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는 이재명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 없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다수당 대표에게 유죄를 선고했다가는 판사가 탄핵당하지 않겠어?”
2024년 11월15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에서 열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지 집회를 찾은 이아무개(62·서울 광진구)씨가 함께 온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씨처럼 이날 모인 이 대표 지지자들은 한결같이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될 것이라는 확신을 내비쳤다.
오후 3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 한성진 재판장이 이 대표에게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는 인터넷 속보가 나오자 집회 현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잠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던 지지자들은 “이재명은 무죄다”라고 고함쳤고, 일부 지지자는 욕설을 섞어가며 “이재명이 징역 1년이면, 윤석열·김건희는 사형이다”라고 소리쳤다.
1심 법원은 이 대표의 발언이 대통령 선거라는 중요한 민주주의 행사에서 고의성이 짙은 허위 발언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에 이 대표의 국회의원직과 피선거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징역형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동시에 1심에서 징역형이 나올 경우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결과가 바뀌긴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선거법 위반 사건을 맡은 경험이 많은 ㄱ변호사는 “공직선거법 위반 1심 재판에서 국회의원직 박탈의 기준이 되는 금액은 통상 벌금 300만원으로 본다”며 “1심에서 300만원 미만의 벌금형이 선고되면 2심에서 감경요소를 적용해 100만원 미만의 벌금에 처할 수도 있지만,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되면 2심 재판부가 형량을 벌금 100만원 미만으로 낮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 쪽은 법리에 빈틈이 있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 쪽은 특히 항소심에서 ‘백현동 개발 국토부 압박’ 발언에 집중해 사실관계와 법리를 다툴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 쪽은 해당 발언이 2021년 10월20일 경기도청 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 발언이기 때문에 형사소추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증언감정법 제9조 3항은 “국회에서 증인·감정인·참고인으로 조사받은 사람은 이 법에서 정한 처벌을 받는 외에 그 증언·감정·진술로 인하여 어떠한 불이익한 처분도 받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 전망은 엇갈린다. 법제처 근무 경력이 있는 ㄴ변호사는 “이 대표 쪽에서 국회증언감정법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충분히 검토해볼 만한 주장이고, 항소심·상고심 재판부가 고민해볼 만하다”며 “이 부분이 받아들여지면 감형이 아닌 무죄로 선고가 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부장판사 출신의 ㄷ변호사는 “이미 1심에서 이 대표가 이러한 주장을 제기했고, 1심 재판부가 검토해서 해당 발언이 피감 기관장인 ‘경기도지사’ 이재명이 아니라 ‘대선 후보’ 이재명으로 발언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뒤집히기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이 사건과 관련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은 늦어도 2025년 하반기까지는 나올 전망이다. 공직선거법 제270조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1·2·3심 각각 6·3·3개월 안에 결론을 내리도록 정하고 있다. 수도권 고등법원에 근무하는 ㄹ부장판사는 “앞서 이 대표 사건을 심리했던 강규태 판사가 2024년 초 갑자기 사직하고, 이 대표가 총선 유세 과정에 피습당한 사건 등으로 인해 재판이 지연됐지만 항소심과 상고심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2025년 9월까지는 충분히 최종결론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산 넘어 산’이라는 점이다. 우선 11월25일엔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시절 재판에서 위증을 교사했다는 혐의를 받는 사건의 선고가 나온다.
이 대표는 2002년 당시 김병량 성남시장의 분당 파크뷰 의혹 취재를 하던 한국방송(KBS) 피디와 공모해 검사를 사칭했다는 혐의(공무원 자격 사칭)로 2004년 벌금 150만원형을 선고받았다.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 토론회에서 이 사건이 거론되자 이 대표는 “누명을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 발언이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이라며 기소했다. 해당 사건은 2022년 대법원 판결로 무죄가 확정됐지만, 2023년 검찰의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수사 과정에서 이 대표의 ‘위증교사’ 의혹이 다시 제기됐다.
백현동 개발업자이자 김 전 시장의 비서였던 김진성(56)씨의 휴대전화에서 이 대표와 통화한 녹음 파일이 발견된 것이다. 자신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인 김씨에게 이 대표는 2018년 12월22일부터 24일 사이 전화를 걸어 “검찰도 나를 손봐야 되고 (성남)시도 그렇고 케이비에스도 그렇고 전부 이해관계가 일치되는, 나한테 덮어씌우면 도움이 되는 사건”이라며 “(한국방송과 김 전 시장 간에) 교감이 있었다는 얘기를 해주면 딱 좋죠”라고 말했다. 김씨는 “내가 그때 (김 전 시장) 수행을 안 하고 있었다”고 말했지만 이 대표가 재차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해주면 되지”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 대화가 위증 요구라고 보고 2023년 10월 이 대표를 재차 기소했다. 이 대표는 위증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면 된다’고 이야기한 것뿐”이라는 입장이지만, 이미 김씨가 재판에서 위증을 인정한 사건이어서 이 대표에게 불리한 상황이다.
여기에 검찰이 11월19일 경기도지사 시절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업무상 배임)를 적용해 이 대표를 여섯 번째로 기소하면서 이 대표가 받아야 하는 재판은 다섯 건(한 건은 병합)이 됐다. 이것도 끝이 아니다.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부장 강성기)는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직 당시에 사업비 2천억원 규모로 추진된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호텔 개발사업에 특혜를 제공해 성남시에 손해를 끼쳤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또한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 서현욱)는 이 대표가 대선 후보 경선을 치를 당시 김성태 쌍방울 회장으로부터 1억5천만원을 쪼개기 방식으로 후원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서 이 대표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과 별개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게는 무딘 검찰의 칼날이 유독 이 대표에게만 엄격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후보자 시절에 “김만배와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회식 자리에 한두 번 왔을 뿐 개인적 관계는 없다”며 김만배와의 친분을 부정했다. 이후 김씨의 누나가 윤 대통령 부친의 집을 19억원에 매입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검찰은 2022년 9월 “개인적 관계와 친분 유무는 스스로의 평가 내지 의견 표현에 불과하다”며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했다.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몰랐다”고 말한 이 대표를 기소한 것과 대조되는 조처다. 또 김건희 여사의 허위 이력을 고발하는 언론 보도에 대해 윤 대통령은 “명백한 오보”라고 주장했지만, 김 여사의 이력은 보도대로 모두 허위였던 것으로 판명됐다. 그럼에도 검찰은 “허위성 인식이 있었다고 인식할 자료가 없다”며 이 발언 역시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장모가 사기를 당한 적은 있어도 누구한테 10원 한 장 피해 준 적 없다”고 했지만 윤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는 ‘349억원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로 2023년 11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선 2021년 10월15일 대선 경선 토론회에서 “네 달 정도 맡겼는데 손실을 봐서 돈을 빼고 절연했다”고 했으나, 김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주식 투자로 23억원의 차익을 얻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 발언들과 관련해선 검찰에 고발돼 있지만 수사가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 2023년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공판을 지휘했던 검찰 고위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이 대표의 ‘몰랐다’ 발언과 윤 대통령의 ‘관계가 없다’ 발언은 명백하게 다른 사안으로, 윤 대통령은 기소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2023년 말 검사장으로 승진해 지방검찰청장으로 영전했다.
검사 출신의 ㅁ변호사는 “똑같은 기준을 갖고 조사해야 하는데 이렇게 선택적으로 한 명을 집요하게 털어내는 방식의 수사로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며 “윤 대통령도 결국 임기가 끝나고 정권이 바뀌면 허위사실 공표(공직선거법 위반)와 관련해 수사를 받고 유죄로 인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검찰의 기소권 남용과 선택적 수사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이 대표가 처한 위태로움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1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이 대표는 곧바로 의원직을 내려놔야 하고, 이후 10년 동안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 국가로부터 보전받은 대선 비용 434억원도 반납해야 한다.
대법원 확정판결 이전이라도 또 다른 사건들에서 유죄가 선고되면, 이 대표의 처지는 더더욱 가시밭길이 된다. 이 때문에 당분간 이 대표 지지자들은 총력 결집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표를 지지하는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위증교사 혐의 1심 선고를 엿새 앞둔 11월19일 재판부에 ‘이재명 대표의 공정한 판결을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해당 탄원서에는 112만여 명이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 내부 분위기는 더욱 심란하다. 지난 대선 패배 이후 이 대표 중심의 일극 체제를 구축하는 데 전념해왔기 때문에 당내에선 이렇다 할 세력을 가진 경쟁자도 없는 상태다. 다만 앞으로의 시간은 점점 이 대표에게 불리해질 가능성이 크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11월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재명 대표에 대한 1심 법원의 판결은 누가 봐도 가혹해 보인다”면서도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집권 세력이 경쟁자를 사법처리 대상으로 만들고 무더기로 기소하는 현실에 대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야권에서 강력하게 비판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 이 대표가 투쟁의 중심에서 비켜서야 하고, 이 대표가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세력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방향으로 외연을 넓히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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