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돌리고 돌리다 돌겠네~

X기자가 목도한 ‘피짓스피너’ 돌풍…

돌리면 세상 근심 다 잊는 손장난감이 소환한 볼펜부터 책받침, 술잔까지 돌리기의 추억
등록 2017-05-26 15:12 수정 2020-05-03 04:28
<font color="#006699">2011년 3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술집 탐방 음주활극 칼럼인 <font color="#C21A1A">‘X기자 부부의 주객전도’</font>로 포복절도할 웃음을 선사했던 X기자 부부가 돌아왔다. 자칭 타칭 최고 인기 칼럼니스트인 X기자가 귀환에 맞춰 ‘피짓스피너’ 열풍 때문에 돌아버린 사연을 보내왔다. X기자의 웃기고 자빠질 새 칼럼은 다음호부터 격주로 연재된다. _편집자</font>

“돌리고 돌리고~.”

전날 처먹은 술 때문에 천장이 돌고 있던 지난 토요일 점심 때, 초딩 3학년 아들 녀석이 거실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중간중간 와잎(아내)의 “더 더 더” 추임새도 요란했다. 이불을 덮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까무룩 잠이 들 무렵 “아싸~” 와잎이 또 소릴 질렀다. 아놔~. 우리 ‘자기’ 덕분에 잠자기는 글렀네~. 봉두난발한 채 좀비 몰골로 거실에 나왔다. 와잎은 아들 녀석이랑 머리를 맞대고 “돌리고 돌리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놔~. 돌겠네~.

<font size="4"><font color="#C21A1A">2천~30만원대 세계적 유행 </font></font>

‘가장이 주무시는데 왜 이렇게 소란이야!’라고 말하면 평생 주무시게 될 수 있는 탓에 가만히 들여다봤다. 아들 녀석과 와잎은 거실 테이블 위에서 무언가를 돌리고 있었다. 술잔을 안 돌려 천만다행이었다. 5살 때 물잔을 들고 친할머니에게 건배해 음주부부의 적통을 확인시켜준 녀석이 아니던가. 모자는 삼각형 모양의 장난감을 누가 오래 돌리나 시합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라고 묻자 와잎은 캔맥주에 꽂은 빨대를 입에 문 채 소파에 널브러지며 말했다. “피짓스피너 몰라? 이거 완전 힙한 건데…. 하긴 ‘힙하다’도 모르지? 하하하.” 언제부터인가 누워서 마시기 편하다는 이유로 캔맥주에 빨대를 꽂기 시작한 와잎이었다. 아놔~ 돌겠구나~. 식전 댓바람부터 음주각이구먼~. 여기가 독일이니? 맥주가 음료수니? 그렇게 편하면 아예 누워서 알코올 링거를 맞지 그러니?

‘피짓스피너’는 꼼지락거리거나 만지작거리는 행동을 뜻하는 피짓(fidget)과 회전장치를 뜻하는 스피너(spinner)의 합성어로 한 손에 쥐고 반복적인 회전 동작을 할 수 있는 손장난감을 말한다. (보고 있니~ 와잎아?) 중앙의 금속 구슬 축을 중심으로 플라스틱이나 금속으로 된 날개 2~3개가 달려 있고 엄지와 중지로 가운데를 잡은 채 다른 손가락으로 날개 하나를 돌리면 선풍기 날개처럼 돌아간다. 사람에 따라 엄지와 검지로 중심 부분을 잡고 약지로 날개를 쳐서 돌리기도 한다. 바람이 아닌 손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손개비’라고도 불린다. 반복적인 동작 외에 특별한 기능은 없다. 마치 포장지의 뽁뽁이 기포를 터뜨리거나 다리를 떠는 일처럼 의미 없지만 묘한 중독성이 있는 장난감이다.

그래서일까? 아들 녀석은 피짓스피너가 학교에서 완전 인기라며 난리였다. 자기는 4개밖에 없는데 다른 친구는 10개나 모았다며 부럽다고 말해 “니 엄마 맥주 안 마시면 그 돈으로 10개 살 수 있어”라고 귀띔해줬다. 아들 녀석은 득달같이 엄마한테 보고했다. (아들놈 키워봤자 다 엄마 편이라더니~) 와잎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아내를 사랑하면 술을 끊으라고 하지 말고 안주를 좋은 거 먹으라고 해~.” (사랑? 그거 새로 나온 안주 이름임?)

아들 녀석의 말대로 피짓스피너가 일으킨 바람은 초·중딩을 중심으로 선풍적이었다. 서울 잠원동에 사는 ㅅ(14)군은 “학교에서 피짓스피너 없는 애가 없다. 난 8개 있는데 많은 애들은 열댓 개가 기본”이라며 “누가 좀더 비싼 희귀 아이템을 갖고 있느냐로 우열이 나뉜다”고 했다. 피짓스피너 바람이 수집 열풍으로 이어진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ADHD 등에 효과’ 과학적 근거 없어 </font></font>
X기자가 처자식은 관심 1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옛 추억이 돋아 집에서 굳이 책받침 돌리기를 시전하는 모습. 아들 녀석 얼굴로 날아가 욕만 먹었다.

X기자가 처자식은 관심 1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옛 추억이 돋아 집에서 굳이 책받침 돌리기를 시전하는 모습. 아들 녀석 얼굴로 날아가 욕만 먹었다.

문방구와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피짓스피너는 2천원부터 30만원대까지 가격대가 천차만별이다. 고가일수록 고급 베어링이 장착돼 적은 힘으로 더 오래 도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서울 사당동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이진섭(51)씨는 “4월 말부터 하루 10~15개는 꾸준히 나간다. 5월 초부터는 물건이 없어서 못 판 적도 있다. 주로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들이 사가는데 제일 많이 팔리는 건 3천원짜리고 가끔 7천~8천원짜리도 팔린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출시된 것으로 알려진 손개비는 세계 곳곳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5월3일(현지시각) 미국 는 피짓스피너를 포함한 피짓큐브, 스트레스볼 등 ‘피짓 토이’가 최근 전세계 어린이들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고 보도했다. 5월11일 이스라엘에선 피짓스피너 돌리기 대회가 있었다.

피짓스피너가 올해 4월부터 미국 전역, 전세계 초·중학교 교실과 학생들 사이에 급속히 퍼지자 수업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교실에서 사용을 금지하는 학교도 많아졌다. 국내에서도 수업 시간에 피짓스피너를 돌리는 학생 때문에 교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 교사 김지연(34)씨는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을 못한다. 일부 담임 선생님들은 아예 학교에 못 가져오게 하는데 통제가 쉽지 않다”고 했다.

피짓스피너가 유행하는 이유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다. 먼저 △아이들이 자신의 용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저렴한 가격 △학교에 가져갈 수 있는 휴대성 용이 △남녀 누구나 쉽게 가지고 노는 범용성 등이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또한 피짓스피너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에 치료 효과가 있어 수업 교재로 사용된다고 알려진 점도 유행의 한 배경이 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를 상술일 뿐이라고 말한다. 미국 듀크대학 임상심리학과 교수 스콧 콜린스는 인터뷰에서 “피짓스피너를 비롯해 ADHD 환자를 위한 장난감이나 게임이 많지만 이 아이템들이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고 지적했다. 피짓스피너로 집중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여기에 몰입해 다른 행동을 멈추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트럼프 시대에 들어맞는 장난감” </font></font>
‘피짓스피너’의 가격과 모양은 천차만별이다. 비쌀수록 잘 돌아간다고 하지만, 가성비 좋은 제품도 많고 자주 돌리다보면 회전력이 더 좋아진다.

‘피짓스피너’의 가격과 모양은 천차만별이다. 비쌀수록 잘 돌아간다고 하지만, 가성비 좋은 제품도 많고 자주 돌리다보면 회전력이 더 좋아진다.

여기에 시대적인 조건도 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미국 잡지 는 5월12일 “트럼프 시대에 완벽히 들어맞는 장난감”이라며 “다마고치(휴대용 전자 애완동물 사육기)나 루빅큐브 등과 달리 손개비는 손가락으로 돌리고 지켜보기만 하는 것으로 생각의 포기를 유도하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상태를 퍼뜨린다”고 비판했다. ‘병적으로 주의가 산만하고 사리 분별을 못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게임이 피짓스피너라는 얘기다. 이것은 트럼프 때문에 돌아버릴 거 같은 미국 시민들을 위한 게임기인가.

아들 녀석과 스톱워치를 켜고 3판 2승 시합을 했다. 내가 지면 피짓스피너를 하나 사주고 이기면 심부름 3회 이용권을 받기로 했다. 있는 힘껏 피짓스피너를 돌렸지만 1분40초대에서 줄곧 멈춰버렸다. 1:2로 패. 결국 처자식을 이끌고 피짓스피너를 사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근데 나 밥은 안 주니? 해장은 안 하니?) 길을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피짓스피너를 돌렸다. 빠른 속도와 진동의 중독성으로 아이들은 물론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큰 인기를 끈다는 말이 맞는 듯했다. 돌리고 돌리니까 신기하게 숙취로 돌아버린 내장도 어느 정도 다스려지는 것 같았다. 피짓스피너는 스트레스 많은 사회의 산물이었다.

8천원짜리 별도 케이스에 든 일자형 피짓스피너를 사줬다. 아들 녀석은 신나서 돌리기 시작했다. 와잎은 느닷없이 족발이 먹고 싶다고 했다. 환장한다~. 녀석도 좋다고 맞장구쳤다. 얼씨구나~. “내 해장은?”이라고 묻자 와잎은 “요새는 느끼한 거로 해장하는 게 힙한 거”라며 족발집으로 녀석과 함께 힙을 틀었다. 아놔~. 그래~ 족발집 가서 한번 찍어보자. 족발집에 도착해 자리에 앉자마자 와잎은 ‘불족 대자에 소주 1병’을 주문했다. 직원이니? 늘 먹던 걸로니? 아들 녀석은 열심히 피짓스피너를 돌리고 앉았다. 그런 녀석을 보니 중학교 때 유행한 책받침 돌리기의 추억이 떠올랐다. “아빠 중학교 때는 책받침 돌리기가 유행이었거든. 한 면이 모눈종이로 코팅돼 샤프로 필기가 가능한 책받침이 나왔는데 그게 엄청 인기였어. 그 전까지 볼펜이나 지우개를 돌리던 우리는 일제히 책받침에 빠졌지. 노트 없이 필기가 가능하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와 함께 무엇보다 책받침에 푹 빠진 건 표면의 적당한 마찰력이 있어서 돌리기에 맞춤했기 때문이거든. 중지에 입김을 불어 한 손으로 멋지게 책받침을 돌렸지. 계속 무게중심을 옮겨가며 손끝으로 작은 원을 그리는 게 포인트지. 그때 우린 책, 공책, 밥상까지 돌릴 수 있는 건 다 돌렸지.”

<font size="4"><font color="#C21A1A">멈추지 않는 음주 스핀, 제발 멈춰줘 </font></font>

여기까지 얘기하자 고개 처박고 돌리던 아들 녀석이 말했다. “엄마, 족발 언제 나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던 와잎이 답했다. “응, 이제 나올 거야.” 아놔~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돌겠네~. 난 질세라 족발집 메뉴판으로 돌리기 실력을 직접 시전했다. 간만에 돌려봤지만 실력이 죽지 않았어라고 느낀 순간 메뉴판이 테이블 위로 떨어져 반찬을 덮었다. 와잎이 레이저를 쏘면서 내 쪽으로 잔을 돌렸다. “주책 그만 떨고 소주잔이나 받아~.” 멈추지 않는 음주 스핀, 제발 좀 멈춰줘~. 아들은 피짓스피너 돌리고 넌 술잔 돌리기냐? 책받침 돌리기의 추억은 결국 술잔 돌리기로 끝나버렸다. 그날 난, 피짓스피너처럼 돌고 돌아 돌아버린 내 음주윤회의 생을 저주했다.

<font color="#008ABD">글·사진</font> X 기자 xrepoter21@gmail.com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font color="#C21A1A">http://bit.ly/1HZ0DmD</font>
카톡 선물하기▶ <font color="#C21A1A">http://bit.ly/1UELpok</font>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