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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복용의 불명예는 영원하라

‘약재환’ 논란 낳은 두산 김재환
등록 2017-08-15 18:31 수정 2020-05-03 04:28
연합뉴스

연합뉴스

지난 8월5일 토요일 밤. 야구 커뮤니티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두산과 LG가 1 대 1로 팽팽히 맞선 9회초, 두산의 4번 타자 김재환(사진)의 홈런이 터진 것이다. 2 대 1, 결과는 그대로 끝났다. 난리 날 상황이 아니었지만 결승 홈런을 친 타자가 김재환이어서 난리였다. 김재환은 2011년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금지 약물인 스테로이드를 복용해 적발된 선수였다. 그래서 8월5일의 경기는 정정당당한 승부가 아닌 약물로 오염된 경기라는 거였다.

이후 야구 커뮤니티에선 온통 김재환 얘기뿐이다. 8월6일에도 김재환의 결승 홈런이 터졌고, 13경기 연속 타점 기록을 세우며 연일 언론의 중심에 섰다. 지난해부터 이른바 ‘포텐(셜)’이 터진 김재환은 그 터진 포텐만큼 수많은 비판과 비난과 비하를 당해야 했다. 김재환이란 이름 대신 ‘약재환’이라 불리는 건 기본이고 그가 치는 홈런은 ‘약런’, 적시타는 ‘약시타’로 표현된다. 야구 커뮤니티에서 그는 ‘초사이언’ 같은 존재다. 그의 기량이 만개하자 한 번 먹은 약물은 10년 이상 간다는 ‘머슬 메모리’ 이론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최근엔 매 타석에서 조절하며 치고 싶을 때만(중요한 순간에만) 안타나 홈런을 친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야구팬들이 이렇게까지 과한 주장을 하는 데는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언론의 책임이 크다. 김재환의 약물 복용이 적발됐을 때 KBO는 10경기 출전 정지라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다. 언론은 김재환을 영웅처럼 포장한다. 13경기 타점 신기록을 세울 때 언론은 앞다퉈 소식을 전했고, 각 방송사의 해설위원들은 그의 스윙 동작을 칭찬하기 바쁘다. 물론 그는 지금 한국 프로야구에서 아름다운 스윙 폼을 가진 타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럼에도’ 그를 상찬의 무대에 올려서는 안 된다.

김재환은 금지 약물을 복용했고 이 자체만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지금 한창 야구하는 선수에게 ‘나도 약 좀 먹고 저렇게 되어야지’라는 생각이 들게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잘해도 약을 먹으면 저렇게 욕먹는구나’라는 인식이 퍼지게 해야 한다. 금지 약물은 선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고, 무엇보다 불공정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나는 머슬 메모리 이론을 믿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김재환이 부정한 방법으로 이른 시간 안에 실력을 올리려 했던 행위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김재환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김재환뿐이 아니다. 삼성 왕조를 이끌었던 포수 진갑용도, 지금 기아가 1위를 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헥터도 모두 약물 복용 전과가 있는 선수다. 이들을 이제 와 전부 퇴출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철저하게 이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김재환에게 쏟아지는 인신공격에 반대한다. 하지만 그가 성적과 연봉 외에 명예까지 얻는 것에도 반대한다. 약물 복용 선수 이름 옆에 특별한 표시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미 몇몇 매체에선 김재환 이름에 ‘김재환*’ ‘김재환(약)’이란 표기를 하고 있다. 원로 야구인 김영덕 감독은 이런 말을 남겼다. “비난은 순간이고, 기록은 영원하다.” 김영덕 감독의 말이 틀렸다고 해야 한다. 약물 복용 선수에게 불명예가 영원하도록 해야 한다. 스포츠라면 그래야 한다.

스포츠 덕후 겸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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