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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군분투하는 록밴드, 포에버

결성 스무 돌에 ‘잠시만 안녕’한 3호선 버터플라이… 최악의 위기 맞은 한국 밴드신
등록 2019-04-17 10:58 수정 2020-05-03 04:29
2017년 7월 첫 합동공연을 한 인디밴드 허클베리핀과 3호선 버터플라이. 하이람 피스키텔 제공

2017년 7월 첫 합동공연을 한 인디밴드 허클베리핀과 3호선 버터플라이. 하이람 피스키텔 제공

록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가 지난 2월15~16일 서울 서교동 컨벤트 라이브 펍에서 한 공연의 제목은 ‘잠시만, 안녕’이다. 이 공연을 끝으로 당분간 활동을 중단한다고 했다. 애초 하루만 공연하려 했으나, 티켓이 반나절 만에 동나서 하루 더 추가했다. 추가 공연 역시 반나절 만에 매진됐다. 그만큼 팬들의 아쉬움이 컸다는 얘기다.

하필이면 결성 20돌에…

3호선 버터플라이는 1999년 결성했다. 시인이자 음악가인 성기완과 밴드 허클베리핀 초대 보컬리스트 출신 남상아가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2000년 데뷔 음반을 발표한 이래 록을 바탕으로 하면서 일렉트로닉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스타일의 사운드를 빚어내며 음악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2013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선 4집 음반 《드림토크》(Dreamtalk)로 올해의 음반상을 비롯해 최우수 모던록 음반상과 노래상까지 휩쓸며 3관왕에 올랐다.

2016년 밴드의 주축이던 성기완(기타)이 탈퇴했지만, 3호선 버터플라이는 흔들림 없이 날았다. 남상아(보컬·기타), 김남윤(베이스기타), 서현정(드럼)은 이듬해 초 일렉트로닉 요소를 더욱 강화한 5집 음반 《디바이디드 바이 제로》(Divided By Zero)를 발표하며 힘찬 날갯짓을 했다. 반응도 좋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뒤인 2019년, 하필이면 결성 20돌을 맞는 해에 잠시 날개를 접는다고 선언했다. 남상아가 남편의 나라인 프랑스의 니스로 이주하기로 결정하면서 휴식기를 갖는다는 것이다.

남상아는 한때 밴드 동료였던 허클베리핀의 이기용에게 떠나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20년 넘게 음악하면서 많이 버티고 참아왔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한 한국에서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이게 됐다. 내 취향이 대중과 맞지 않는다는 것, 그 점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물론 내가 가장 잘 알고 지금까지 20년 넘게 해온 이곳을 떠난다는 것이 무척 어렵다. 내가 음악으로 버는 수입으로는 도저히 생활이 안 되고 미래가 안 보였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시사IN〉 ‘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 남상아 편 중에서)

한국에서 밴드를 하면서 생계를 꾸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성공적인 사례들이 있지만 극소수고, 수많은 인디밴드가 음악과 부업을 병행한다. 그러다 지치면 나가떨어지기도 한다. 한국방송(KBS)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시즌3 우승팀 아시안체어샷이 그랬고, 서태지가 사랑한 21년 경력의 록밴드 피아가 올가을 단독 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체한다고 선언했다. 지금도 수많은 밴드가 해체를 고민할 것이다. 한국 밴드신은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벨기에 인구 1100만 명, 여름 축제 200개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우선 요즘 10대와 20대들이 록음악을 잘 안 듣는다는 게 주요한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내가 10대였던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는 록과 헤비메탈의 시대였다. 90년대 중반 너바나가 출현하고 영국 브릿팝이 뜨면서 밴드의 시대는 2000년대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면서 리듬앤드블루스(R&B), 솔, 힙합 등 흑인음악과 전자음으로 이뤄진 일렉트로닉음악이 대세가 됐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요즘 10대들은 내가 과거 헤비메탈에 빠졌던 것처럼 힙합에 심취한다. 20대는 일렉트로닉을 탐닉한다. 무엇보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케이팝 대약진의 영향으로 균형추가 아이돌 음악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이제 디스토션(소리가 변형되는 것)을 걸어 지글거리는 일렉트릭기타 사운드가 조금이라도 들리면 음원 차트에 들어가기 힘든 시대가 됐다. 대학 축제나 각종 행사에서도 장비도 많고 준비도 번거로운 밴드를 부르는 대신, 노트북이나 유에스비(USB) 하나면 반주가 해결되는 아이돌 그룹이나 힙합 래퍼를 선호하는 추세다.

얼마 전 벨기에 싱어송라이터 시오엔을 인터뷰했다. 그는 과거 합동공연도 하며 가깝게 지내던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가 활동을 중단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했다. “경제적 이유로 밴드들이 해체하는 건 슬픈 현실이다. 곡을 만들고 악기를 연주하는 행위는 대단히 중요하다. 케이팝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는 것도 흥미롭지만, 인디 뮤지션 중에서도 스타가 나와야 한다. 벨기에는 인구가 1100만 명밖에 안 되지만, 여름에만 음악축제가 200개나 열린다. 인디밴드들이 활동하는 토양이 된다. 음악에서는 돈보다 경험에 더 집중해야 한다.”

나는 허클베리핀의 음악을 좋아한다. 1998년 데뷔한 허클베리핀은 1집 이후 남상아가 탈퇴한 뒤 새로운 보컬 이소영을 영입하고 꾸준히 멋진 음악을 들려줬다. 하지만 2011년 5집 《까만 타이거》 발표 이후 오랫동안 허클베리핀의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리더 이기용은 2012년 마음의 병을 얻었다. 음악을 그토록 열심히 했는데도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음악을 계속 하려고 음악바 ‘샤’를 운영했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 탓에 끝내 문을 닫았다. 혼자 제주도에 내려간 이기용은 몇 년을 숨어 지냈다.

음악을 할 수 없어 생긴 병을 제주의 너른 하늘과 바다가 치유해줬다. 결국 다시 찾게 된 건 음악이다. 드넓고 아름다운 자연의 공간감을 담아낸 음반 《오로라 피플》을 지난해 11월 발표했다. 무려 7년 만의 새 음반이었다. 개인적으로 지난해 나온 음반 중 가장 감동적으로 들은 음반이다. 지난 3월 허클베리핀의 새 음반 발매 기념 공연에 갔다. 음반으로만 듣던 곡을 직접 듣는 순간은 더 큰 감동이었다. 공연장의 높은 천장에 신비로운 오로라가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내 마음에도 오로라가 피었다.

커피 두 잔 값으로 밴드 응원

공연이 끝나고 팬들과 함께하는 조촐한 뒤풀이 자리에 갔다. 상당수는 ‘허클베리핀 팬 유니온’ 회원이었다. 이들은 매달 1만원 이상 후원금을 낸다. 대가로 사인 시디(CD)를 받거나 공연 티켓을 ‘1+1’로 살 수 있는 등 혜택이 주어지지만, 그 때문에 회원에 드는 이는 없어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가 계속 음악을 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마음이 훨씬 더 커 보였다. 나도 회원가입서를 받아 빈칸을 채웠다. 매달 1만원씩 후원하기로 약정했다. 허클베리핀이 경제적 이유로 활동을 중단하거나 해체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음악을 해준다면, 한 달에 커피 두 잔 값쯤은 아무것도 아닐 터다. 고군분투하는 모든 밴드를 응원한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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