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한국 사회에서 대중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장르다. 그러나 는 네 작가의 화제성, ‘현실에 발 디딘 SF’라는 평가 등으로 출간 직후부터 시선을 모으고 있다. 은 2년간의 조율을 거쳐 세상에 나온 에 참여한 네 작가를 8월22일 오전 10시 메신저로 불러모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거대 자본의 기만, 서로 다른 공간에서 온 사람들 사이의 소통 불능과 주변화, 고립된 공간에서 이뤄지는 폭력과 혐오 등을 읽으며 독자들은 자꾸 ‘여기, 한국’을 떠올린다. 이런 반응에 네 작가는 “SF 독법이 한국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를 찾는 방식으로만 이뤄져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태양계 이야기는 태양계 이야기로 즐겨달라는 말.
“실험 중, 아아아아.” 듀나 작가의 발랄한 ‘마이크 테스트’로 시작된 ‘리얼 메신저 토크’를 중계한다. _편집자</font>
듀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금성의 하늘 도시를 배경으로 쓰려 했는데 (장강명 작가에게) 선점당했고 그다음에 타이탄(토성의 위성)을 배경으로 쓰고 있었는데 또 김보영 작가와 겹쳤고…. 그러니까 싸고 넓은 집을 찾으려고 계속 교외로 밀려났다.
김보영 우주는 어디든 상관없었기 때문에 다른 분들이 고른 뒤 남는 곳을 고르려 했다. 원래는 가장 멀리 가려 했다. 그러면 마지막을 장식하니까. (하하) 그런데 듀나님과 같이 토성을 선택하게 됐다. 바꿀까 고민하던 중 듀나님이 해왕성으로 날아갔다.
듀나 천왕성을 쓰고 싶었지만 위성들이 너무 작아서 중력이 좀 있는 위성이면 편할 거 같았다. 트리톤(해왕성의 가장 큰 위성)이 공간이 되면서 이야기가 더 절실해진 것 같다. 아무래도 토성은 번잡한 도시 느낌이니까.
장강명 난 주제로부터 (고민을) 시작했다. 소통과 기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TV 교양 프로그램에 몇 번 출연했다. 출연자들이 즉석에서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대본이 있었다. 편집에 따라 최종 결과물도 원래 의도와 달라지기도 했다. 불쾌하다기보다 흥미로웠다. 그걸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을 그려보고 싶었다. SF의 장점 중 하나가 마음껏 과장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니…. 고립된 곳에서 어떤 말을 해도 본의대로 전달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려면 행성 간 통신 비용이 아주 비싸서 일부 기업만 독점하는 가까운 미래여야 했고, 가까운 미래에 갈 만한 행성은 해왕성은 아니고, 갇힌 느낌을 강화하려면 화성보다는 금성이 좋겠다, 그런 식으로 좁혀나갔다.
배명훈 사실 직전에 화성 이야기를 한참 써서, 태양계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았다. 이 책의 첫 기획은 ‘한국적인 SF’였는데 소재가 ‘태양계’로 바뀌어서 한동안 멍했다. 그런데 아무도 안 골라 화성을 차지했다.
각 작품의 시점은 언제인가. 구체적인 연도가 있나.듀나 구체적인 시대는 정하지 않았다.
장강명 2040년 정도?
배명훈 연도는 잘 모르겠다. 강대국의 투자 금액에 따라 50년쯤 차이가 날 것 같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장강명 “내 키워드는 기만과 소통” </font></font>김보영 내 주인공은 사람 몸에 들어간 인공지능이니 그게 가능한 때가 아닐까. 이 작품집이 재미있는 건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인공지능이 점점 발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더 미래로 보인다. 게재 순서도 거리순이니…. 이렇게 된 건 물론 우연이다. 거리가 먼 행성을 택하는 작가가 더 과감한 선택을 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 아닐까.
장강명 ‘태양계-현대과학 테두리’라는 규칙에서 이 정도 연대기가 나온 게 그리 놀라운 우연의 일치 같지는 않다. 외행성 개발은 더 먼 미래에 할 것이니, 외행성을 택한 사람은 당연히 더 먼 미래가 될 개연성이 높다.
작품에서 오늘을 환기하는 ‘혐오’ ‘배제’ ‘주변화’ ‘타자에 대한 폭력’ 같은 키워드가 공통적으로 읽혔다.장강명 내 키워드는 (앞서 얘기한) 기만과 소통. 하지만 독자가 읽기 나름이라고 본다.
배명훈 역법, 시간차, 봉건제 같은 것들이다. 지구와 화성, 두 행성 사람들이 결국 서로 이해 못하는 이야기인데, 그 이유는 공간 구조 때문이라고 보는 이야기다.
김보영 타자. 예전에 문학잡지 (Axt)에서 듀나 작가를 인터뷰할 때 그 인터뷰 전체가 타자를 대하는 태도라고 느꼈다. (문학잡지 <axt>는 2016년 1·2월호에서 듀나 작가를 표지 인물로 내세우면서 작품 세계는 논하지 않고 신상·익명성에 기반한 질문으로 일관해 논란을 빚었다. 백다흠 편집장은 사과했고, 는 듀나 작가를 다시 인터뷰했다.) 흔히 일반 문학이 장르문학에 대해 갖는 태도다.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때로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지만 동시에 일반문학을 대체하거나 무너뜨릴 거라는 공포에 계속 휩싸이고(열등한데 어떻게 대체하지?), 나를 동경하고 나처럼 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합쳐놓고 보면 앞뒤가 다 안 맞는다. 인간이 소설에서 로봇을 다룰 때도 비슷한 태도를 취한다.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그걸 통합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듀나 아이들, 세대 그런 것이 될 텐데….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려고 쓴 건 아니었다. 내 이야기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 우주에 흩어진 미립자들이 필름을 거꾸로 돌리듯 한 점으로 모아지는 현상이다. 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거기에 인간을 추가했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왜 네 편이 다 미스터리 구조로 시작할까”</font></font>
최소한의 규칙만 정하고 썼는데, 네 편 모두 현실의 문제를 깊이 환기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장강명 원래 인간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존재라서 점 네 개 있으면 어떻게든 별자리를 그린다.
김보영 라는 히어로 단편집을 기획한 적이 있다. 1년 정도 기획 기간을 두고 같은 시기에 시작해서 같이 마감하니까 그해 시대상이 전체적으로 반영됐다. 당시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2014년이어서 아이들이 죽고 시스템이 붕괴된 한국이 많이 반영됐다.
장강명 한국에 대한 SF 독법이 좀 한정적이라서, 어떻게든 한국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으려 한다.
배명훈 문단에서는 ‘어려운 과학적 지식’으로 해두고 과학 부분은 안 다루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사회와 인물만 남으니까, 비유로 읽히는 것 같다. ‘태양계를 배경으로 했지만 결국 우리 현실 이야기다’ 이런 결론이 나는데, 우리가 쓴 건 태양계 이야기이기 때문에 좀 아쉽다.
장강명 ‘한국 상황 비판’으로만 보기보다는 그 결을 들여다보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왜 네 편이 다 미스터리 구조로 시작할까.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라는 무력감의 정서가 한국 사회 전반에 넓게 퍼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왜 네 작품의 주인공들은 다 그 시스템의 ‘규칙’을 찾으려 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도 재미있는 독서 경험이 될 듯하다. 한국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는 데서 감상이 멈춘다면 아쉬운 일이다.
듀나 한국 현실을 가장 잘 다루는 법은 한국 현실 그대로 소재 삼아 쓰는 것이다. 굳이 미래까지 가서 지금 현실만 볼 필요는 없다. 물론 우린 현실에 갇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금 현실을 반영하게 되지만.
<font size="4"><font color="#C21A1A">“여전히 공존 가능성 열어두고 있다” </font></font>
인간은 인공지능(AI)에 두려움을 느낀다. 지금도 인공지능에 일자리를 뺏길까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성’이 승리할까.
장강명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존은 심각한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인공지능과 결합한 신 엘리트 계층과 그렇지 않은 보통 인간들이 공존할까, 이게 더 심각한 문제일 듯하다. 레이 커즈와일이나 유발 하라리의 주장처럼 기술과 결합한 초인이 등장하고 초인이 인간성을 얼마나 지닐지는 모르겠지만,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비관적인 미래가 열릴 것이다. 배제, 멸종, 착취 같은….
김보영 나는 열심히 인공지능과 인간은 영역이 다르니 공존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을 밀어내기 바라는 듀나님이 내 뒤에 계시는 바람에 ‘음, 다 소용없어졌군’ 싶다. (하하)
듀나 내 이야기에서도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하지만 작품 내의 논리가 그렇다는 거고, 난 여전히 인공지능이 인류를 몰아내기 바란다.
김보영 와하하하! 인공지능은 제일 싸울 필요가 없는 대상이다. 그런데도 싸움을 상상하는 건 우리가 인공지능에 타자성을 부여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작가지망생들이 인공지능이나 로봇을 다룰 때 소수자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낼 때가 많다.
듀나 작가는 이번 작품 협업 과정에 대해 “다른 이야기꾼의 작품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부가 되는 경험”이라고 말했다. 배명훈 작가의 ‘외합절 휴가’ 아이디어가 “탐난다”고 했고, 장강명 작가의 “‘당신은 뜨거운 별에’는 읽으면서 존 발리(미국 SF 작가) 식으로 변주했다”고 말했다. 김보영 작가가 인공지능의 정체성을 다루는 방식을 “서랍 안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참고할 것 같다”고도 했다. 네 작가가 뜨겁게 지어낸 이후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font color="#008ABD">진행·정리</font>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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