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팀 첫 아기 아냐?”
딸 도담이의 출산 소식을 전하자 맞은편 자리에 앉은 오계옥 사진기자는 기억을 한참 더듬었다. 오 기자는 창간 멤버이자 산증인이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아이가 있었던 취재기자는 아마 단 한 명도 없었던 것 같아. 회사를 그만둔 뒤 아이가 생긴 사람은 몇 있고.” 이유는 글쎄… 잘 모르겠다. 유독 아이가 없는 이 조직에서 나의 출산 소식은 그야말로 큰 ‘뉴스’가 됐다.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충동적으로 생긴 아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아이를 통해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을 느끼고 싶다거나 종족 번식을 해 인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거창한 사명감 따위는 생각해본 적도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서울 마포구 성미산 마을의 공동주택에서 함께 사는 이웃집 아이들은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에게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살고 있는 건물에 공동육아 시설이 있는 까닭에 온 마을 아이들이 건물 1층에 몰려와 뛰놀았는데, 하나만 낳으면 마을의 언니·오빠들과 잘 어울려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임신은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매달 병원에 가서 좋은 날짜를 받아야 했고, 검사란 검사는 다 받았으며, 복분자를 포함해 몸에 좋다는 건 다 먹은데다 금주까지 했는데 감감무소식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다 하는 임신을 왜 우리는 못할까. 좌절감과 오기가 번갈아가며 우리의 임신 도전에 펌프질을 해댔다. 임신에 실패한 아내는 결국 코스타리카(나무늘보가 사는 중남미의 나라 맞다)에 유학을 갔고, 우리는 졸지에 기러기 가족이 되었다.
희망은 아내가 방학을 맞아 잠깐 집에 돌아왔을 때 다시 생겼다. 재회의 기쁨이 너무나 컸던 까닭일까. 몇 년에 걸쳐 번번이 실패하던 임신이 이리 쉬운 일일 줄은 몰랐다. 의사에게서 “임신입니다”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다소 허무한 생각이 든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코스타리카로 돌아간 아내가 전화 건너편에서 울먹거렸다. 현지 병원에 정기 검사를 받으러 갔는데 아이의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으니 유산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바로 안식월 휴가를 쓰고 코스타리카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인천에서 일본 나리타로, 나리타에서 미국 뉴욕으로, 뉴욕에서 코스타리카로 가는 2박3일 동안 비행기 안에서 울고 또 울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이 생긴 걸까. 왜 아내가 코스타리카로 다시 나가는 걸 막지 못했을까.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무엇보다 “임신 4주차니 무조건 몸조심해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을 따르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코스타리카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을 찾아 무사히 수술을 받고 퇴원했다(천문학적인 수술비를 감당하며 중남미의 사립병원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기분 전환할 필요가 있으니 여행을 다녀오라”는 의사의 조언을 듣고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의 쿠바에 갔다. 쿠바에서 아내는 내게 미안해했다. 나는 “네 잘못이 아니다. 인연이 아닌가봐. 더 좋은 아이가 나타나려나보다”라며 아내를 달랬다.
코스타리카에서 학업을 마친 아내는 한국에 돌아와 곧바로 임신을 했다. 그리고 꿈을 꿨다. “액세서리 가게에 갔더니 머리핀만 엄청 많았는데 전부 파란색이더라.” 마침 장모님이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간밤에 꾼 꿈 얘기를 들려주었다. “시장에 갔더니 유독 싱싱해 보이는 파가 있어 샀어. 옆에 있던 손님이 나눠가지자고 하기에 ‘집에 가서 딸과 함께 먹을 거’라고 거절했지 뭐야.” 그게 우리 부부가 7전8기 끝에 가진 딸 도담이의 태몽이었다.
김성훈 기자 *‘성미산에서 도담도담’은 싱글이 대부분인 취재팀에서 육아와 마감을 병행하는 초보 아빠 김성훈 기자의 육아 칼럼입니다. 웰다잉 강사 정은주씨, 경제학자 우석훈씨와 함께 3주에 한 번 육아 칼럼 필자로 참여합니다.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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