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인 ‘미투(#MeToo) 운동’의 확산은 ‘나도 당했다’는 용기 있는 고백과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봇물처럼 터져나온 개별 사건들의 밑바닥에는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가 있음이 드러났고, ‘저항의 목소리’들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요구한다. 미투는 저항과 희망의 언어로 힘을 갖게 됐다.
‘맨스플레인’(man과 explain의 합성어로 남자가 여자를 가르치려 드는 현상)을 유행시킨 페미니스트 리베카 솔닛은 그의 새 책 (창비 펴냄)에서 언어에 주목한다. “명명이 해방의 첫 단계”라고 말하는 그는 “모든 것을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확하게 부르는 행위야말로 “숨겨져 있던 잔혹함이나 부패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책에서 미국 대선, 기후변화, 여성혐오, 젠트리피케이션 등 다양한 주제를 훑으며 ‘명명’과 ‘호명’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성행위에서 행위자가 ‘적극적 저항’을 하지 않는 것을 암묵적 동의로 간주해 성폭력이 아니라고 보았던 옛 기준을 대신해 나온 ‘적극적 동의’는 모든 행위자가 적극적 동의를 해야만 동의된 관계라고 말한다. 단순하게 보면 ‘저항’을 ‘동의’로 바꾸기만 했을 뿐인데 인간의 성적 자율성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바라보는 시각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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뱉고 쓰는 언어가 달라지면 생각의 지형도 달라지기에 표현은 갈수록 섬세해지고 분명해진다. 성폭력 범죄 보도에서 쓰는 용어를 보면 ‘리벤지 포르노’는 ‘보복성 동영상’으로, ‘묻지마 살인’은 ‘여성혐오 범죄’로, ‘야동’ ‘몰카’ 등은 ‘디지털 성범죄’로 이름이 바뀌었다. 솔닛은 언어를 정확하고 조심스럽게 쓰는 노력이 곧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어떤 중요성이나 가능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흑인을 겨냥한 총격 문제에 항의하는 ‘흑인의 목숨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과 ‘1%에 맞선 99%의 저항’인 미국 월가 운동 등이 그렇다. 개인주의를 벗어나 사회적 분노에서 일어난 이 운동들은 이름 그대로 인종과 성차별, 빈부 격차 같은 사회 갈등을 세상에 드러냈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실패로 치부하고 냉소하는 것을 경계하는 솔닛은 분노를 넘어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계속 연대할 것을 주문한다.
지난해 8월 방한해 “여성들의 상황은 6개월, 1년 단위로 본다면 변화가 작다고 느껴지겠지만 긴 시간을 놓고 큰 그림으로 본다면 여러 측면에서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던 그는 이번 책에서도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믿는가에서 시작된다”며 희망을 불어넣는 말로 끝맺는다.
지난 9월 출간된 미국과 큰 시간차 없이 발간된 책 에는 한국 독자를 위한 특별 선물이 포함됐다. 한국인들에 대한 깊은 인상을 담은 특별 서문과 함께 영문판에는 수록되지 않은 미투 운동 글을 추가로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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