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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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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딱 좋은 거리

사랑을 바라지만 구걸하지 않고 까칠하지만 이타적인

새해엔 ‘고양이-되기’로 스트레스 프리 인간관계 만들기
등록 2017-01-31 15:16 수정 2020-05-03 04:28
전민희 제공

전민희 제공

고양이 지구 정복이라더니, 이제 그날이 정말 온 것 같다.

고양이가 대선 주자라면 고양이 대세론이 뜰 것이다. 고양이 대세의 징후는 인터넷에서 먼저 확인할 수 있다. (김용섭 지음, 부키 펴냄)에 따르면, 구글의 CAT 검색 결과가 약 18억4천만 개(2016년 9월 기준) 나오고, DOG는 약 13억2천만 개 나온다고 한다. 반려동물로 아직 개가 고양이보다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인터넷에 누적된 콘텐츠 양이 훨씬 많은 것은, 인터넷 사용자들이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볼 수 있다고.

출판물에서도 차이가 많이 난다. 지난 1년간 고양이를 소재로 한 국내 도서는 개+강아지보다 3배 이상 많이 출간됐다. 고양이 책은 에세이, 사진집, 그림 그리기, 만화, 기르는 법 등 다양한 데 비해 개 관련 책은 동화 또는 강아지옷 만들기 같은 실용서가 전부였다. 이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갑이 더 잘 열린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반려묘가 반려견 수를 넘어선 일본에선 네코노믹스(일본어로 고양이를 뜻하는 ‘네코’와 ‘이코노믹스’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가 뜰 정도로 고양이 용품 및 고양이가 등장하는 광고, 고양이 캐릭터를 활용한 상품 등으로 20조원의 경제 효과를 내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 ‘냥코노믹스’… 애묘인들 지갑 열리는 소리 </font></font>

주위를 둘러봐도 부쩍 고양이가 많아진 걸 느낄 수 있다. 우선 나부터도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 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고양이 없는 집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물론 만화가나 편집자들이 유독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업계 특성도 있겠지만 카페나 만화방에 가도, 인쇄소에 가도, 카센터에 가도 고양이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영업부장 노릇을 하고 있다. 과연 반려묘 100만 시대다.

왜들 고양이에 빠져드는 걸까. 에선 인터넷 이용자들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개보다 독립적이고, 혼자서도 잘 논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연결된 사람들처럼 각자 외롭지만 혼자서도 잘 놀고 독립적이며 필요할 땐 단절돼 있다가 함께하고 싶을 때 연결된다. 개보다 덜 끈끈하고 이기적이지만 합리적인 사교성을 가진 고양이. 그 고양이와 인터넷 사용자들이 닮았기 때문이라는 것. 한마디로 고양이는 요즘 사람들이 원하는 인간관계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선호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손이 덜 가기 때문이다. 가장 큰 용변 문제. 고양이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모래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잘 덮어놓는다. (개묘 차가 커서 간혹 똥을 잘 덮지 않는 녀석들도 있긴 하다.) 화장실을 치우지 않거나 모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불이나 소파에 테러를 해 인간을 확실히 길들인다.

따로 씻기지 않아도 스스로 몸을 핥아 깨끗하고 냄새도 나지 않는다. 사료와 물, 약간의 간식만 챙겨주면 인간의 음식을 탐하지 않는다. (이것도 개묘 차가 있긴 하다. 첫째 고양이를 데려왔을 때 길생활을 막 마친 이 녀석은 내가 뭐라도 먹으면 식탁으로 올라와 널름널름 넘보곤 했다. 그래서 햄버거 같은 걸 먹을 땐 고양이 발길이 닿지 못하도록 서서 먹기도 했다.)

확실히 고양이와 함께 살아보면 개와는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없이 주인만 바라보며 애정을 표현하고 갈구하는 개에게는 묘한 죄책감이 들게 마련. 그런 개에게 위로를 얻기도 하지만 때때로 귀찮고 답답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에 비하면 고양이는 주인에게 종속되지 않는다.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집사’라 칭하며 고양이를 인간의 우위로 표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의 공상과학(SF) 소설가 호시 신이치의 단편소설엔 이런 에피소드가 나온다.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해 어느 집을 찾았다. 외계인을 본 인간은 기절해버려 고양이가 외계인을 맞는다. 고양이는 외계인에게 자신을 주인으로, 기절한 인간은 자신의 똥을 치워주는 존재로 소개한다.

고양이는 잠을 많이 자고 항상 느긋하다. 필요할 땐 다리 사이를 감고 돌며 머리를 비비고 애정 표현을 하지만, 원치 않을 땐 아무리 불러도 쌩하게 돌아선다. 입에 맞지 않는 것은 먹지 않는다.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는다. 언제나 현재의 연속이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자기주도적인 이런 특성이 매력을 넘어 닮고 싶은 점으로 부각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답다. 잠자는 고양이의 관절을 어루만져보면 이 작은 존재가 얼마나 정교하고 완벽하게 디자인된 피조물인지 감탄하게 된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양이 사랑</font></font>

고양이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기를 즐긴다. 선배 K의 고양이 뉴(New)와 이어(Year). 12월31일에 태어나서 ‘뉴이어’란 이름을 얻었다. 뉴이어 집사 제공

고양이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기를 즐긴다. 선배 K의 고양이 뉴(New)와 이어(Year). 12월31일에 태어나서 ‘뉴이어’란 이름을 얻었다. 뉴이어 집사 제공

고양이와 함께 살면 라이프스타일도 변한다. 주말엔 밖으로 나가기보단 소파에 누워 한가롭게 고양이 낚시를 즐기는 편이 더 행복하다. 고양이가 침대나 소파에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고양이를 피해 가장자리에 몸을 누인다. 우리 집 고양이는 아침에 품에 안기길 좋아하는데, 고양이 잠을 깨우지 않으려 기다리다 지각할 때가 종종 있다.

고양이 키우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안부를 전할 땐 서로의 고양이 안부를 묻곤 한다. 만나기라도 하면 휴대전화를 꺼내 고양이 사진을 자랑하고, 칭찬하고, 웃긴 사진을 보고 함께 웃는다. 사료나 간식, 화장실 모래 같은 물품 정보를 교환하거나 고양이의 건강 상태, 기이한 행동 같은 이야기를 한다. 고양이가 전체 화제의 절반 이상일 때가 많다.

고양이털이 많이 꼬일 것 같은 러그나 카펫은 깔지 않는다. 성능 좋은 청소기와 공기청정기를 찾아헤맨다. 길을 가다 고양이가 좋아할 만한 방석을 보면 돌아보게 된다. 우리 집은 화초를 초토화하는 둘째 고양이 때문에 화분을 모두 치웠다. 고양이가 소파에 종종 실례한다는 한 선배네는 패브릭 소파를 치우고 오줌이 스미지 않는 인조가죽 제품으로 바꾸었다.

내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면 다른 고양이의 처지가 눈에 들어온다. 길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위해 건사료와 캔을 챙겨 갖고 다니는 사람도 많다.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기 시작하면 두 마리, 세 마리… 야금야금 식구가 늘어난다. 그러다 어느새 길고양이를 구조해 주변에 분양하는 지경에 이른다.

집사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양이를 사랑한다. 좋은 사료, 비싼 물품을 사재는 강남 엄마 스타일 집사도 있고 소파를 너덜너덜 아작 내도 허허 웃는 방임형 집사가 있는가 하면, 고양이는 고양이 인간은 인간, 서로의 영역을 확실히 구분짓는 엄부 스타일도 있다. 만화가는 만화로, 글쟁이는 글로, 음악인은 노래로 고양이를 찬양한다.

적군도 아군도 구별 않는 ‘모두까기 인형’ 진중권은 ‘냥줍’한 이후 열혈 집사가 되었는데, 그는 ‘지식 덕후’인 그만의 방식으로 고양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한 권의 인문서로 표현했다. 최근 출간한 (천년의상상 펴냄)에서 그는 ‘고양이중심주의’를 주창하는데, 그 방법론은 고양이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넘어 ‘고양이-되기’다.

‘한 고양이를 사랑하는 데서 모든 고양이를 사랑하는 데로, 고양이의 신체를 사랑하는 데서 고양이의 정신과 영혼을 사랑하는 데로, 거기서 더 올라가 고양이성(性) 그 자체에 이르는’ 것, ‘그렇게 고양이의 이데아와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집사의 이데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궁극의 고양이성이란 무엇일까?

타인의 사랑을 바라나 굳이 그것을 구걸하지는 않고, 속으로 따뜻해도 겉으로는 늘 까칠하며, 이기적으로 보이나 실은 그 누구보다 이타적이고, 아무리 친해져도 끝내 알 수 없는 구석을 남기며, 사회 안에 살면서도 거기에 완전히 동화되지는 않는 존재. 고양이성을 구현한다는 것은 이렇게 사회 속에 살면서도 고양이 특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을 가리킨다. 고양이에게 배움으로써 우리는 더 매력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A Nietzchean Bestiary], 진중권 에서 재인용)

<font size="4"><font color="#C21A1A">새해에 실천하는 ‘고양이-되기’</font></font>

신이 곳곳에 임하기 어려워 엄마를 보내고, 악마가 자신이 모든 악에 직접 관여하는 대신 술을 보냈다면, 고양이신은 외롭지만 독립적이고 싶은 인간을 위해서 고양이를 보냈다. 하지만 고양이가 언제나 독립적이고 도도한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외로움을 타고 실은 꽤나 허당이며, 연약하고 예민하다. 지속적인 관심과 속 깊은 애정이 필요한 존재다. 함께 살기로 작정하고 이름을 붙이고 정을 주기 시작한 이상 책임지고 고양이의 ‘고양이성’을 지켜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양이 같은 관계, 고양이 같은 존재를 원한다면 새해엔 나부터 ‘고양이-되기’를 실천해보기로 하자. 충고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으며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관심 갖고 지켜보기. 호들갑스럽게 생색내기보다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고 말없이 지지해주기. 그러자면 1가정 1고양이 캠페인부터. 냥멘.

<font color="#A6CA37">인생도  묘생도  역전한  묘연</font>


1가정  1고양이를  위하여


<font size="4"><font color="#008ABD"> </font></font> 남편이 공장 마당에서 손님들과 고기를 구워 먹고 있을 때 고기 냄새를 맡고 찾아온 새끼고양이 두 마리. 사진을 찍어 보내왔기에 고양이를 키울까 말까 고민하던 옛 직장 상사가 떠올라 무조건 잡아두라 일렀다. 그야말로 주먹만 한 애들이었다. 태어난 지 한 달이나 됐을까 싶은 애들이 밥은 넙죽넙죽 잘 먹었다. 새 주인이 병원에 데려가보니 두 달이 넘었다고 했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제대로 크지 못했던 것이다. 남매인 이 아이들은 봉구·봉지란 이름을 얻었다. 봉구는 전형적인 바보 고양이로 집사를 하루에도 몇 번씩 빵 터지게 만든다. 봉지는 쌩한 매력 넘치는 고양이가 되어 부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고 있다.
봉구·봉지 집사 제공

봉구·봉지 집사 제공




<font size="4"><font color="#008ABD"> </font></font>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건너편에서 비둘기인 양 토사물을 뜯어먹는 아깽이 발견. 그나마 토는 땡볕에 말라붙어 먹을 것도 없어 보였다. 마포구 캣맘을 수소문해 통덫을 빌려 구조했다. 한겨레 앞에서 데려왔으니 예명은 하니. 혼자 사는 후배를 노려 EXID의 하니라며 입양을 권유했지만 거절당했다. 여기저기 알아봐도 이 아이의 임자가 나타나질 않았다. 선배가 아는 작가님의 장모님이 경남 통영에서 배 타고 들어가는 섬에 사시는데 고양일 받아주실 의향이 있다고 해서 통영에 가기로 했다. 그러다 지인의 누나가 충북 당진에서 농사를 짓는데 그 집에서 받아줄 수 있다고 해 당진으로 가기로 변경. 예명을 당진이로 바꿔 부르며 기쁘게 갈 날을 기다리던 중, 당진에서 사정이 생겨 못 받는다 해서 갈 길을 잃었다. 이미 세 마리를 키우고 있어 한 마리 더 늘리기는 무리. 회식 중 우연히 옆에 앉은 회사 선배에게 고양이 키우실래요? 물었더니 선뜻 주세요, 하셨다. 인연은 바로 옆에 있었다. 디노는 개냥이로 진화했다고 한다. 간혹 근황 사진을 보내온다. 어엿한 고양이가 되었다.
디노 집사 제공

디노 집사 제공




김송은 송송책방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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