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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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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도, 괴로움도 다시 플레이볼

‘이게 야구지’라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
등록 2018-04-06 07:22 수정 2020-05-03 04:28
한겨레 자료

한겨레 자료

개막전이 지난주말인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야구에 대한 관심이 전보다 약해졌다고 생각했다. 최근 우승도 두 번 연속 하고 성적이 계속 좋아서 그랬는지 갈망이나 간절함 같은 것도 예전 같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되고 평일 저녁에 일이 없을 때면 어김없이 야구 채널을 찾는 나를 발견한다. 엊그제는 소파에 누워 야구를 보며 ‘이게 야구지’라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을 했다.

1982년 원년부터 야구를 봐왔다고 얘기하지만 경기 하나하나가 기억나는 건 아니다. 신경식의 다리 찢기 포구, 박철순의 와인드업, 윤동균과 김우열의 호쾌한 스윙 정도가 조각조각 기억날 뿐이다. 그저 대전 연고란 이유로 응원했던 팀이 우승했고, 어느 날 OB베어스 우승 기념컵 세트가 찬장에 올려져 있었다. 지금 봐도 예쁜 그 컵과 컵에 그려진 곰을 보며 더 OB베어스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1990년대 초·중반 나는 외로웠다. OB는 서울로 연고지를 옮겨 올라갔고, 주변 친구들은 모두 새로운 연고 구단 빙그레(한화) 이글스를 응원하고 있었다. 나 혼자만 첫정을 떼지 못하고 OB베어스를 응원했다. 더구나 당시 OB베어스는 암흑기라고 할 정도로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고, 라이벌 LG트윈스에 번번이 ‘발렸다’. 그나마 OB의 암흑기를 버텨주던 에이스 김상진(사진)은 LG 이상훈과의 맞대결에서 늘 한끗 차이로 졌다.

그 암흑기에도 굳이 야구를 챙겨보며 괴로워했다. 상황이 바뀐 지금은 (이제 5경기 했음에도) LG와 롯데를 응원하는 지인들의 한탄과 분노가 온·오프라인에서 터져나온다. 가끔 야구가 뭐기에 사람의 기분을 이렇게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나 생각한다. 그깟 공놀이가 뭐기에 거의 자학이나 마찬가지인 이 행위를 반복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이게 야구지’라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을 한다.

야구는 어느새 내 삶의, 또 우리 삶의 한 부분이 됐다. 일상이란 말로 바꿔 써도 될 것이다. 얼마 전 야구를 보지 않는 지인이 야구의 가장 큰 매력이 뭐냐 묻기에 ‘매일 하는 것’이라 답했다.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 같은 거창한 이야기보다는 그냥 매일매일 맞이하는 일상의 한 부분이라 말하는 게 더 잘 어울린다. 매일 보는 가족·연인·친구처럼 야구는 늘 내 일상에 있고, 그들이 그러는 것처럼 야구 역시 즐거움과 괴로움을 준다. 나에겐 이게 야구다.

아버지가 매일 야구를 챙겨본다는 걸 안 건 지난해였다. 은퇴하시고 거의 집에 계시는 아버지는 날마다 한화 이글스의 경기를 보시는 게 낙이라고 한다. ‘김성근식 야구’는 퇴출돼야 한다며 그러려면 한화의 성적이 더 나빠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아버지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아버지가 일상에서 더 많은 즐거움을 느끼도록 올해는 한화의 선전을 슬쩍 바라본다. 70대 노인의 일상에도 야구가 있고, 저 이역만리에서도 포털 사이트 중계를 챙겨보며 일상을 함께 나누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봄과 함께 특별할 것 없는 야구 시즌이 시작됐다. 야구도, 우리의 즐거움도, 괴로움도 다시 플레이볼이다.

김학선 스포츠 덕후 겸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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