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로버트 앨런 지머먼은 삐딱하다. 상의부터 옷고름 쪽 단추 두개를 풀어젖혔다. 양 소매는 팔꿈치께까지 걷어올렸고, 두 손은 절반만 청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나이는 갓 스물이나 됐을까? 잘생긴 미소년의 얼굴인데 일부러 한쪽 눈매를 찌그러뜨리고, 눈꺼풀을 한쪽 위로 치켜떴다. 그 상태로 매섭게 상대를 째려본다. 이마에도 잔뜩 힘을 줘 굳이 주름을 만들고는 반항적인 표정을 했다. 당대의 아이콘이던 영화배우 제임스 딘을 따라했다.
시의 노래를 들어라지머먼은 1962년 ‘밥 딜런’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건 영국의 방랑시인 딜런 토머스의 이름을 흉내 냈다. 이유가 조금 시시하다. 그가 쓴 기록을 보면 “우연히 딜런 토머스의 시를 보았다. 딜런과 앨런(자신의 이름)이 비슷하게 들렸다. …사람들은 (로버트를 줄여) 보비라고 불렀지만, 보비 딜런은 너무 겁이 많은 것처럼 들렸고… 밥 딜런이라면 밥 앨런보다 좋게 들리는 것 같았다”는 정도다.
풋내기 딜런은 이듬해 벼락처럼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오른다. 그해 발표한 노래 (Blowing in the wind)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이 명분 없이 베트남 전쟁을 갓 시작한 때다. 한쪽에선 마틴 루서 킹 목사를 중심으로 흑인민권운동이 확산되고 있었다. 주류 미국인들은 전쟁의 불안에 떨었고, 소수 약자들은 새 희망을 품었다. 딜런이 쓴 가사와 거친 듯 감미로운 그의 노래는 반전·민권 운동의 기폭제 구실을 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하나/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전쟁을 해야 하나/ 너무 많이 죽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친구여, 답은 바람 속에 휘날리고 있네.”
이때부터 딜런은 노래 500여 곡, 앨범 50여 장을 냈다. 앨범 판매는 1억3천만 장 정도다. 엄청난 판매량이지만, 당시 2억 장대 판매를 올린 ‘데뷔 동기’ 비틀스나 ‘선배’ 엘비스 프레슬리에는 미치지 못한다. 딜런을 진짜 ‘20세기 위대한 예술인’으로 만든 것은 노랫말이었다. 가수 한대수는 자신의 책에서 딜런의 노랫말을 이렇게 평가했다.
“딜런이 음악계에 나타난 이후 대중음악의 얼굴은 완전히 달라졌다. 단순히 듣고 흥에 겨워 춤추는 음악이 아니라, 생각하고 고민하고, 또 때로는 마음과 마음이 부딪혀서 눈물도 흘릴 수 있는 음악이 되었다. 딜런은 블레이크, 엘리엇, 키츠, 딜런, 케루악, 긴즈버그 등의 모든 장점을 함축하여 노래하는 시인 철학자를 창조해낸 것이다. 그것도 단순한 시가 아니라, 노래의 음계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가사로 창작할 수 있었다는 것은 천재적인 일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10월13일 ‘귀로 들려주는 시’를 쓰는 데 한평생을 바친 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을 줬다. “위대한 미국의 노래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노벨상 집착이 유별난 한국적 정서에서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그냥 부러운 일일 뿐이다. 한국에서 문화예술인은 오히려 점점 미움받는 존재가 되는 것 같다. 특히 청와대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로 내려보냈다는 ‘검열해야 할 문화예술계 명단 9473명’ 논란은 할 말을 잃게 한다. 세월호 시행령 폐기 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특정 정치인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예술인에게 주홍글씨를 새겼다.
금지 이유 ‘전쟁 반대’조금 오래된 얘기지만,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 대통령’ 시절에도 예술인들은 일상적으로 푸대접을 받았다. 적어도 한국에선 밥 딜런도 예외가 아니었다. 1979년 한국공연윤리위원회가 딜런의 노래 를 다른 국내외 노래 744곡과 함께 금지곡으로 분류했다. 그때도 푸대접의 이유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다른 노래 상당수는 왜색(일본풍), 외설, 불온, 저속퇴폐, 치정살인처럼 납득할 만한 것이었다. 딜런 노래의 금지 이유는 ‘전쟁 반대’(반전)였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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