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중국 소설가 위화의 산문 (푸른숲 펴냄) 속에서 문학과 음악은 겹을 이룬다. 낮은음자리와 높은음자리가 나란한 악보처럼. 신비하게도, 이 겹은 마음에 빛으로 남는다. 내면을 밝혀주면서, 동시에 우리의 일부가 된다. 연주가 끝난 뒤에도 마지막까지 잔향이 공간에 녹아들어 듣는 이의 영원한 일부로 남는 황홀을 독서만으로 경험할 수 있다.
위화는 열다섯 살 때 악보를 통해 처음 음악에 “미혹”됐다. 어떤 작곡가·연주자·악기가 아니라 악보에 빠진 점도 범상치 않은데, 악보를 읽는 대신 텍스트를 ‘악보화’한 일은 더 흥미로운 대목. 처음에는 루쉰의 를 악보로 만들었다. 작품을 필사한 뒤 음악 부호를 내키는 대로 그 위에 적은 형태다. 수학 방정식과 화학 반응식도 악보로 탄생했다. 누구도 연주할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음악이 공책 한 권을 채웠다. ‘침묵의 음악’부터 만난 셈이다.
음악이 “정말로 다가온” 때는 서른세 살. “음악은 단숨에 사랑의 힘으로 나를 잡아끌었다. 뜨거운 햇살과 차가운 달빛처럼, 혹은 폭풍우처럼 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햇빛과 달빛을 받고 바람과 눈을 맞으며 다가오는 모든 사물을 맞아들여 그것들을 침잠시키고 소화시키는 드넓은 땅처럼 사람의 마음도 활짝 열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발견할 수 있었다.” 매혹적인 해방감이다.
“삶은 음악을 주었”고, 음악은 글쓰기에 영향을 주었다. 위화는 “음악의 서술”을 따라갔다. 베토벤, 모차르트를 지나 헨델과 몬테베르디를 거쳐 바흐의 문 앞까지. “어떤 사물이 무수한 특성을 가질 때 한 가지 특성이 빠져나가면 다른 특성도 전부 사라지게 된다. 모든 특성이 사실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흐가 내게 준 교훈이다.” 다양성 자체가 온전한 형태라는 걸 위화는 ‘바흐의 서술’로 배웠다.
반복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점에서 인간은 기도와 섹스처럼 바흐를 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바흐의 제자 위화는 반복의 힘과 제대로 마주한 적이 있다. “위대한 마태수난곡이 거의 세 시간에 이르지만 한두 곡의 선율로만 구성돼 있다. 그 몇 줄의 단순한 선율에서 고요와 찬란함, 고통과 환락이 반복되는 상황은 단편소설 한 편의 구조와 분량만으로 문학 속의 가장 긴 주제를 표현”하는 모습과 겹을 이룬다.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서술의 풍부함이 극에 달하면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해진다는 사실”을 짧게 표현한 단어라고 가르쳐주는 듯하다.
위화는 인간이란 슬플 때도 웃을 수 있는 존재임을 확인시키는 귀한 작가이기도 하다. 인간에겐 이 와중에도 웃을 자유, 고통에 잠식당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그는 저릿한 현실을 날카롭게 묘사하되, 문학 스승인 윌리엄 포크너처럼 유머를 영혼의 비상계단으로 삼을 줄 안다. 역시, 이 계단에도 음악이 울리고 있었다. “상당수의 위대한 예술가들은 가벼운 방식으로 무거움을 처리했고 가장 대표적인 예가 모차르트”다. 위화가 ‘가벼움’이 지닌 힘을 들었다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제1악장은 이렇게 ‘문학의 선율’이 된다. “짧은 서정에는 모든 거대한 선율과 격앙된 리듬을 덮을 능력이 있었다. 문학의 서술도 마찬가지다. 변화무쌍한 문장이나 단락 다음의 짧고 침착한 서술이 훨씬 강력한 전율을 가져올 수 있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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