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신과 종범신.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신(神)이란 칭호를 얻는 선수는 많지 않다. 그 가운데 양준혁과 이종범은 1990년대부터 한국 프로야구를 지배한 신과 같은 선수였다. 1993년 같은 해에 데뷔해, 신인상은 양준혁이 차지했지만 이종범은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두 선수 모두 입단 첫해부터 한국 야구를 지배했다.
영호남이란 지역적 특성과 함께 비슷한 시기에 선수생활을 한 만큼 두 선수는 라이벌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야구 커뮤니티에는 “누가 더 훌륭한 선수인가요?”라는 질문이 많이 올라온다. 야구는 통계와 기록의 스포츠다. 그래서 팬은 늘 기록으로 선수들을 줄 세우기 좋아하고, OPS(출루율과 장타율의 합)를 넘어 WAR(대체 선수보다 얼마나 승리에 기여했는지 보여주는 수치)나 wRC+(경기장 요소까지 고려한 타자의 득점 창출력) 같은 복잡한 전문용어까지 등장시키며 선수들을 비교한다.
“누가 더 훌륭한 선수인가요?” 질문에 “둘 다 훌륭한 선수입니다”라고 황희 정승 같은 대답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양준혁이 더 훌륭한 선수였다고 답할 것이다. 기록이 그렇게 말해준다. 물론 나 역시 이종범의 엄청난 퍼포먼스에 감탄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상대팀에 정말 악마 같은 선수였고 그가 보여준 임팩트를 뛰어넘는 선수를 아직 보지 못했다.
하지만 비율 스탯과 누적 스탯 모두 양준혁이 이종범보다 위였다. 이종범 팬들은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등장한 무리수가 바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였다. “이종범에겐 스탯 이상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이종범은 숫자로만 평가할 수 없는 선수다” 같은 말을 근거(?)로 내세웠다. 다른 야구팬의 반발을 사는 건 당연했다. 이 증명할 수 없는 ‘느낌적 느낌’은 기록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이 논란은 결국 지역감정이 더해지고 불편한 인터넷 속어까지 만들어지며 씁쓸하게 마무리됐다.
기록의 스포츠를 좋아하는 야구팬이 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신봉하는 건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여전히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만수 vs 박경완’의 최고 포수 논쟁도 마찬가지다. 기록에서 박경완은 이만수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포수 이만수를 폄하하던 몇몇 야구인의 증언과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포수 리드’를 앞세워 박경완을 최고 자리에 올려놓으려는 이들이 있다. 요즘으로 치면 ‘포수 보는 최형우’ 대신 가위바위보 같은 볼 배합을 내세워 최고를 정하겠다는 셈이다.
이런 개인적 믿음을 갖는 것은 자유다. 실제 다른 이가 보지 못한 것을 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누군가를 띄우고 폄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득점권 타율’도 보이지 않는 허상에 가깝다. 잠시 득점권 타율이 높을 순 있어도 결국 평균에 근접하기 마련이다. 미국 프로야구의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늘 찬스에 약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로드리게스의 평균 타율은 0.297, 득점권 타율은 0.294다. 반면 데이비드 오티스는 ‘클러치 히터’(득점 기회가 생겼을 때 안타를 치는 타자)의 대명사였다. 그의 평균 타율은 0.284, 득점권 타율은 0.293이다. 야구팬이라면, 기록을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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