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지난 4월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때 제주 소년 오연준이 을 부르는 모습을 유튜브로 보고 있었다. 라면을 끓여 먹다 콧물이 줄줄 났다. 요즘엔 울 때 눈물보다 콧물이 더 많이 나오는 거 같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받은 감동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콧물의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그냥 그 노래 때문이었다. ‘고향’. 마음의 결핍이 없던 시절, 세상과 내가 분리되지 않았던, 내가 기억할 수 없는 그 순간들의 은유 같았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 그런 찰나 말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그것’을 채우려는 몸부림</font></font>영화 에서 아델이 엠마를 처음 만나는 장면은 이렇다. 건널목, 파란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엠마가 동성애인인지 친구인지 어깨를 겯고 길을 건너고 있다. 맞은쪽에 선 아델이 엠마를 쳐다본다. 허공에서 한순간 눈빛이 마주친다. 길을 건넌 아델이 뒤를 돌아본다. 음악이 없는 이 영화에서 이 순간에 공명하는 싱잉볼(‘노래하는 그릇’으로 히말라야 지역의 명상 도구)을 치는 듯한 소리를 담았다. 첫눈에 반한 거다.
그런 순간들이 있다. 나이도 이름도 모르는 한 사람이 흰색 면티를 입고 노천카페에 앉아 차인지 커피인지를 마시고 있다. 6월 햇살을 가린 차양은 노란색이었다. 찻잔을 잡은 그의 손가락이 지나치게 굵었다. 머리는 반백인데다 펠리컨처럼 턱과 목의 경계가 흐릿했다. 그 모습이 누군가 인두로 낙인찍은 듯 선명하게 뇌에 새겨졌다. 사랑이 재가 된 뒤에도 그 장면은 여전히 머릿속에 잡힐 듯 생생하다. 나는 그에게서 그때 뭘 봤을까?
사랑까지 하버드에서 배워야 하나 싶지만 하여간 책 에서 마리 루티는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하는 까닭은 그에게서 ‘그것’을 발견하기 때문, 또는 발견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은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것일 때가 많고” ‘그것’에 휘둘리는 자신도 그게 뭔지 모른다. 한마디로 망할 놈의 ‘그것’이다. 루티는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을 끌어들여 설명한다. 갓난아기는 세상과 자신의 차이, 어머니와 자신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데 커가며 자신이 거대한 세계 속에서 이리저리 흩날리는 낙엽 같은 존재임을 깨닫는다. 어른이 되는 거다. 그리고 결코 채울 수 없는 결핍을 가슴에 품는다. 지은이는 이를 “가슴 깊은 곳에서 북받치는 조용한 흐느낌”이라고 한다. 이 뭔지 모를 ‘그것’을 채우려 온갖 몸부림을 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는 거다. 돌아갈 수 없는 실낙원, 자신의 불완전함을 매워줄 ‘그것’을 찾아헤맨다. 이 구멍은 인간이 온갖 업적을 쌓는 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잠시 잊을 수는 있어도 결코 없어지지 않는 웅덩이다. 지은이는 “이런 공백이 생기는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하기에 손볼 수도 없다”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치르는 대가”라고 말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상실이란 실로 짠 사랑</font></font>그리고 사랑은 잠시 그 실낙원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열어준다. 그에게서 그 열쇠를 발견한다. 내 결핍을 채워줄 것만 같은 존재, 모든 상처가 치유받고 온 존재로 세상에 받아들여지는 느낌, 그 찰나를 선사한다. “라캉은 이런 사실에 대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것의 권위’를 부여했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이다. 상대도 그저 한 남자이고 한 여자이니까.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상대에게 요구하다보면 상대가 나가떨어진다. 마리 루티는 사랑을 지속하려면 선택적 이상화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과 다른 연인의 매력을 부각해 가끔 꺼내보는 명품 그릇처럼 이상화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그저 플라스틱 그릇처럼 평범한 인간임을 잊지 말자고 조언한다. 그를 내 이상형의 틀에 가두지 말라고 한다. “이상화는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힘을 주기 위한 것임을 전해야 합니다.” 이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에서 낭만적 사랑에 빠지면 뇌에 ‘꼬리 모양의 핵’이 활성화되고 천연 흥분제인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의 향연이 벌어진다고 설명한다. 애인이 그토록 완벽해 보이는 것, 그를 보고 싶어 밤잠을 설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종의 중독 상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뇌가 정신을 차린다. 낭만적 사랑은 다른 형태의 사랑으로 변할 수도 있지만, 그 정신줄 놓았던 순간은 가고 없다. 루티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이라는 직물은 처음부터 상실이라는 실로 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아끼는 것은 모두 찰나의 것들입니다.”
알면서도 바짓가랑이 붙들고 추태를 부린다. 당연히 변하는 것을 변했다고 난동을 피운다. 그에게 끝끝내 ‘그것’이 돼주길 강요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애초에 ‘그것’을 메울 수 있는 타인은 없으며, 그나마 그 결핍을 어루만지는 건 자신뿐이란 걸 말이다. “그 이유는 첫째 ‘그것’이라는 판타지가 실은 하잘것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능했던 적도 없거니와 애초에 낙원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리 루티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또 반복한다. 똑같은 패턴에 걸려든다. 홍상수의 영화 에서 주인공이 떠난 옛 연인과 지금 반한 여자를 같은 배우가 연기한다. 그러니 환장할 노릇이다. “무의식은 이런 식으로 반복됩니다. 프로이트는 연애만큼 반복 강박이 심하게 나타나는 곳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주 어려서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배운 관계맺기 패턴을 끊임없이 작동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랑은 그 무의식의 패턴을 직면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기회다. 마리 루티가 사랑이 행복보다 우선한다고 말하는 까닭은, 사랑으로 자신의 결핍을, 상처를, 자신을 휘두르지만 무엇인지 모를 ‘그것’의 단초를,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사랑이 끝난 자리엔…</font></font>사랑의 순간, 잠시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로 돌아갈 수 있는지 모른다. 비록 착각일지라도. 사랑이 끝난 자리, 텅 빈 ‘그것’을 안고 갈팡질팡 어리둥절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그 “고향”의 아련한 감각, 세상이 곧 나였던 그 합일의 순간을 인생 내내 찾아헤매는 가련한 동지들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서로가 처연하고 애틋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을 듣다 라면에 콧물을 떨군 까닭이다.
김소민 자유기고가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font color="#C21A1A">http://bit.ly/1HZ0DmD</font>
카톡 선물하기▶ <font color="#C21A1A">http://bit.ly/1UELpok</font>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임은정 검사 “윤 반말하며 건들건들…검찰회의 하는 것 같아”
명태균, “김건희에 ‘청와대 가면 뒈진다’ 했다” [영상]
윤 지지율 17% 역대 최저치…‘김건희’ 부정평가 원인 1위 [갤럽]
참모들은 왜 윤 대통령 회견 말리지 않았나
제주서 침몰한 고등어잡이 배…구명조끼 대부분 안 입은 듯
목줄 매달고 발길질이 훈련?…동물학대 고발된 ‘어둠의 개통령’
“윤, 사실상 대통령 아냐…퇴진 기본값” 현직 장학사도 시국선언
군, 현무-Ⅱ 지대지 미사일 발사로 ‘북 미사일 발사’ 맞불
“대통령이 대북방송 막으면 멈출 텐데…최악 지지율에 방치하는 듯” [영상]
윤 담화 영향 덜 담긴 ‘지지율 17%’…대통령실 “변화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