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혹사와 투혼 사이

한국에 이식된 일본 야구의 근성론
등록 2018-02-07 16:44 수정 2020-05-02 19:28
네이버 무비

네이버 무비

야구는 미국에서 탄생한 스포츠다. 한국에서 처음 야구를 시작한 배경에도 미국의 역할이 컸다.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1904년 한국 최초의 야구단 ‘황성 YMCA 야구단’을 만들었다. 그가 YMCA 청년 회원들에게 처음 야구를 알려준 1904년을 한국 야구 원년으로 본다.

야구는 미국에서 탄생한 스포츠지만 한국 야구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친 건 일본 야구다. 한 맛집 프로그램에선 ‘일제강점기’란 말이 수시로 나온다.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인의 식습관이나 음식문화가 그만큼 많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야구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야구를 누구보다 빠르게 받아들인 일본과,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한국도 야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일본 야구는 늘 ‘선진 야구’로 받아들여졌다. 가까운 일본과 교류하며 실력이 뛰어난 선수는 일본에 건너갔고, 일본 리그에서 뛰는 재일동포도 꽤 있었다.

1982년 한국에도 프로야구가 생기며 재일동포 선수들이 한국으로 건너왔다. 전무후무한 ‘4할 타자’ 백인천이나 역시 전무후무한 ‘30승 투수’ 장명부, 한 시대를 풍미한 ‘황금박쥐’ 김일융 등이 대표적 재일동포 선수였다. ‘전무후무’란 말을 쓸 정도로 이들의 실력은 압도적이었다. 일본에서도 최정상급은 아니었던 선수들이 한국에서 이처럼 압도적 실력을 뽐내니 일본 야구의 위상은 더 높아졌다.

그 영향 아래 일본 야구의 많은 부분이 한국에 이식됐다. ‘힘의 미국, 세밀함의 일본’ 같은 잘못된 인식도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힘이든 세밀함이든 미국이 압도적이지만 여전히 ‘힘의 미국, 세밀함의 일본’을 믿는 야구인이 상당수 있을 정도로 일본 야구의 환상은 컸다.

그 환상의 부정적 영향도 있었다. 가장 안 좋은 영향은 ‘혹사’와 관련한 것이다. 지금이야 투수 어깨는 쓸수록 닳는다는 일명 ‘분필론’이 대세를 이루지만, 여전히 투수의 어깨는 쓸수록 강해진다는 일본 야구의 일설을 믿는 야구인들이 있다. 김성근이나 선동열처럼 일본에서 야구를 배우거나 경험한 지도자들이다. 선수 생명을 일찍 지게 하는 결정적 단점 말고도 혹사 이론이 나쁜 점은, 선수가 가지는 육체적 한계를 정신력과 연결하며 일종의 ‘근성’론으로 선수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일본식 한자 읽기로 ‘곤조’가 되는 근성은 너무나 미화돼 쓰인다. 2013년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에서 고등학생 투수 안라쿠 도모히로는 5경기 동안 772구를 던지며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혹사를 ‘근성’으로 포장하는 이가 많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대’라 써도 될 만큼 명백한 혹사를 ‘투혼’으로 포장하는 언론이 여전히 있다.

얼마 전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는 일본 야구의 근성론을 비판했다. 기사에 따르면 다르빗슈는 “일본의 감독들은 정확한 야구 지식 없이 자신들이 과거에 성공했던 경험만을 바탕으로 선수들에게 무리를 강요한다”고 했다. ‘일본의 감독들은’에서 일본을 한국으로 바꿔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 ‘선진 야구’ 일본에서 배울 것은 이런 게 아니다. 한국 현실에선 어려운 일이겠지만, 다르빗슈 같은 선수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혹사는 잘못된 거라고, 당신들의 이론은 한참 철 지난 거라고 말하는 ‘근성’ 있는 선수가 나왔으면 좋겠다.

김학선 스포츠 덕후 겸 음악평론가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