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파벌’이란 말이 흘러나왔다. 2018 평창겨울올림픽을 대표하는 말 몇 개를 선정하면 최고 유행어가 된 ‘영미~’와 함께 ‘왕따’ 혹은 ‘파벌’이란 말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4년마다 열리는 겨울올림픽 때마다 어김없이 파벌 논란이 따라붙는다. 축제의 현장이 되어야 할 얼음 위에서, 주인공이 되어야 할 선수가 눈물짓는다.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경기는 3명의 선수가 함께 들어와야 한다. 그러나 한국 여자팀은 두 선수가 먼저, 한 명은 뒤처져 들어왔다. 뒤늦게 들어와 울먹이는 선수를 두고 두 선수는 모르는 척 딴짓을 하고, 경기 직후 인터뷰에선 그를 탓하는 발언을 했다. 여기에 단순히 선수 간의 문제가 아니라 파벌 문제가 있다는 증언들이 터져나왔다.
빙상계의 한국체육대학과 비(非)한체대 파벌 논란이 시작된 것은 2006년 토리노겨울올림픽 때부터다. 이후 강산이 한 번 바뀌는 동안에도 파벌 싸움은 변하지 않고 지속됐다. 한동안 잠잠한 듯했던 지겨운 논쟁은 평창 대회에서 다시 불거졌다. 파벌의 중심에 있다는 전명규 한체대 교수이자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의 이름이 다시 소환됐다.
모든 스포츠에서 연맹이나 협회가 비판받지 않는 경우는 거의 찾기 어렵다. 대한양궁협회 정도가 예외랄까.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은 한국야구위원회를 비판하고, K리그 팬들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을 무능력하다고 욕한다. 그 가운데서도 대한빙상경기연맹은 ‘끝판왕’에 가깝다. 이들을 ‘대한빙신경기연맹’이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토리노 대회에서부터 지속된 파벌 간 마찰과 파열음 때문이다.
지인들에게 농담 삼아 이 파벌 싸움이 조선시대 붕당정치 같다고 얘기했다. 분명 역사적 의미가 다르고, 조선시대 붕당정치가 왜곡돼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알지만 우스개로 한 말이었다. 전명규가 있고 그에 대항하는 반전명규파가 있다. 지금은 그렇게 간단히 볼 수 없다는 말도 나온다. 같은 파벌이라도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뉘고 다시 합친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여자 팀추월 경기를 보며 많은 사람이 분노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대한빙상경기연맹과 선수들을 비난하는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10년 넘게 반복된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될 수는 없겠지만 대한빙상경기연맹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적극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문제는 선수들이다.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인 김보름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하자는 청와대 청원자 수는 어느새 60만 명에 가까워지고 있다. 김보름 선수의 발언이 경솔했고, 문제가 있었다는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그가 다른 선수를 ‘왕따’시켰다고 ‘확신’하며 수십만 명이 한 선수를 모욕하는 게 ‘정의’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를 두고 그 안의 개인을 비난하는 건 너무나 쉽지만, 공허한 일이기도 하다. 김보름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해서 우리가 얻는 건 무엇인가. 그저 속 시원하다고 생각하고 돌아서는 순간, 그 자리를 대신 채우는 선수는 또 하나의 파벌에 속해 4년 뒤 베이징겨울올림픽에 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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