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뭔 일이지? ‘얘기 좀 하자’는 건 뭔가 걸렸다는 얘기인데. 알파고를 연신 돌려봐도 걸릴 게 없었다. 와잎 몰래 쓴 카드가 걸렸나? 전표를 다 폐기했는데. 에라~ 모르겠다~. 대차게 나가자~. 휴가 아니 출장 갔다 집에 와보니 아무도 없었다. 식탁엔 메모 한 장이 있었다. ‘나, 돈이랑 율이랑 밖에서 놀다 올 거니까 찾지 마. 그리고 긴장 타고 있어~.’ 앗싸~. 오늘 하루는 벌었구나~. 최측근들을 대동하고 어딜 가시려고 하나? 아들 녀석은 데리고 갔겠지? 하하.
강원도 양양 출장에 가져간 캠핑 장비를 차에서 집으로 옮겼다. 30분 걸렸다. 망할. 육수가 마구 터져나왔다. 초정리 광천수로구나~. 다용도실에 때려넣고 한숨 돌리는데 아들 녀석이 도은씨와 유리씨 아들들과 함께 나타났다. 엄마랑 같이 간 거 아니니? “엄마가 집에서 아빠랑 놀라고 하던데?” 아놔~. 아주 날 멕이시겠다~. 사내 녀석들은 레고 장난감을 들고 거실로 나와 난장판을 만들기 시작했다. 샤워하고 캔맥주 마시면서 마감하려던 내 계획은 수챗구멍으로 빨려들어갔다. 얼라들은 배고프다고 했다. 볶음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달걀프라이를 얹어달라고 했다. 아이스크림도 달라고 했다. 녹아서 못 먹겠다고 했다. 망할~. 애들이 남겨놓은 볶음밥에 아이스크림까지 처묵처묵하는데 현기증이 밀려왔다. 그때 와잎에게 영상통화가 왔다. 찾지 말라더니 웬 영통까지. 영통에 가셨나~ 하하. “애들 뭐 먹였어? 볶음밥이랑 아이스크림 있는데.” 아주 남편은 뭐 먹었냐고 물어보지도 않는구만~. 얼라들이 날 엿 먹이고 있고만. 와잎 뒤에선 돈씨와 율씨가 “형부~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소릴 치고 있었다. 그들이 간 곳은 홍대의 분위기 좋은 이자카야인 개화기요정. 테이블엔 음식이 그득했다. 와잎은 비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곧장 내 방 비밀서랍을 뒤졌다. 악~. 비자금용 현금카드가 없다. 아끼고 아낀 내 돈 50만원이 돈씨와 율씨, 와잎의 입으로 꾸역꾸역 흡혈되고 있었다. 마이 돈! Don’t! 거실로 나와 나라 잃은 표정으로 망연자실 소파에 앉았다. 엄마와 영통을 마친 얼라들이 배고프다고 했다. 치킨이 먹고 싶다고 했다. 피자도 먹고 싶다고 했다. 콜라도 먹으면 안 되냐고 했다. 얼라들은 내 휴대전화를 빼앗아 전화로 주문했다. 야~ 따로따로 시키지 말고 ‘피자나라치킨공주’ 시켜~. 넋 놓고 있던 난 절규했다. 그날 와잎은 내 비자금의 절반을 쓰고 신새벽에야 귀가했다. 개(인)화기요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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