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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끄덩이와 엘레강스 사이

[KIN][KIN] X기자 부부의 주객전도/ 모던하고 세련된 카페, 수원 화서동 애플
등록 2011-04-06 07:48 수정 2020-05-02 19:26
» 모던하고 세련된 카페, 수원 화서동 애플. 한겨레21 X

» 모던하고 세련된 카페, 수원 화서동 애플. 한겨레21 X

새벽 2시30분, 마감을 끝내고 집에 기어 들어왔다. 홀로 음주를 한 와잎은 그날도 알라신도 두려워한다는 ‘꽐라신’이 되어 있었다. 인샬라! 몸은 천근만근인데, 자다 깬 4살배기 아들녀석은 신나서 놀아달라 하고, 와잎은 침대에 떡실신한 토요일 신새벽. 오 마이 라이프여! 토요일 오전, 봉두난발로 소파에 늘어져 있는 와잎에게 술 좀 줄이라 말했다. “술 줄이라고 하지 말고, 안주를 좋은 거 먹으라고 해! 그게 아내를 위하는 거야.” “….” 전화가 오는가 싶더니 좀비처럼 누워 있던 아내는 강시처럼 벌떡 일어나 나가자 외친다. 소팔(가명)이네 놀러가자는. 난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소팔이라면 ‘에디슨 치킨 폭력사건’의 주인공 아닌가 말이다.

때는 재작년 여름밤, 퇴근해서 집으로 가던 중 아내가 동네 치킨집에서 소팔이와 맥주를 마시고 있다며 오라 했다. 가보니 아들녀석은 유모차에서 자고 있었고, 아내와 소팔이는 불콰하게 취해 있었다. 당시는 2억원 이상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마련한 소팔이네 부부가 우리 동네로 이사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그 뒤 아파트값은 계속 내림세였다). 난 웃으며 소팔에게 짓궂게 농을 던졌다. “막차 탄 거 아냐?” 소팔이는 방방 떴다. 아파트값이 계속 떨어져 남편 눈치 보이는데 나까지 왜 그러냐는 거였다. “오빠는 항상 나한테 그런 식이었다”며 화를 냈다. 평소 박지성을 빼닮은 그녀의 외모를 두고 조심스럽게 놀린 적이 있는 난 연방 미안하다 머리를 조아렸다.

이 상황을 보고만 있던 와잎이 거들었다. “넌 왜 우리 오빠한테 자꾸 그러냐. 다 사실이구만.” 소팔이는 결국 폭발했다. “뭐라고 이 ×아!” “뭐야! 이 ×? 이 쌍×이!” 두 번의 욕설이 오간 뒤 사태는 육탄전으로 급전환됐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서로의 머리끄덩이를 잡았고 계단을 함께 굴렀다(오 마이 갓~). 부랴부랴 싸움을 말렸으나, 소팔이는 그사이 아내의 복부를 발로 가격하는 기민함을 보였다(아팠겠다). 겨우 뜯어말렸더니, 서로 다신 보지 말자며 욕을 교환하고 소팔이가 먼저 씩씩대며 가버렸다. 한 동네에서 개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었다. 아들녀석은 여전히 곤히 자고 있었다(그나마 다행). 내 만류에도 와잎은 집에 오자마자 절친들에게 전화를 걸어 소팔이가 만행을 벌였으니, 만나면 안 된다고, 만나면 끝이라고 공지를 돌렸다. 며칠 뒤, 다시는 안 볼 것 같던 두 사람은 함께 낮술을 먹는 엽기 행각을 벌여 주위를 경악하게 했다.

그런 소팔이네에 놀러가자니. 난 갑자기 회사에 출근하고 싶어졌다. 개 끌려가듯이 끌려간 경기도 수원. (남편의 발령으로 지난해 수원으로 이사간) 소팔이는 살가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들이 자주 가는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다고 안내했다. 재작년에 문을 연 카페 ‘애플’은 모던하고 에지 있는 인테리어에 고급스러운 요리를 내놓아 수원 지역에서 입소문이 자자하다는 곳이었다. 실제 인테리어 전문가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실내는 위압적이지 않은 세련됨으로 아늑했다. 와잎은 서울 압구정동 가로수길에 있어도 좋을 카페라며 좋아했다. 우아하게 한잔해야겠다며 칠레산 와인과 닭가슴살 샐러드를 주문했다. 신선한 채소에 특제 소스를 가미한 닭가슴살 샐러드는 연하고 부드러웠다. 특히 샐러드 위에 튀겨낸 면발 굵기의 튀김은 색다른 풍미를 더했다. 그날의 머리끄덩이는 다 잊은 듯, 와잎과 소팔이는 엘레강스하게 와인잔을 기울였다. 혹시나 제2의 사태가 벌어질까 난 그저 샐러드만 먹었다. 문의 031-296-2936.

*‘X기자 부부의 주객전도’는 분위기 좋은 술집을 부부가 함께 소개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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