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솔직히 오늘 받을 줄 모르고 축하해주러 왔는데 받게 됐네요. 받을 줄 알았으면 나비넥타이 매고 올걸, 후회가 됩니다.”
2017 KBO(한국야구위원회)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1루수 부문 수상자인 롯데 자이언츠의 이대호(사진)는 수상 소감으로 먼저 이 말을 꺼냈다. 본인도 겸연쩍어서였을까. 이날 이대호의 수상 소식을 전하는 한 언론사의 기사 제목은 “스스로도 놀란 수상”이었다.
몇 주 전 이미 골든글러브 관련 글을 썼다. 늘 우승 프리미엄, 외국인 차별, 친분, 현대 야구와 동떨어진 야구관 등 자격 없는 기자들의 투표로 한 해의 프로야구 최고 선수들이 결정되는 어처구니없음에 대해 썼다. 올해의 결과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기자가 기자한 것이다”. 올해도 많은 기자가 외국인이라서 표를 안 주고, 우승했다고 표를 주고, 유명하다고 표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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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는 한화 이글스의 로사리오보다 단 하나도 나은 부문이 없다. 이른바 클래식 스탯(능력 수준을 통계 수치로 보여주는 체계)이라는 타율·타점·홈런은 물론이고, OPS(출루율과 장타율의 합), WAR(대체 선수에 비해 얼마나 많이 승리에 기여했는지 보여주는 수치) 등 세세한 부분까지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다. 하지만 로사리오보다 40표 가까운 표를 더 얻고 골든글러브 수상자가 됐다. 흔히 “영예의 주인공이 됐다”는 표현을 쓰지만, 결코 영예로운 수상이 아니다. 올해를 끝으로 한국을 떠나 일본 리그로 이적하는 로사리오를 고깝게 본 ‘한국’ 기자들의 어긋난 선택이 영예로울 수 없다.
번번이 논란이 되는 건 ‘우승 프리미엄’이다. 골든글러브는 한 해의 리그 성적으로 투표하지만 해마다 우승팀 선수들에게 표가 몰린다. 뭘 잘 모를 때 가장 쉬운 선택이기도 하다. 올해의 가장 큰 희생자는 두산 베어스의 박건우였다. 그는 올해 중견수로는 역대급 성적을 거두었고, 수비 비중이 큰 중견수 포지션과 잠실이라는 큰 경기장을 쓰는 나쁜 조건에서 최고라 해도 좋을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보다 한참 아래의 성적을 거둔 우승팀 중견수 버나디나에게 상을 내주어야 했다. 말하자면 지금 골든글러브 시상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우승 > 유명도 > 국적’ 순인 셈이다.
잠시 얘기를 돌려, 나는 음악평론가로서 해마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참여한다. 70명 정도 선정위원이 있고 해마다 인원을 더 늘리려 하지만 쉽지 않다. 새로운 선정위원을 충원하려 할 때 그 대상이 지금 대중음악계에서 실제 일하고 있는지를 까다롭게 따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한 해 동안 음악을 성실히 듣지 않았다고 판단하거나 현직에서 떠나면 스스로 자리를 내놓는 사람도 제법 있다. 이렇게 해야 상의 권위가 만들어진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골든글러브의 투표인단은 무려 383명이다. KBO는 “KBO 리그를 담당한 취재·사진기자, 중계방송사 PD, 해설위원, 아나운서 등 미디어 관계자”가 투표인단이라 밝혔지만, 야구 미디어 관계자가 이렇게 많다는 건 믿기 어렵다. 세상은 바뀌었고 어떤 면에선 팬들이 더 전문적이다. 팬들은 갖가지 기록과 세부 지표를 들고 논쟁하는데 기자들은 아직도 우승했으니까 한 표, 유명하니까 한 표다. 투표인단 수를 대폭 줄이고 더 전문적으로 가야 한다. 야구장 대신 방송사를 돌며 바쁘게 연예인 취재하던 기자가 잠시 짬을 내 투표한 결과에 어떤 권위를 부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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