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야구 게임이 있었다. 탁월한 밸런스와 현실적인 완성도로 인기가 높았다. 야구 게임의 명작으로 10년 넘게 그 게임만 하는 이들이 있었고, 나도 몇 년간 신시네티 레즈의 단장 겸 감독으로 팀을 이끌었다.
이 게임에 나오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는 더스틴 니퍼트라는 투수가 있었다. 나와 붙을 땐 여지없이 패했지만, 늘 좋은 성적을 올리며 신인인데도 팀의 에이스였다. 당시 많은 기대를 모은 투수였는지 능력치가 높게 책정돼 매해 10승 이상을 올리는 활약을 했다.
을 하지 않게 되며 잊었던 그 이름을 다시 들은 건 몇 년이 지나서였다. 더스틴 니퍼트가 두산 베어스의 새 외국인 투수로 계약한 것이다. 게임에서나 마주치던 선수를 실제 응원팀의 선수로 맞이하는 기분은 묘했다. 물론 상황은 많이 달랐다. 그는 애리조나의 에이스가 되지 못했고, 기대만큼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패전 처리 전문 투수로 뛰다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됐다. 텍사스에서 월드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기도 했지만 붙박이 선발로 뛰지는 못했다. 메이저리그에서 그의 야구 인생은 ‘못했다’로 귀결됐다.
결과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그는 실패한 선수였지만 그의 인생까지 그렇진 않았다. 두산 베어스에서 그는 최고의 인생을 보냈다. 팀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박철순에게 “니퍼트라면 기꺼이 21번(영구 결번된 박철순의 등번호)을 양보하겠다. 니퍼트는 외국인 선수가 아니다”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야구 인생에서도, 실제 삶에서도 그는 두산 베어스에서 가장 좋은 시절을 보냈다.
메이저리그에서 5선발과 불펜 투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그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명실상부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7시즌 동안 94승을 거두며 두산 베어스 투수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승수를 거뒀고, 외국인 선수로서 가장 많은 승리를 기록한 투수가 됐다. 미국 야구와 한국 야구의 격차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겠지만, 더스틴 니퍼트는 리그의 규모와 수준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더스틴 니퍼트를 칭송하는 건 단순히 그의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야구선수 니퍼트는 이닝이 끝나고 공수가 교체될 때 바로 불펜으로 들어가지 않고 야수들을 기다리며 일일이 격려해줬다. 야구장 밖의 인간 니퍼트는 매달 소외 계층 아이 20~30여 명을 초청해 자비로 야구장 입장권과 식사, 유니폼을 지원했다. 그는 한국 야구를 존중하고, 한국을 존중했다. 그런 그를 팬들은 ‘니느님’(니퍼트+하느님)이라 불렀고, 동료 선수들은 ‘퍼트 형’이라 불렀다.
‘용병’이란 말은 끔찍하다. ‘품 팔 용(傭)’에 ‘병사 병(兵)’이 더해진 이 말에는 언제든 쓰다 버리겠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방송·언론 종사자가 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건 서글픈 일이다. 두산 베어스에서 7시즌을 뛰며 그만큼 나이를 먹은 니퍼트는 기량 저하와 높은 연봉으로 재계약에 실패했다. 구단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용(傭)’자가 머릿속에 맴돈다. “꼭 두산 베어스에서 은퇴하겠다”는 니퍼트의 말은 지켜질 수 없게 됐지만 이를 탓하는 팬은 없을 것이다. 그가 새롭게 옮긴 구단 kt 위즈에서 꼭 100승을 거두길 바란다. 7시즌 동안 행복하게 야구를 보게 해준 ‘용병’이 아닌 ‘우리 선수’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바람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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