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완이라는 젊은 DJ가 있었다. 1981년 MBC에서 주최한 ‘제1회 전국 대학생 디제이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며 대학생으론 파격적으로 라는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방송에서 그는 국내에 낯설었던 아트록 음악을 주로 틀며 ‘아트록 전도사’란 별명을 얻었다. 한국에서 유독 많은 인기를 얻으며 여전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 트롤스’의 도 그렇게 한국에 알려졌다. 이탈리아의 한 아트록 밴드 음악이 저 멀리 아시아의 한 나라에 알려지는 데 대학생 DJ와 심야방송이 절대적 구실을 한 것이다.
혁오, 십센치, 자이언티. MBC 의 ‘무도가요제’로 큰 인기를 얻으며 전국구 스타가 된 이들이다. 이제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야지만 음악가가 유명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방송의 힘을 확인하는 예였다. 소셜미디어 시대라고 하지만 방송의 힘은 여전히 크고 강하다.
가까운 예는 또 있다. 컬링은 이제 ‘국민스포츠’가 된 듯하다. 올림픽 개막식 전부터 컬링 중계를 보며 시큰둥하던 국민은 점차 컬링의 매력에 빠져들어 규칙을 공부하며 응원했다. 아마 “영미!”는 2018년을 결산하는 유행어에 오를 것이다. 컬링 열풍은 여자 컬링 국가대표팀이 대기업 청소기 광고를 찍으며 마침표를 찍었다. 컬링 자체의 매력도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중계해주던 방송의 힘도 컸다.
‘영미’ 열풍과 함께 평창겨울올림픽은 끝난 듯하다. 하지만 3월9일 평창겨울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이 개막했다. 늘 그래왔듯, 낮은 관심과 미디어의 외면 속에 소외된 행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편성시간을 놓고 볼 때 패럴림픽은 이미 방송사의 마음속에서 지워진 존재다. 올림픽 주관방송사인 SBS, 공영방송인 KBS·MBC는 각각 패럴림픽의 방송 시간을 18시간 이내로 편성했다. 올림픽 기간에 컬링 한 종목을 중계한 시간만도 못할 것이다. 물론 방송사는 대중의 관심이 떨어지기 때문에 편성시간을 줄였다고 말할 수 있다.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문제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주관방송사가, 공영방송사가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
올림픽을 주관하는 방송사라면 올림픽의 ‘가치’, 공영방송이라면 ‘공영’의 의미를 따져야 한다. “방송의 목적을 영리에 두지 않고, 시청자에게 징수하는 수신료 등을 주 재원으로 하여 오직 공공의 복지를 위해 행하는 방송”이 공영방송의 의미라면, KBS는 ‘방송의 목적을 영리’에 두었고, ‘공공의 복지’에서 장애인은 배제한 셈이다.
앞서 음악과 컬링의 예에서 보듯, 여전히 방송의 힘은 우리 생각보다 크고 강하다. 올림픽 전까지 아무도 컬링을 못 봤지만 지금 같은 국민스포츠가 된 데는 방송의 힘이 컸다. 패럴림픽에서도 컬링의 감동을 경험할 수 있고, 또 다른 스타가 탄생할 수도 있다. 올림픽이 지닌 ‘공공’과 ‘가치’에 더 많은 의미를 두는 것이 공영방송과 주관방송이 할 일이다. 참고로 영국, 프랑스, 미국은 패럴림픽 중계에 100시간을 편성했다. 중국도 관영방송 《CCTV》를 통해 40시간을 편성했다. 우리는 과연 ‘선진’을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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