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박정용씨는 국내 최대 포털 회사인 네이버를 그만뒀다. 미디어서비스유닛장으로서 뉴스 서비스 등을 총괄하던 그였다.
가족은 물론 주변에서 다들 말렸다. 그 또한 미련이 남았지만, 고민 끝에 사표를 냈다. 그의 나이 서른여덟이었다.
“고1 때, 초등학교 교사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깨달았죠. ‘죽으면 아무것도 없구나. 가장 중요한 건, 지금 보내는 이 순간이 내게 행복한가이다.’ 이후 20대 초반에 결심했어요. 마흔이 되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뭔가를 하는 공간을 운영하며 살겠다고요. 그건 꿈이라기보다 인생 플랜이었어요.”
꿈이라기보다 ‘플랜’
당초 계획보다 2년 빨랐지만,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서울 홍익대 앞에 음악 카페를 차리고 이름을 ‘벨로주’(VELOSO)라 붙였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브라질 음악가 카에타누 벨로주의 성이자, 2003년부터 블로그를 운영하며 써온 아이디였다. 그는 30년 동안 모아온 CD 1만 장으로 벨로주의 벽장을 빼곡히 채웠다. 작은 무대를 마련해 매주 일요일 라이브 공연도 열었다. 주변에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낮에는 음악평론가들이 커피를 마시며 글을 썼고, 밤에는 음악가들이 몰려와 맥주를 마셨다. 입소문이 나면서 음악 애호가들의 아지트이자 홍대 앞 명소가 됐다. 벨로주 시즌1의 호시절이었다.
2011년, 새로운 일을 벌였다. 네이버문화재단과 함께 인디 음악인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 ‘온스테이지’를 시작한 것이다. 숨은 실력파 음악인들이 기량을 한껏 펼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네이버에 노출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촬영장으로 이용할 공간을 홍대 앞에 마련했다. 처음에는 벨로주와 촬영 공간을 동시에 운영했지만, 힘에 부쳤다. 결국 기존 벨로주를 정리하고, 촬영 공간에 벨로주란 이름을 붙였다. 벨로주 시즌2의 시작이었다.
초기에는 시즌1 때처럼 커피도 팔고 맥주도 팔았다. 하지만 천장이 높고 널찍한 공연장의 분위기에서 커피와 맥주를 즐기기는 어색했다. 결국 카페 사업은 접고 공연장 본분에 충실하기로 했다. 낮에는 온스테이지 촬영을 했고, 밤에는 다양한 인디 음악가들의 공연을 열었다. 어느덧 벨로주는 홍대 앞 주요 공연장 중 하나가 됐다.
너무 잘된 게 문제였을까. 2014년, 건물주가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며 나가라고 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직접 그곳에 공연장을 차렸다. 분통이 터졌지만 별수 없었다. 결국 홍대 앞 중심 구역에서 좀 떨어진 외곽으로 옮겨 새로운 벨로주를 열었다. 그렇게 벨로주 시즌3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작됐다. 다행히도 음악인들이 새로 옮긴 벨로주를 찾아와 꾸준히 공연해주었다. 공연장으로서 벨로주의 명성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른 변수가 생겼다. 2015년을 마지막으로 온스테이지 프로젝트를 더는 맡지 않게 된 것이다. 네이버문화재단은 변화를 위해 기존 촬영팀과 계약을 종료하고, 새로운 촬영팀과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마냥 하늘만 보고 있을 순 없었다. 온스테이지 촬영 없이 공연장 운영에만 전념했다. 하지만 네이버문화재단에서 보전받는 비용 없이 벨로주를 운영하기란 쉽지 않았다. 공연이 없는 날이면 벨로주는 죽은 공간이 됐다. 오랜 고민 끝에 지난 4월 공연장 벨로주를 정리했다. 4월9일 마지막 공연의 주인공 ‘안녕하신가영’의 백가영이 선물로 들고 온 케이크에는 ‘벨로주’라는 글자가 예쁘게 새겨 있었다.
세 번째 시즌이 저물다
사실 벨로주 시즌3를 그냥 접은 건 아니었다. 그는 새로운 곳에서 벨로주 시즌4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동안 여기저기 이사 다니고 새로 공사하느라 쓴 돈만 6억원이 넘었다. 이번에는 한곳에서 길게 가고 싶었다. 홍대 앞과 가까우면서도 월세가 싼 서울 망원동은 최적의 장소였다. 적당한 공간을 찾아 넉넉하게 5년 계약을 하고 실내 공사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벨로주 시즌4가 지난 5월26일 정식 오픈했다.
5월30일 벨로주를 찾아가봤다. 요즘 뜬다는 이른바 ‘망리단길’(망원동+경리단길) 끝자락에 위치한 건물(서울 마포구 포은로 117 메디움빌딩)에 당도했다. 1층에는 휴대전화 매장이, 지하에는 교회가 있었다. 승강기가 없어 계단을 올랐다. 2층 태권도장, 3층 보습학원을 지나 4층에 오르니 반가운 이름, 벨로주가 있었다. 문을 여니 익숙한 공간이 펼쳐졌다. 이곳은…, 벨로주 시즌1 같았다. 맨앞 작은 무대에는 커다란 스피커와 피아노, 드럼 세트가 있었고 그 주위로 CD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무대 앞에는 객석 대신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앉아 커피, 맥주, 와인에다 음식과 안주를 먹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메뉴판에는 공연 일정이 적혀 있었다. 도마(6월4일), 나희경(11일), 컨트리공방/강아솔(18일), 이영훈+황푸하(22일), 삼바밴드 화분/김목인(25일), 생각의 여름(7월2~3일)이 무대에 오르기로 돼 있었다. 손님들을 보니 음악평론가, 음악가, 음악공간 운영자 등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었다. “벨로주 시즌1 때를 제일 좋아했는데, 그 분위기여서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오면 아는 사람들이 늘 있는 아지트 같다고나 할까요.” 대중음악평론가 김윤하씨는 말했다.
박정용씨는 벨로주의 지난 9년 이야기를 내게 해줬다. 그리고 이 말을 사람들에게 꼭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많은 분들이 벨로주를 보고 성공했다고 평가합니다. 직장 때려치우고 좋아하는 일을 하니 부럽다는 얘기도 하고요. 하지만 냉정히 말해 나는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10년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근근이 현상 유지만 하고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건 명백한 실패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외부 문제와 기획, 경영 실패라는 내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겠죠. 다른 분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왜 벨로주를 계속할까?
3분의 1의 성공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는 건 뿌듯해요. 지난 일요일, 국악 크로스오버 연주자 박지하(숨)와 피아노 연주자 ‘11’의 공연을 했는데요. 관객은 20~30명밖에 안 들었지만, 벨로주 아니면 어디서 이런 공연을 볼 수 있겠어요. 그런 걸 보면 마냥 실패만은 아니구나, 3분의 1쯤은 성공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좋아하는 한 빚지지만 않는다면 계속할 겁니다.”
열린 창문으로 화사한 5월의 햇살이 들어왔다.
서정민 씨네플레이 대표·전 <한겨레> 대중음악 담당 기자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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