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소셜미디어 타임라인은 종영까지 두 에피소드를 남겨둔 tvN 드라마 이야기가 장악 중이다.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을 처음엔 흘려보다가 결국 나도 대열에 합류했다. 드라마 주인공인 검사 황시목(조승우)은 뇌섬엽제거수술의 후유증으로 감정을 잃은 사람이다. 나를 열혈 시청자로 안착시킨 데는 이 설정의 공이 컸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상황에 자연스럽게 거리를 둘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황시목은 문제 해결에서 누구와의 갈등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 때문에 대부분의 등장인물과 크고 작은 대립을 일으킨다. 저런 갈등에 부딪혔을 때 나라면 느꼈을 감정이 떠올라 불편해졌다가도 “황시목은 감정이 없으니까”라고 생각하면 불편함이 금세 누그러진다.
감정이 없거나 가족이 없어야?
에는 인간적이며, 그래서 정의로울 수 없는 사람들이 숱하게 등장한다. 우리 식구라서 감싸고, 나를 끌어준 보스이니 믿어주고, 가족을 지키려고 입을 다문다. 정의에 가장 근접한 듯 보이던 영일재(이호재) 전 법무부 장관조차 “나의 정의는 내 가족을 지키는 것”임을 깨달았다며 자신의 두려움을 정의로 포장한다. 이런 자기합리화를 비난하기는 쉽지 않다. 나라면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자신할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보통 사람들은 매번 정의의 편에 서는 황시목을 오히려 비난한다.
황시목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저것도 인간이냐” 싶은 사람으로 여겨진다. 가까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갈라서 생각하지 않는 황시목은 일상의 관점에서 보면 ‘나쁜’ 사람이다. 감정이 없어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 황시목은 어디를 가나 외톨이다. 그러나 길게 두고 보면 그것은 황시목만이 완벽한 정의를 실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기 감정을 대입할 수 없기에 일관되게 불편부당한 태도로 사태에 접근할 수 있다.
황시목과 정반대의 방식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인물은 또 한 명의 주인공인 형사 한여진(배두나)이다. 황시목이 누구에게도 감정을 느끼지 않는 가장 ‘비인간적인’ 사람이라면, 한여진은 모두에게 따뜻한, 가장 ‘인간적인’ 얼굴을 가진 사람이다. 한여진은 살인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피해자를 집에 재우고, 아버지를 잃은 아들을 토닥인다. 동료의 비겁함과 상사의 불의에 눈감지 않지만, 그들에게 분노하기보다 그들의 나약함이 “슬프다”고 말한다. 그들이 범죄자로 단죄될 때도 최소한의 품위를 지켜줄 방법을 찾는다.
누구에게도 개인적인 멸시나 증오를 품지 않는 한여진은 감정 없는 황시목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더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럼에도 이 인물에게 설득력이 있다면, 그에게는 지켜야 할 사람이 없다는 설정 덕분일 것이다. 이는 황시목의 ‘뇌수술’과 대칭을 이루는 장치다. 드라마는 한여진의 가족이나 친구를 전혀 보여주지 않고, 한여진도 자신의 사적 관계망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드라마 속 보통 사람들과 달리 생계와 정의, 가족의 안위와 정의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는다. 그는 자연스럽게 정의의 편에 서고 그러지 못하는 이들을 연민한다.
정의로운 건 시스템이어야 한다
황시목과 한여진은 가장 비현실적 인물들로 현실에서 어떤 개인에게도 이 정도의 냉정과 온정을 기대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지켜야 할 것을 사회가 지켜주지 않을 때, 우리는 누구에게도 개인적 정의를 뛰어넘는 사회적 정의를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두 인물은 우리가 기대하는 정의로운 시스템의 두 얼굴을 상징한다. ‘인간적인’ 사람들이 너무 뜨거운 감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쏟을 수밖에 없을 때, 인간적 반응의 범위 밖에서 경계 없는 냉정과 온정을 베푸는 것은 잘 설계된 시스템이 떠맡을 의무다. 그런 시스템이 있는 사회에서라면, 오히려 개별의 인간적인 사람들이 비인간적 용기를 발휘하지 않고도 정의에 가깝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사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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