, 실크로드
피터 프랭코판 지음, 이재황 옮김, 책과함께 펴냄, 1만6천원
<실크로드 세계사>(2015)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영국 사학자가 이번엔 세계화와 서방의 영향력 쇠퇴, 일대일로를 앞세운 중국의 급부상 등 오늘날 지정학의 거대한 변화를 톺아보고 그 관계와 의미를 분석한다. <실크로드 세계사>를 3권으로 분책한 보급판 번역서도 함께 나왔다.
브로카의 뇌
칼 세이건 지음, 홍승효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2만2천원
<코스모스>로 유명한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과학 에세이(1979)의 첫 국내 완역판. ‘과학스러움’으로 자기주장을 포장하려는 사기꾼들에 맞서 과학을 쉽게 설명하려다 오해만 낳는 대중과학 전도사들에 대한 경계를 담았다. 과학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지적인 탐미가 돋보인다.
요술봉과 분홍 제복
사이토 미나코 지음, 권서경 옮김, 문학동네 펴냄, 1만7천원
일본 문예평론가가 ‘세일러 문부터 헬렌 켈러까지, 여주인공의 왜곡된 성역할’(부제)의 실태와 문화적 기호를 해부한다. 애니메이션의 남자 주인공이 과학기술로 불의와 맞설 때, ‘홍일점’ 여자는 마법의 힘에 기대거나 위기의 순간 ‘왕자님’을 만난다. 진지한 주제를 유머러스하게 서술했다.
수술의 탄생
린지 피츠해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열린책들 펴냄, 1만8천원
미국 의학사학자가 19세기 영국 외과의사 조지프 리스터의 삶을 씨줄 삼아, 끔찍하고 불결했던 외과수술이 안전하고 과학적인 의술로 변모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재구성했다. 피와 비명이 난무하던 수술장은 리스터의 살균법과 위생 관리 덕분에 생명을 살리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미 대선 윤곽 6일 낮 나올 수도…끝까지 ‘우위 없는’ 초접전
숙명여대 교수들도 “윤, 특검 수용 안 할 거면 하야하라” 시국선언 [전문]
황룡사 터에 멀쩡한 접시 3장 첩첩이…1300년 만에 세상 밖으로
회견 이틀 전 “개혁 완수” 고수한 윤...김건희 문제, 인적 쇄신 어디까지
미 대선, 펜실베이니아주 9천표 실수로 ‘무효 위기’
SNL, 대통령 풍자는 잘해도…하니 흉내로 뭇매 맞는 이유
“명태균씨 억울한 부분 있어 무료 변론 맡았다”
이런 감나무 가로수 봤어?…영동, 1만9천 그루에 수백만개 주렁
오빠가 무식해서…[한겨레 그림판]
[영상] “사모, 윤상현에 전화” “미륵보살”...민주, 명태균 녹취 추가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