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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세상은 왜 망하지 않나 <반부패의 세계사>

정치학자 김정수의 <반부패의 세계사>
등록 2020-11-01 08:28 수정 2020-11-05 01:27

세상이 많이 투명해졌다지만 여전히 ‘부패’ 관련 뉴스는 차고 넘친다. 2018년 세계경제포럼 보고서를 보면 부패가 낳는 연간 경제손실이 세계 총생산(GDP)의 5%, 2조6천억달러(약 2940조원) 규모에 이른다. 전세계에서 뇌물로 제공되는 돈도 1조달러를 훌쩍 넘는다. “그런데 세상은 왜 아직까지도 망하지 않고 있는 걸까?” 나라 안팎에서 부패 방지 운동에 앞장서온 정치학자 김정수의 <반부패의 세계사>(가지 펴냄)는 “이 당연한 질문에서 출발”한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부패가 있는 곳에 그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고대 수메르와 그리스·로마부터 중국 전국시대, 근대 유럽의 선거개혁과 옴부즈맨, 20세기 들어 국제투명성기구와 유엔반부패협약과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까지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부패의 역사만큼이나 길고 질겼던 반부패의 역사를 소개한다. ‘반부패’ 실천이 반드시 도덕적으로 선한 동기에서 비롯하는 건 아니다. 반부패는 도덕적 가치와 밀접하게 연관된 개념인 까닭에 늘 정쟁과 권력투쟁의 수단이 돼왔다. 지은이는 단순한 도덕적 당위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 법치, 시민적 권리와 참여를 실천하는 과정”으로서 반부패를 강조한다.

부패의 가장 흔한 사례는 뇌물이다. 고대 아테네 사회는 부패를 ‘자유의지와 판단력 상실’로 여겼다. 이는 자유시민과 폴리스의 운명을 위협하는 반역 행위나 다름없었으며 시민권 박탈, 추방 같은 중형으로 다스려졌다. 고대 로마에서 부패를 뜻하는 ‘코룸페르’(corrumpere)는 ‘모두’(cor)와 ‘파괴하다’(rumpere)라는 낱말의 합성어였다. 영어 단어 부패(corruption)의 어원이다. 17세기 유럽에선 왕권신수설을 폐기한 사회계약론이 등장하면서, ‘공적인 것’이 왕실과 귀족집단이 아닌 시민사회 영역으로 확립됐다. 공과 사의 진정한 구별이다. 17~18세기 영국 선거에선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인구 변동이 반영되지 않은데다, 지주와 귀족의 입김이 절대적인 ‘부패 선거구’가 큰 문제였다. 이는 선거개혁과 부패방지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권력의 부패는 내부 통제와 감시만으로 견제하기 쉽지 않다. 바로 여기서 지은이는 ‘알아낼 자유’(언론 자유)와 ‘알 권리’, ‘알릴 의무’(내부 고발)의 당위성과 가치를 재확인한다. 1980년대 들어 많은 남미 국가가 관료와 기업의 부패로 최악의 채무 위기를 맞은데다, 저개발국에 대한 개발원조금마저 ‘검은돈’으로 뒤바뀌는 현상이 심각해졌다. 국제투명성기구(1993년)와 유엔반부패협약(2003년)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은이는 “반부패는 개인의 청렴과 실천의 합이 ‘산술’을 넘어 ‘기하급수적’으로 질적 효과를 발휘하는 집단적 노력과 과정”이라고 말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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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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