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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도 밟으면 꿈틀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 펴낸 스물아홉 청소년인권운동가 공현
등록 2016-10-12 19:47 수정 2020-05-03 04:28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청소년운동단체 ‘아수나로’에서 ‘화석’으로 불리는 공현씨를 만났다. 2005년 전북 전주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했고 지금도 아수나로 활동가인 그는 “감옥에 있던 시간을 빼면 (청년운동을 한 지) 10년쯤 돼요”라고 말했다. 1988년생 공현씨는 2013년 8월 출소하기 전까지, 병역거부자로 1년6개월간 수감됐다. 2011년에는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활동가로 다니던 대학을 자퇴했다.

‘스물아홉 살’ 청소년활동가는 지난 9월 청소년활동가 둠코와 함께 (교육공동체벗 펴냄)를 출간했다. 이 책에는 1998년 PC통신 ‘중고등학생복지회’부터 2012년 청소년 참정권 운동까지, 한복판에서 경험한 이들의 인터뷰 13개가 담겼다. 구상은 감옥에서, 기획의 출발은 2014년에 냈던 책이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까먹지 말라”스물아홉 비청소년이 청소년운동을 아직도 하는 이유가 뭔가요?

2006년 서울로 올 무렵 아수나로가 생겼죠. 당시 문제의식 중 하나가 ‘청소년만 청소년운동을 하니까 발전을 못한다. 비청소년도 같이하는 청소년운동을 만들자’였어요. ‘여성운동을 여성만 하나? 장애인운동을 하는 비장애인 활동가도 있다’는 논리도 있죠. 전 시대의 단체들이 망하는 모습을 봤거든요. 처음 단체를 만들었던 청소년운동가가 2~3년 하다 그만두면 망하고 맥이 끊겼어요. 개인적으로 스무 살 됐다고 그만두자니 좀 치사한 것 같기도 하고. 좀더 해볼까 하다가 눌러앉았죠. 여전히 청소년운동이 재미있기도 하고. 너무 붙박이 같아서 내년엔 아수나로는 그만두고 청소년 대중조직을 만들까 생각도 해요.

별다른 자료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인물들을 선정하고 만났는지 신기해요.

2006년 청소년인권활동가 네트워크 사람들과 함께 인권운동사랑방 주간인권신문 에 고등학생운동부터 청소년운동까지 역사를 정리하는 연재를 했어요. 그때 만났던 이들에 바탕해 기사를 찾고 자료를 모았죠. 전자우편으로 물어보기도 하고요. 2002년부터 2~3년간 잘 모르겠다 싶었는데 그렇게 빈칸을 채웠어요. 통사로 쓰기엔 자료가 부족하고, 재미도 없겠다 싶어 기억을 모으는 작업을 했어요. 이후에 다른 활동가, 연구자들이 통사를 쓰는 데 자료가 되면 좋겠어요.

<i> 20대 청소년운동가 ‘난다’는 책에서 “까먹지 말라”고 다짐하고 당부한다. “아까 ‘청소년이 여기 있다는 것을 까먹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청소년운동의 목소리라고 했는데, 제 안에도 나의 청소년기를 까먹지 말자는 목소리가 있어요. 보통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를 별거 아닌 것으로 취급하잖아요. …시간이 지나서 어른이 되면 없어질 문제니까 참으라고 하고요.”
청소년운동뿐 아니라 청소년운동사도 ‘까먹기 쉬운’ 역사다. 정리되고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잊히기 십상이다. 공현씨는 “옛날 일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지금 청소년운동을 하는 사람 중에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돼서 (청소년운동을) 이렇게 다르게 해보자고 얘기하는 위치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르게 말하기 위해서 어떻게 했는지 정리가 필요하다. 청소년이라는 잠정적 시기가 지나면 활동가들이 청소년운동을 떠나는 분위기에서 세대 전승은 더욱 어려웠고, 역사도 단절됐다. 청소년운동의 등장을 알리는 ‘중고등학생복지회’(학복회)를 만든 나정훈씨는 책에서 “청소년운동이 쭉 발전하기보다는 나선형으로 비슷비슷한 고민들과 시행착오들을 반복하면서 더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i>10년, 현재까지 유효한 체험
2006년 청소년인권활동가 네트워크는 두발 자유화를 주장하는 집회를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열었다. 청소년운동은 2000년 노컷운동을 통해 두발 규제 문제를 지적했지만, 2005~2006년 다시 캠페인을 해야 했다. 그만큼 청소년 인권 확대는 어렵고, 운동의 의제는 반복됐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2006년 청소년인권활동가 네트워크는 두발 자유화를 주장하는 집회를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열었다. 청소년운동은 2000년 노컷운동을 통해 두발 규제 문제를 지적했지만, 2005~2006년 다시 캠페인을 해야 했다. 그만큼 청소년 인권 확대는 어렵고, 운동의 의제는 반복됐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10년을 했는데 지루한 반복에 지치지 않나요? 두발자유화, 체벌금지 같은 고릿적 문제가 지금도 반복되고 청소년 참정권 같은 권리를 요구한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현실화되지 못했어요.

어차피 사회운동은 반복인 면이 있죠. 저한텐 반복이라고 생각돼도 듣는 사람한텐 새롭겠지 생각해요. 논리가 비슷해도 상황과 사람이 계속 달라져요. 다르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똑같네 생각했다 큰코다친 적도 많아서. 오히려 문제가 복잡해졌죠.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역과 아닌 지역의 격차가 생기고, 상황이 달라졌어요.

청소년운동사이지만, 그들에게 청소년운동의 의미가 어떻게 남아 있는지 읽고 나면 강한 기억으로 남아요. 책 서문에 “누군가에게는 반면교사로, 삶을 바꾼 전환점으로, 현재까지 유효한 원리이자 체험으로 남아 있다”고 썼어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길 바랐나요?

오히려 안 좋게 남았다면 왜 그런지가 궁금했어요. 지금 청소년운동이 그 경험을 반영해서 바꿀 수 있으니까요. 다들 면전이라 그런지 좋게 말하던데요.

인터뷰에 얼핏 청소년운동을 하다가 자살한 친구, 운동과 단절한 사람들 얘기가 나와요. 인터뷰한 이들은 그래도 승리자 아닌가요?

승리자라기보다는 살아남았다는 의미에서 생존자죠. 학생연합 활동을 했던 장여진씨 인터뷰에 아픈 기억이 좀 나와요. 이 책을 읽고 ‘청소년운동은 쳐다보기도 싫다’고 하시는 분들이 리뷰를 써주시면 좋지 않을까요?

책에 넣지 못해서 아쉬운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청소년보호법에 동성애를 유해매체물 심의 기준으로 규정한 부분에 맞선 운동이 있었는데 전체 성소수자운동 영역에 속해 있어서 다루기 애매했어요. 실업계 고등학교를 포함한 청소년노동권운동도 사회단체가 주도해서 그런지 청소년 당사자를 찾기 어려웠어요. (중·고등학교) 학생회운동도 넣고 싶었는데 운동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 마땅치 않더라고요.

암약했던 청소년운동가들의 오늘도
서울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청소년운동을 중심으로 서명 발의 운동을 해서 이뤄졌다. 고투 끝에 발의인 수를 넘긴 2011년 5월 공현씨가 서울 사당동 사무실에서 웃고 있다. 한겨레

서울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청소년운동을 중심으로 서명 발의 운동을 해서 이뤄졌다. 고투 끝에 발의인 수를 넘긴 2011년 5월 공현씨가 서울 사당동 사무실에서 웃고 있다. 한겨레

청소년운동 이전에 ‘고운’으로 불리는 고등학생운동이 있었다. “‘청소년운동’은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청소년들이 자신의 인권 보장 등 권익을 주장하며 활동한 사회운동”으로 “그 이전 시대의 ‘고등학생운동’과는 시기적 성격적으로 구분된다”고 책은 설명한다. “고등학생운동이 그 시대에 민주화운동·변혁운동의 관점과 문화를 갖고 있었고 교사운동·대학생운동과 여러 차원에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은 청소년운동과 다른 부분”이라는 것이다.

청소년운동은 초기엔 온라인을 중심으로 시작하고, 노동·통일 같은 대사회적 문제보다 두발자유·체벌금지 같은 학생인권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20년 가까이 청소년활동가들은 18살 선거권, 내신등급제 반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반대, 촛불집회 참여, 대학·입시 거부,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의 운동을 해왔다. 그러나 역사가 과거가 되는 행운을 누리지 못한다. 그래서 에는 과거가 된 역사가 아니라 여전히 ‘만나는’ 문제들이 담겼다.

2006년 ‘학생인권법 국회 통과를 위한 100만인 서명 운동’을 학교에서 벌였던 따이루는 책에서 “영어 선생한테도 끌려가고 수학 선생한테도 끌려가고 담임한테도 끌려가고 그렇게 다양하게 끌려가다보니까 내성이 생겨서 나중에는 교무실이 내 방 같았어요”라고 말했다. 학교의 현실과 더불어 사회의 시선도 변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에 “지켜주지 못한 우리 아이들”, 탈핵운동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같은 구호에 아동·청소년 보호주의가 있다고 지적하면 ‘까칠하다’는 이야기가 돌아온다.

아수나로에서 부모를 친권자라고 불러서 반감을 사기도 해요.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한남’에 비하면 중립적 표현인데…. 친권자, 가정폭력 같은 네이밍을 통해서 드러나지 않았던 관계 속의 권력을 드러내는 거죠. 자기 경험을 다르게 구성할 수 있게 한다는 면에서 필요한 말이죠.

청소년운동이 환영받지, 칭찬받지 못하는 운동이란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저는 청소년운동 바깥의 일을 덜 하는 편이라 덜 부딪혀요. 제가 페이스북에 운동사회 안에서 나이 차별 문제 같은 걸 올리니까 ‘그러지 좀 말라’고 하는 이들도 있죠. ‘운동사회 안에서 싸우는 게 너희들 일이냐?’라는 얘기도 듣고. 이런 문제를 계속 지적해왔지만, 운동사회 내부보다 그 바깥의 사회를 바꾸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돼요. 그 질서 안에 있는 사람이 다수니까요.

<i> “원래 책 제목을 ‘청소년도 밟으면 꿈틀한다’로 제안했다가 ‘까였어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꿈틀한 흔적이 세상을 그래도 바꿔왔음을 는 증언한다. 그렇게 인생의 가장 민감한 시기에 격렬한 경험을 한 이들이 몸으로 익힌 당사자성을 오늘도 지키며 여전히 “지금 여기에 내가 속한 이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려 애쓴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NEIS 반대운동을 했던 박정훈씨가 지금은 알바노조 위원장으로 노동권을 지키고, 학복회 김한울씨가 노동당 부대표로 살아간다. 그 밖에 곳곳의 마을에서 ‘암약하는’ 청소년운동 출신들의 경험과 오늘을 읽는 재미가 쏠쏠해 책은 술술 읽힌다.</i>다른 새로움의 역사

그는 책의 ‘나오는 글’에서 “1990년대 청소년으로서 겪었던 삶과 2010년대에 청소년으로서 겪었던 삶이 질릴 정도로 닮아 있다”고 썼다. 숱한 과제들이 미해결로 쌓여 있단 것이다. 한편 “이렇게 기억을 기록하고 전하는 작업이 경험과 역사를 공유하고 전수하며 ‘다른 새로움’을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청소년운동가들의 경험과 기억, 자료를 마땅히 건네받을 자격이 있다”는 “채권의식”으로 역사를 정리했다. 그것은 “청소년운동을 시작하는 이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어진다.

옆에 놓일 책의 원고도 이미 출판사에 넘겼다. 일제강점기 3·1운동부터 2008년 촛불집회까지 청소년들이 현대사에서 중요한 주체로 참여한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그것은 청소년이 역사의 주체로 등장할 때마다 “새롭다”고 하는 이들을 향해 “늘 있었던 일”임을 못박는 작업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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