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페르난두 페소아의 책이 세 권이나 출간됐다.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으로 과 가,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로 가 나왔다. 옮긴이는 세 권 모두 김한민. 김한민은 지난 6월 출간된 (아르테 펴냄)도 썼으니, 올 한 해에만 그의 손을 거쳐 페소아를 소개하는 책이 네 권이나 세상에 나왔다.
페소아를 공부하기 위해 포르투갈로 떠나기 전까지 그는 독특한 위치를 가진 글그림 작가, 문화 계간지 편집장, 문화 공간 ‘숨도’ 기획자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는 크리에이터였다. 토요판의 ‘감수성 전쟁’이라는 코너에 글을 연재하며 우리 사회의 갑갑한 문화 감수성에 맞서 고군분투하기도 했다. 포르투갈에서 돌아온 지금은 페소아를 소개하는 일뿐 아니라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 활동이나 동물축제 반대 기획에도 힘을 쏟고 있다. 120여 명의 다른 인물이 되어 작품 활동을 한 페소아를 하나의 이름으로 수많은 활동을 하는 김한민이 소개한다는 것 역시 흥미롭다.
내가 처음 본 작가 김한민의 작품은 (전 3권, 세미콜론 펴냄)이다. 당시 몇 년차 되지 않은 열정적인 주니어 편집자였던 나는, 책 중 한 부분이 유독 마음에 걸렸다. 제1권 117쪽에 나오는 ‘미지의 한 사람을 향한 책 쓰기’ 부분인데, 우주선이 떠오르면 이륙을 위해 쓰인 로켓들이 떨어져나가 바다에 버려지는 것에 빗대 ‘우주선 이론’이라는 이름도 붙어 있었다. ‘손익분기점이 2천 부는 될 텐데, 한 사람을 향한 책 쓰기라니 얼마나 한가한 소린가’ 하며 혀끝을 찼던 것도 같고, ‘결국 편집자는 바다에 떨어지는 로켓인 건가’ 섭섭해했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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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구절은 그저 흘러 지나가지 않고 뇌리에 박혀 때때로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다 (워크룸프레스 펴냄)을 통해 그의 생각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었다. 마지막 책을 지을 때가 되어서야 문득 자신에게도 독자가 필요함을 깨닫고 독자를 찾아나서는 저자의 이야기이자 ‘책병’에 걸린 어느 아이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 책은, 내가 책과 멀어지고 싶을 때 집어드는 묘한 책이다. 이야기를 따라가며 책은 결국 누구의 것인가 되묻다보면, 한편으론 어깨가 가벼워지고 또 한편으론 심호흡을 하며 심기일전하게 된다.
(워크룸프레스 펴냄) 역시 편집자인 나를 더 분발하게 하는 책이다. “출판계가 어렵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면서 “이 책은 팔릴 것 같다, 안 팔릴 것 같다” 팔짱 끼고 견적만 내는 내게 이 책 마지막에 있는 ‘친애하는 편집자님께’라는 전자우편 내용은 죽비 소리와 같다. 10년 전의 내가 혀끝을 찼을, 변하지 않은 그의 말에 이제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어떤 책도, 최소한 한 명의 ‘공감자’를 만나기 전에는 책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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