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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1950년대 자화상 탐구하는 <그림에 나를 담다>
등록 2017-01-11 23:08 수정 2020-05-03 04:28

“자화상에 등장한 얼굴과 화가의 얼굴이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여지껏 본 자화상들이 문득 무위(근거 ‘없음’) 같아지는 이 질문은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1913~2005)의 것이다. 물음표(?)가 온점(.)을 지니듯, 리쾨르의 저 의문은 자화상의 한 본질을 담고 있다.

문화전문기자 이광표가 쓴 (현암사 펴냄). 한국 작품을 중심으로 자화상의 흐름과 해석을 탐구하고 기존 연구를 정리한 자료다.

주제가 자화상인 서적 가운데 ‘한국’ 것에 집중해 쓰인 책은 의외로 드물다. ‘나는 왜 나를 그리는가’ ‘그려진 나와 그린 나는 어떤 관계인가’. 한국 자화상 읽기에 앞서, 책은 자화상의 의미를 묵직히 살핀다(1부). ‘렘브란트 자화상에 관하여’(1987)라는 제목의 글에서 자화상을 그린 사람과 자화상에 그려진 사람이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한 리쾨르를 지은이는 지지한다. 화가는 자신의 모습을 재현하지 않고 자신의 이미지를 재해석하며, 이 과정은 왜곡이 아닌 성찰이라는 의미다. 끈질긴 자기 점검. 렘브란트는 자화상 100여 점을 남겼다. 영국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1903~1983)가, 렘브란트 전기를 쓴 이탈리아 미술사가 필리포 발디누치(1624~1697)를 인용한 글을 통해 그가 왜 그렇게 자신을 그려댔는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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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가 자신을 그려야만 했던 이유는 물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누가 모델을 서줬다는 게 놀라울 뿐.” 초상화를 주문하는 이가 줄었기 때문이다. 후기 초상화엔 붓이나 칼로 자국을 내어 표현력을 첨예화하는 등 유화에 쓰이는 거의 모든 스킬이 동원된다. 무엇보다 ‘자신’을 파고들 때 인간 성격(character)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은 위대한 예술가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이 책 역시 예술가 자신이 재창조한 이미지의 정수로서 자화상을 다룬다. 조선시대부터 1950년대 초까지 작품이 대상. 시대 흐름에 비춰 자화상의 변화(2부)를 훑은 뒤 지은이가 고안한 해석틀을 소개(3부)한 다음 그림 8점을 각개 분석(4부)한다. ‘배경과 소품’을 자화상 읽기의 중요한 도구로 소개하는 3부는 전통적 해석론인 전신사조(초상화엔 인물의 내면까지 드러나야 한다는 주의)에 객관성을 보충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시대별로 정리된 배경·소품엔 나름의 조작적 정의가 부여된다. 18세기 관모·야복, 19세기 부채·안경, 1900년대부터 양장본·중절모·팔레트 등 서양식 사물과 한복·붓·부채 등 한국적 소품의 동거.

4부에선 20세기 들어 한 작품 속 배경과 소품들이 서로 이질적이거나 모순적이라는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데, 지은이는 이것이 전통과 근대의 조화라기보단 충돌과 갈등이 두드러진 일제강점기 상황이 자화상에 투영된 결과로 본다.

거울처럼, 두 연주자가 같은 악보를 두고 마주 보면서 한 사람은 제대로, 또 한 사람은 거꾸로 보이는 대로 연주하면 화음이 만들어지는 곡이 있다. 모차르트(작자미상설도 있다)의 슈피겔카논(4 Spiegelkanons). ‘미러캐논’ ‘더 미러’로도 불린다. 책을 읽은 뒤 자화상을 두고 나와 예술가가 마주 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면, 화음처럼, 그림과 내가 함께 울려 쌓은 높이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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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희 디지털뉴스팀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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