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일격이었다. 여의도 언저리에선 벌금 100만원 안팎을 예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징역형’ 주장은 여당 일부의 정치적 슬로건으로 치부됐다. 이재명 대표나 민주당에 경도돼서가 아니다. 돈이 관계된 것도 아니고 선거 공보물에 허위를 적은 것도 아니며 선거운동 기간의 일도 아니기에, 비교적 가벼운 사안으로들 본 거다.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대권에 이르는 길에 가장 큰 걸림돌인 이른바 사법 리스크의 마지막 고비를 넘는다는 태도였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고비를 넘기는커녕 대못이 박히는 듯한 효과를 낳게 됐다. 이재명 대표가 대권주자의 지위를 마지막까지 유지할 가능성은 어찌 됐든 이전보다 낮아졌다.
당장 민주당 입장에선 지지층의 동요가 문제다. 이재명 대표의 지위가 흔들리면 지지층이 이완되고, 당의 정치적 동력은 유실될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표가 집회에 나가 “팔팔하게 살아서 인사드린다”며 건재함을 과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론은 이른바 비이재명계(비명계)의 공간이 열릴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러나 여의도 전반에 ‘아무리 그래도 징역형은 과하다’는 정서가 퍼져 있는데다(다들 선거 치러본 사람들 아닌가?) 민주당이 사실상 ‘이재명 일극 체제’로 재편된 상황에서 누군가 ‘이재명의 대안’을 자처하며 치고 나오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나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같은 이들이 슬슬 몸풀기에 나서는 듯하면서도 ‘부당한 정치적 판결’을 말하며 이재명 대표를 감싸는 이유가 이것이다. ‘결국 이재명 대표가 손 들어주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가 될 것’이라는 평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러나 양상이 어떻든 ‘포스트 이재명’을 둘러싼 경쟁이 조기 점화되면 지지층 분열은 필연이 된다. 세력이 미미해 현재로선 정치적 변수가 되기 어려운 비명계를 향해 최민희 의원이 “움직이면 죽는다”고 경고한 것은 이 때문이다.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무죄가 확정되지 않는 한, 이재명 대표의 또 다른 사건 재판에서 기대 수준이 넘는 형량의 판결이 나올 때마다 이러한 상황은 반복될 것이다.
내부 사정보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어떻게 보는가다. 불리한 판결이 나오더라도 여론과 민심이 뒷받침된다면 민주당은 어떻게든 다음 수를 찾아낼 수 있다. 현대 정치는 상대를 반대해야 할 이유를 부각하면서 자신을 싫어할 이유를 감추거나 줄여 지지를 확보하는 게 기본 문법이다. 이 문법으로 보면 민주당에 필요한 전략은 이재명 대표의 여러 억울함을 호소하는 게 아니라 윤석열 정권에 대한 문제 제기를 흔들림 없이 이어가는 거라고 볼 수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언행은 이러한 전략을 반대편에서 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동훈 대표는 1심 판결 이전부터 김건희 특검 수용 등을 요구하는 야당과 시민사회의 집회를 ‘판사 겁박 시위’라고 지칭해왔다. 실제 이 집회에서 주된 구호는 김건희 여사에 대한 검찰 처분의 부당함이나 명태균씨 관련 의혹의 해소 등에 맞춰졌다는 점에서 한 대표의 명명은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한 대표가 이런 표현을 고수한 것에는 두 가지 노림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민주당에 대한 ‘이재명 방탄’ 프레임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집회의 취지에 대한 중도층의 공감을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반감을 활용해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즉, 한동훈 대표는 야당과 시민사회의 집회 성격이 ‘이재명 방탄’ 집회가 되는 게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에 이득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사실 한동훈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주요 인사들은 이전부터 이재명 대표 사건에 관한 1심 선고 일정을 정치적으로 충분히 활용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가령 한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립 구도를 연출하던 시기, 이재명 대표에 관한 1심 선고가 2024년 11월15일부터 나온다는 점을 언급하며 “그때도 지금처럼 김건희 여사 관련 이슈가 모든 국민이 모이면 이야기하는 ‘불만 1순위’라면 마치 ‘오멜라스’를 떠나듯이 민주당을 떠나는 민심이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측근인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징역형’을 예상하며 재판 생중계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자신들의 기대 수준에 맞는 선고가 나올 거라는 상당한 확신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메시지들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선거법 위반 1심 선고 직후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가 집회에 참여해 “미친 정권의 미친 판결”이라고 한 것은 한동훈 대표 식의 프레임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앞서 이재명 대표의 “팔팔하게 살아서…” 발언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 대표가 의도하는 효과를 내기에 좋은 소재일 것이다. 이런 행보보다는 법적 정당성은 철저하게 법정에서 법리를 따져 쟁취하고, 정치적 영역에선 윤석열 정권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대안 제시에 집중하는 게 올바른 해법이며 ‘남는 장사’이기도 하다는 거다.
정권과 여당도 남의 불행에 기대기만 하는 전략은 문제다. 한동훈 대표의 전략은 이재명 대표의 1심 선고를 기점으로 지지층 균열을 봉합하고 보수층 결집을 이루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일단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올려놓고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단기적으로 일부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른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 하락은 크게 두 가지 요인 때문에 일어났다. 첫째는 지지층도 방어하기 어려운 국정 난맥상인데, 여기에 기여한 것은 주로 김건희 여사 관련 논란이다. 둘째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 간의 대립 구도 때문에 지지층이 분열했기 때문이다. 이 두 요인은 악순환의 관계를 이뤄왔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 이후 한동훈 대표가 봉합을 선택하면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 자체는 멈춘 상태다. 거기에 한동훈 지도부가 가닥을 잡아온 대로 사법부가 이재명 대표 혐의를 일단 중하게 판단했으므로 국민의힘 지지층은 ‘역시 이재명 정권은 안 되는 것’이란 식으로 자신들의 존재적 정당성을 확인한 것으로 보고 일부 결집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이재명 대표에 대한 법원의 태도는 오히려 ‘이재명 방탄’ 프레임을 약화하고 ‘형평성’에 관한 의문을 새롭게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재명 대표의 발언에 징역 1년을 선고할 정도인데, 하물며 김건희 여사에 대해선?’이란 질문을 던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한동훈 대표는 이 비슷한 질문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던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최근엔 이를 포기하고 연말까지 오로지 ‘이재명, 이재명, 이재명…’만 반복할 기세다. 시험대에 오른 것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뿐만이 아닐지 모른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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