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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으로 부르는 희망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속 조용한 돌풍 일으키는 영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옛날이야기’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등록 2016-11-16 17:58 수정 2020-05-03 04:28
한겨레 이종근 기자

한겨레 이종근 기자

극장가에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가 있다. (전인환 감독·10월26일 개봉). 개봉 첫날 31개 스크린, 상영 횟수는 67회에 불과했다. 스크린당 평균 하루 2회 상영이라면, 관객이 거의 들지 않는 이른 아침 시간이나 심야 상영 때 배치되는 게 일반적이다. 대기업 계열 국내 3대 극장이 가진 직영 스크린이 모두 2828개인데 개봉 당시 이 영화에 롯데시네마가 9개, 메가박스가 1개를 내줬다. CGV 스크린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다양성 영화들은 개봉관 확보가 대부분 어렵다”는 말도 있었고, “지금 정권과 정적 관계인 전직 대통령을 다룬 영화여서 극장들도 선뜻 스크린을 내주기 어려웠을 것”이란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개봉 16일째를 맞은 11월10일 현재, 하루 스크린 106개, 상영 횟수 344개로 늘어났다. 입소문을 타면서 예상 밖 ‘역주행 흥행’(영화계 은어로 ‘개싸가리가 났다’고 한다)을 하는 것이다. 첫날 관객 1378명이던 영화는 지난 일주일간 하루 평균 8600명 이상 관객을 모으며, 누적 관객 10만 명을 돌파했다. 다양성 영화에서 10만 관객은 상업영화 ‘100만 명급’으로 평가받는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이 집계한 일일 관객 동원 순위에서 다큐멘터리로는 드물게 흥행 4위까지 올랐다.

국가의 지도자란 무엇일까

현실이 엄혹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탓에 시민 수십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리움이 노무현을 다시 현실로 불러냈다. 영화는 16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옛날이야기’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원명씨가 노 전 대통령의 당시 발자취를 따라가는 방식이다. 김씨의 아버지가 1980년대 부산에서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했던 김희로 전 부산민주시민협의회 부회장이어서 인연이 깊다.

노 전 대통령은 한때 권력의 정점에 섰으면서도 “강력한 지도력은 강권적 지도력이 아니다. 바로 대중의 신뢰와 민주적 절차에 뿌리박은 통합의 지도력”이라고 말한 사람이다. 김씨는 영화에서 “요즘 ‘이게 나라야?’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때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게 노무현”이라고 말했다.

권력은 어디서 비롯되고 어디를 지향해야 할까? 정치란, 정치인이란, 이들이 끝내 지향하는 한 국가의 지도자란 무엇일까?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정치인 노무현은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에 새천년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 후보로 출마했다. 앞서 노 후보는 당선 가능성이 꽤 높다고 평가받던 서울시 종로구 공천을 거절하고, 이곳에 출마를 선언했다가 결과적으로 낙선했다. 노무현은 2000년 부산 출마 결정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매우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도전하는 것입니다. …떨어지더라도 정치적으로 실패할지 모르지만 인간으로서는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정치 영역을 벗어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카메라는 당시 노무현의 유세 현장을 뒤쫓는다. 그때도 나라에 별로 희망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유세에서 “저희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아라. 너 이놈아, 센 놈한테 붙어 살아라.’ 이런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정의가 살아 있고, 소신과 용기가 살아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지역감정이 격렬한 시절이었다. ‘영남에선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이, 호남에선 민주당이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말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시민이 있어 희망이 있다’
‘부산에 출마한 민주당 정치인’이란 말 자체가 이율배반적인 시절이 있었다. 2000년 4·13 총선에서 노무현 국회의원 후보는 반갑게 시민들 을 만났다 (위쪽). 한쪽에선 지역감정을 앞세운 선거전에 어려움을 겪었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제작위원회 제공

‘부산에 출마한 민주당 정치인’이란 말 자체가 이율배반적인 시절이 있었다. 2000년 4·13 총선에서 노무현 국회의원 후보는 반갑게 시민들 을 만났다 (위쪽). 한쪽에선 지역감정을 앞세운 선거전에 어려움을 겪었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제작위원회 제공

그해 합동유세에서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는 “저는 한나라당 기호 1번 허태열입니다. (새천년민주당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던 당시) 여러분 살림살이가 전보다 더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분 있으면 손 한번 들어봐주십시오. 저기 몇 분 계시네. 축하합니다. 정말 축하합니다. 혹시 전남에서 오신 것 아닙니까. 용감합니다. 용감해요”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노무현은 이렇게 말했다. “허태열 후보께 한두 마디만 충고하겠습니다. 지역감정만 부추긴다고 부산이 발전하는 것 아닙니다. 일을 해야 부산이 발전합니다. 일을 해야 부산이 삽니다. 저는 김해에서 10대를 살았고, 진영에서 태어나 중학교 나오고 부산상고 나왔고, 부산서 밥 먹고 살고, 부산서 싸우고, 부산서 국회의원 하고, 부산에 또 왔습니다. 진짜 부산 사람 아닙니까.”

하루 종일 유세 현장을 돌고 나면, 다리도 아팠다. 목도 퉁퉁 부었다. 그래도 담배는 포기하지 않다보니, 내내 목이 쉰 채였다. 그 상태로 지역 주민들이 “노래라도 한 자락 하라”면 를 되는 대로 목청껏 뽑았다.

지금은 그 어디서 내 생각 잊었는가?/ 꽃처럼 어여쁜 그 이름도 고왔던 순이 순이야~/ 파도치는 부둣가에 지나간 일들이 가슴에 남았는데/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너는 정녕 나를 잊었나?/ 지금은 그 어디서 내 모습 잊었는가?

그래도 그는 ‘시민이 있어 희망이 있다’고 얘기했다. 너털걸음에 깊게 주름 팬 얼굴을 하고는 “서민들이 정치적 발언권을 갖고, 그들이 삶을 위해서 당당하게 주장하고 잘못된 제도를 뜯어고칠 수 있는 서민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했다. 또 “역사는 사람이 만드는 것입니다. 잘난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을 살면서 지지고 볶고, 부부간에 사랑하는 이런 사람들이 역사를 만드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정치를 하면서 분명히 자기 지지 집단을 표적으로 두고, 이들에게 유리한 공약을 내는 게 사실이다. 그럼 반대 집단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러나 (지지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에) 그럴수록, 그렇기 때문에 더 들어줘야 한다. 예전에 신하는 임금을 탓할 수 없었다. 지금은 유권자가 임금의 자리에 있다. 결국은 국민들의 선택을 의심할 수는 없다. 이번 선택이 잘못되면 다음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정권이 바뀌어서 세상이 달라질 것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을 먼저 바꾸어서 정권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맞는 길인 것 같다. 권력은 시민에게 있다. 궁극적으로 시민이다.”(, 2009)

그는 그리움이 되었다
정치가 사람들을 절망과 실의에 빠트리는 시대다.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포스터)는 “희망을 말하는 정치, 정치인도 있었다”며 사람들을 위로한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제작위원회 제공

정치가 사람들을 절망과 실의에 빠트리는 시대다.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포스터)는 “희망을 말하는 정치, 정치인도 있었다”며 사람들을 위로한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제작위원회 제공

정치인이 해야 할 일도 여기서 기인한다. 그는 “(정치인이라면) 한 개인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한다. 정치인이 스스로 곧고 바른 일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오랫동안 본받게 해줄 만한 삶을 만드는 것, 의욕과 동기를 갖게 해주는 것(이 정치인의 할 일)”이라고도 말했다.

현실정치는 비뚤어져 있었다. 그는 “세상에는 의미 있는 도전이 있고, 의미 없는 도전도 있다. 그러나 도전하기 때문에 변화한다. 여러 사람의 여러 가지의 도전이 축적돼야 우리 사회가 변해가는 것이다. 정치인 중에 어려운 일에 도전해서 조그만 변화의 싹을 하나 틔웠다. 그 싹이 잘 자랄지 모르지만, 어렵게 틔운 싹을 무럭무럭 튼튼하게 자라도록 하는 일은 그다음의 일”이라고 말했다.

선거에서 노무현은 결국 졌다. 뼈아픈 결과가 나왔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는 것일까? 노무현 후보는 그해 선거사무소 해단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살면서 평생 모든 게임에서 모두 이길 수가 없어요. 우리 같은 경우도 1987년에도 그렇게 싸우고도, 선거에서 또 졌어요. 매번 다 이길 수 없고, 그래도 또 여러 사람이 힘써가는 동안에 세상이 한참 바뀐 것을 알게 돼요. 몇 사람 모여서 손잡고 역사를 바꾼다고 하는 게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고, 실패하는 쪽이 훨씬 많잖아요. 여러분들도 그냥 이로써 역사가 막을 내리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졌다고 반드시 정의가 졌다고 할 것도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노래 한번 합시다.”

당시 국회의원선거에서 패배하며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가 생겼고, 2년 뒤 노무현은 시민 지지 기반으로 대통령이 됐다. 그리고 9년 뒤, 그는 그리움이 되었다. 노 전 대통령의 청와대 전속 사진가인 장철영씨는 영화에서 이렇게 돌이켰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속 사진가로 1년을 더 청와대에서 일했습니다. 사람들이 배신자라고 욕을 했는데, 노 전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주변에 99명이 모두 욕하는데, 최고 권력자만이 나를 지켜주는 거예요. 내가 유명인도, 엄청나게 잘난 놈도 아니고,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놈인데. 이놈한테….”

1987년 항쟁 당시 부산민주시민협의회 부회장으로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시민운동을 했던 김희로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그 양반(노 전 대통령)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죽었다가 부활해서 우리 민중 각자 가슴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고 봐요. 다시 이들이 역사를 진보시키고 있다고 봅니다. 그 비극적인 사건(노 전 대통령 서거) 자체도 역사를 진보시키는 하나의 에너지라고 봐요. 민주주의 꽃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합니다. 역사 진보는 항상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힘이 세다”

전인환 감독은 영화 속 내레이션에서 “희망을 억지로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우리가 가꾼 작은 열매가 얼마나 쉽게 썩을 수 있나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어쩌면 앞으로도 우리는 실패할지 모른다. 하지만 계속된 실패 속에서도 내일의 희망이 싹트고 있음을 믿는다. 결국 희망은 연대하고 조직된 우리에게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힘이 세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실의에 빠진 사람들의 어깨를 토닥거린다.

오는 길이 오래 걸리더라도 그건 오는 중이고 오고 있다는 거야
그건 결코 물러서거나 멈추지 않는다는 거야
우리가 하는 어떤 일도 헛수고는 아니야
난 우리가 승리를 보게 될 거라고 진심으로 믿어
그렇지만 보지 못하더라도, 내가 확실치 못하더라도
승리에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
-찰스 디킨스,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제작위원회 제공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제작위원회 제공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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