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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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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토끼만 잡자

미세먼지냐 추억 여행이냐
등록 2019-01-26 17:54 수정 2020-05-03 04:29
키즈카페에서 놀고 있는 김도담.

키즈카페에서 놀고 있는 김도담.

“마스크 쓰자”라고 부르면 한 발짝 도망간다. 활짝 웃으며 어디 한번 잡아보라는 손짓을 한다. 모자 쓰는 것조차 온몸으로 거부하는 도담이가 마스크에 입과 코를 순순히 내줄 리가 없다. 처음에는 왜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 설득하다가 도담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 발짝 더 물러나면,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뽀로로’를 보여주겠다고 회유한다. 그제야 도담이는 달려와 휴대전화를 잡아챈 뒤 얼른 마스크를 씌우라는 듯 얼굴을 앞으로 내민다. 미세먼지 공습에 대비하기 위해 도담이의 입과 코를 봉쇄하는 마스크 씌우기 작전이 한바탕 펼쳐지면 집 밖을 나가기도 전에 기진맥진이 된다. 원래 꼬마들은 머리가 커지면 청개구리가 되는 건가 고개를 갸우뚱한 뒤 차라리 추웠으면 좋겠다고 투덜거린다. 1월23일 환경부가 한-중 환경협력공동위원회를 앞두고 “양국 간 회의에서 중국에 할 말을 세게 하겠다”고 대응한 건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반갑다. 암, 할 말은 해야지.

미세먼지 때문에 산책을 못하는 날이 많아지자 뛰놀고 싶어 하는 도담이의 욕구를 해소시키기 위해 주말마다 키즈카페에 간다. 즐겨 찾는 키즈카페는 두 군데다. 한 곳은 버스로 세 정거장 거리인 주상복합아파트 지하에 있고, 또 다른 곳은 걸어서 10분 거리인 구립도서관 지하에 입점한 키즈카페다. 두 곳 모두 장단점이 있다. 이용료가 1시간에 7천원인 전자는 카페 규모가 그리 크진 않지만 이곳을 찾는 아이들이 적어 다른 아이들과 부딪힐 확률이 작고, 깨끗해서 도담이가 노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봐도 안심이 된다.

후자는 2시간에 1만4천원으로, 부모는 1명당 식사나 커피·음료 메뉴 하나는 반드시 시켜야 하는 까닭에 전자보다 배 이상 비싸다. 비싼 만큼 부모들이 쉴 공간을 따로 갖췄고, 놀이 공간도 훨씬 크고 많다. 아이들을 따로 놀게 하고 노트북으로 일하는 부모도 더러 있다. 하지만 이제 겨우 23개월째인 도담이는 2시간을 놀 만큼 체력이 안 되고, 전자보다 연령대가 높은 아이가 많이 찾는 까닭에 도담이가 혹여 이들에게 치일까봐 옆에 꼭 붙어 다녀야 한다. 이러나저러나 키즈카페에서 놀고 외식까지 하면 적잖은 돈이 줄줄 샌다. 돈도 돈이지만 딱히 갈 데가 없어 키즈카페를 몇 주째 기웃거리니 더욱 답답해졌다.

도담이를 안은 채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아들 부부가 안쓰러웠을까. 얼마 전 부모님이 자동차 한 대를 물려주었다. 당장 도로 연수를 신청했다. 19년째 ‘장롱 면허’ 인생을 살다가 차가 덜컥 생겨 운전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되다가도, 키즈카페를 탈출해 도담이에게 산과 바다를 보여줄 수 있겠다 싶어 기대감도 커졌다. 서퍼들의 성지라는 강원도 양양을 갈까, 전라도 맛집을 순례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는 나를 지켜보던 아내가 한심하다는 듯 한마디 한다. “차를 타면 미세먼지가 없어?” 도담이와 더 많이 추억을 쌓을 수만 있다면 미세먼지가 있어도 어떠랴.

글·사진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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