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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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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 스타일 국어’가 1타 뜰 거야”

서울 대치동 윈터스쿨·1등 스타 강사… 풀 길 없는 고3 엄마의 고차방정식

‘고사미 엄마’가 오늘부터 1일인 Y기자 ‘고사미맘 능력시험’ 연재 시작
등록 2018-12-01 17:37 수정 2020-05-03 04:29
지난 11월15일 광주 남구 동아여고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고 나온 학생이 마중 나온 부모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수능 시험일은 고2 엄마들에게는 ‘오늘부터 1일’이 된다. 연합뉴스

지난 11월15일 광주 남구 동아여고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고 나온 학생이 마중 나온 부모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수능 시험일은 고2 엄마들에게는 ‘오늘부터 1일’이 된다. 연합뉴스

지난주 어느 날, 퇴근하자마자 헐레벌떡 뛰어간 서울 대치동의 한 입시학원.

“어머님들~, 이번 수능 국어 어려웠던 것 아시죠? 이 중에서 지금 셤 문제 풀어서 50점 넘는 분 있을까요? 거의 없으실걸요~.” 자존심이 살짝 구겨졌지만, 이른바 ‘불국어’를 풀어낼 엄마가 몇이나 되겠나. 이어지는 원장 샘의 이야기. “그래서 제가 2020 수능 대비를 위해 ‘고난도 비문학 1200제 풀기’ 수업을 준비했지 말입니다.”

‘극강 난이도’로 명성을 떨친 ‘국어 31번 문항’을 겨냥한 말이었다. 원장 샘 말로는 한동안 쉬운 수능 기조가 이어지면서 꺼내놓지 않았던 ‘비장의 카드’란다. 곁들여지는 원장 샘의 얘기에 엄마들은 더 솔깃해진다. “이번 수능 출제에 참여했던 지인들과의 만남을 죽 잡아놨습니다. 그 일정들 끝나면 연간 커리큘럼을 확정하려고요.” “어머님들, 아시죠? 애들 점수는 ‘만들어내는’ 겁니다.” “다음 수능에선 비문학 지문으로 ‘행동경제학’이 나올 때가 됐죠, 아마?”

결국은 사교육밖에 없다

온라인 입시 커뮤니티에서 이번에 국어가 왜 어려웠는지, 앞으로 출제 경향은 어떨지까지 대충 감을 잡고 갔던 터라 원장 샘의 이야기는 들을수록 구미가 당겼다. ‘공부를 어떻게 해야 31번 문제를 풀 수 있냐’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던 커뮤니티에서 결국 답은 ‘사교육’밖에 없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던 차다. 정부가 2022년 정시 확대 방침을 밝혔기에, 절대평가인 영어와 사교육 정책의 핵심 타깃인 수학을 빼고 나면 국어 변별력을 높일 수밖에 없고 ‘불국어’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거란 시나리오다. 매우 그럴듯한 시나리오가 이미 학원가에선 마케팅 전략이 되어 작동 중이었다.

설명회를 다녀온 다음날까지 종일 귓가를 맴도는 말. “엄마가 똑똑하고 침착해야 아이가 대학 갑니다. 아셨죠?” 응? 아이가 아니라 내가? 굳이 독해에 나서자면 부모의 분석과 전망, 전략 없이는 대학 가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그랬다. 내가 ‘고사미맘’이 됐음을 일깨운 건 학교가 아니라 학원이었다. ‘예비 고3’이란 타이틀은 수능일(11월15일), 혹은 내년 수능일인 11월14일(올해 예비소집일)부터 자취를 싹 감췄다. 이런, 고사미 엄마는 내년 1학기에나 되는 줄 알았는데.

고사미 엄마의 첫 번째 미션은 ‘겨울방학 계획 세우기’. 학기 중에 내신에 치인 고사미들에게 겨울방학은 수능 대비에 전념할 시기다. 정시(수능)라는 좁은 문을 그 많은 재수생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띵동띵동~.’ 문자메시지를 쉬지 않고 보내는 학원들의 전략은 대개 엇비슷하다. ‘2019 수능 결과 분석에 따른 2020 입시 대책’ ‘영역별 출제 경향 분석에 따른 학습 전략’ 등등. 제목만 들어도 그럴싸한 입시설명회를 앞세운 뒤 궁극에는 각 학원이 내로라하는 인기 강의를 홍보하는 식이다.

여기서 잠깐! ‘1타’라고 들어는 보셨나. 줄임말을 풀어쓰면 ‘1등 스타 강사’다. ‘매출 1등 강사’ ‘1타임(부터 꽉꽉 차는) 강사’ ‘(승률 높은) 1번 타자 강사’ 등 다양한 어원이 따르지만, 한마디로 최고 인기 강사를 일컫는다. 이들은 대개 학원 강의로 인기를 끈 뒤 ‘인강’(인터넷 강의)에 영입되고, 이후 ‘현강’(현장 강의)까지 병행하며 입지를 굳히는 코스를 밟는다. 이적료가 많게는 수백억원에 이르고, 팀을 짜서 교재 연구, 강의 모니터링, 유머 연구 등을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움직이는 기업’이다.

유머까지 연구하는 움직이는 기업 ‘1타’

아이가 1타 강의를 들으려면, 엄마가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 선착순 등록인 수강 신청을 위해선 새벽부터 긴 줄을 서야 하고, 강의가 시작되면 (피곤한 아이 대신) 좋은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또다시 줄을 서야 한다. 좀더 열정적인(?) 고사미 엄마들은 과목별 인기 강사들의 설명회를 일일이 듣고 나서야 마음을 정한다. 유명하다고 꼭 내 아이와 학습 궁합이 맞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거 알아? 1타라는 타이틀도 움직이는 거더라고. 지금은 2타, 3타 수준이지만 곧 1타로 치고 올라갈 젊은 샘들이 보이거든. 이번에 우리 집 고사미는 일부러 이과 출신 국어 샘으로 골랐어. 요즘 대치동에선 ‘이과 스타일’로 가르치는 샘들이 뜬다길래.” 큰애 입시를 끝내고 작은애 입시를 준비 중인 지인의 말이다. 그는 얼마 전 알음알음 소개받아 비공개 설명회를 다녀왔다고 했다. 그런 자리를 만드는 ‘실장님’들이 따로 있단다. ‘극상위권’ 학생들을 불러 모아 10명 안팎으로 팀을 꾸리고 1타 샘과 연결해주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혼자서 열공 의지를 불태우기 어려운 고사미들을 유혹하는 또 다른 겨울방학 선택지는 ‘윈터스쿨’이다. 이름만 듣고는 뭐 하는 곳인가 했다. 아이들을 학원에 모아놓고 종일 수업과 자습을 병행하도록 하는 ‘관리형 프로그램’이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빼곡한 시간표를 학원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통학형’이 아닌 ‘숙식형’의 경우엔 4~5주에 300만원 이상 목돈을 들여야 한다.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모든 일이 ‘사교육 1번지’ 대치동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지만, 강북은 물론이고 지방 학생들의 합류도 갈수록 늘어나는 분위기다. “강북 아이들도 좀 오나요?”라고 학원에 문의하면 의아하게 쳐다본다. “평택에서도 오는데요?” 집이 먼 아이들은 방학 동안 수험생 전용 ‘학사’에 머무르며 학원을 다닌다고 한다. 관리하는 직원들이 아침에 아이들을 깨워 학원으로 보낸다.

머릿속으로만 고차방정식을 풀다 만 나는 소심하게 대치동 국어 강의 하나만 등록하는 목표를 세워본다. 이런 결심을 전해 들은 또 다른 지인의 비수 같은 한마디. “그 학원 몇 년 전에 좋은 샘들 다 떠났잖아.” “끄응~!”

아이들은 해맑은데 어른들은 전투?

2019 수능이 치러진 지난 11월15일, 제2외국어 시험까지 모든 시험이 종료되는 오후 5시40분. 내년에 고3이 될 아이가 틀어준 동영상 속에선 그 시각에 맞춰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까르륵’ 웃는 아이와 친구들의 모습이 보인다. ‘고사미 1일’을 맞는 그들만의 의식이었다. 아이들은 이렇게 해맑은데, 정작 ‘전투’는 어른들끼리 치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그어놓은 출발선은 공정한 걸까?

고3 엄마 Y

나는 40대 직장맘이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녀 교육에 대한 분명한 소신이나 철학을 가져본 적이 없다. 살벌한 입시 경쟁의 컨베이어벨트에 내 아이를 밀어넣지 않으리라 다짐 정도 있었을 뿐.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멘붕’이 왔다. ‘제3의 길’을 제시하지 못하는 부모가 대세를 따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정쩡한 현실과 타협하며, 속 터지게 답답한 교육 현실에 대한 울분을 꾹꾹 누르며 산다. 실은 주변 많은 학부모가 그렇다. 내 아이만 다르게 키울 자신(혹은 시간과 돈)은 없고, 대세를 따르다보면 이게 올바른 길인가 싶어 자괴감이 들고. 익명으로 이 지면을 빌려, 한국 사회에서 대입을 준비하는 가정이 흔히 맞닥뜨리는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려 한다. ‘고사미 엄마’(고3 엄마)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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