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 잘 떨다 가요~.” 지난 9월27일 저녁, 서울 공덕역 지하에서 헤어지며 최현숙씨가 손을 흔들었다. 비 오는 저녁, 역에서 멀지 않은 마포구 신수동 자기만의 방, 원룸으로 그녀는 갔다. “10대부터 막연하게 생각했던 방식으로 비로소 산다”는 꿈을 이루게 한 그녀의 원룸이다.
최씨는 최저시급 6030원을 받으며 하루 5시간씩 일해 한 달 50여만원을 버는 마포구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다. 30여 명 독거노인의 생사를 확인하고, 필요한 물품을 전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그리고 그녀에겐 9월 말까지 출판사에 주기로 한 남성 노인 생애사 원고가 있다.
<font color="#006699"><font size="4">진보정당·성소수자·요양보호사·구술사…</font></font>10년쯤 전, 이따금 그녀를 보았다. 당시 최현숙씨는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 위원장이었다. 2008년 총선에선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하여 서울 종로구에 출마했고, 2009년엔 진보신당 부대표에도 출마했다. 진보정당 운동이 위기에 처하자 2010년에는 요양보호사가 되었고, 요양보호사협회를 함께 만들고 수석부위원장을 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만난 노년·장년 여성들의 구술 생애사를 기록한 (이매진·2013), (이매진·2014)를 썼다.
도시 중하층 여성들의 ‘한 많은 생애’를 기록한 책에는 오히려 삶에 대한 긍정이 넘친다. 그녀는 그녀들 곁에 딱 붙어 곡절 많은 인생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쓰고 고무하고 찬양한다. 가난한 이들이야말로 얼마나 훌륭한 삶의 기술자들인지 구체적 인생을 통해 배우게 된다.
나이 들수록 파란만장 더욱 화려해진 인생을 사는 최현숙씨가 고동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 인터뷰하러 나타났다. 사진도 찍어야 하니 “비비크림도 발랐다”며 웃는 그녀에게 원피스의 내력을 물었다. “6600원짜리야. 지하철 환승역 노점에서 샀어. 여름내 입고 다녀서 같이 일하는 아줌마들이 운동복이래.” 1957년생, 내년이면 환갑인 최현숙씨는 싸지만 몸에 맞는 옷처럼 일하고 쓰는 지금이 “족하다”고 했다.
원래 가톨릭 사회운동을 한 걸로 알아요.10대 후반부터 ‘어디서 뭘 하고 살아야 잘 사는 건가?’ 하는 고민이 30대까지 이어졌죠. 서른 하나둘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했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다고 생각해요. 누가 소외돼 있는가? 그것이 저에겐 중요해요. 그 편에 같이 서되 사회구조적 문제와 연결하고 싶은 거죠.
중년이 돼서 커밍아웃하고, 레즈비언 후보로 출마했어요.처음엔 민주노동당 성소수자 모임인 ‘붉은 이반’을 지지하는 모임 ‘붉은 일반’에 들어갔어요. 거기까지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없었고, 내 정체성이 누구여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성소수자 문제를 의제화하는 데 동의했던 거죠. 호기심도 있었고. 하하하! 낯선 걸 보고 두려움을 좇아가는 사람은 혐오와 경계를 만들지만, 호기심으로 가는 사람은 뭔가를 만난다고 생각해요. 제가 호기심이 강해요.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걸 즐겨버리는 거죠.
그냥 중산층 여성으로 살 수도 있지 않았나요?아니에요. 결혼해서 서울 독산동 벌집방에 살았어요.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사는 곳이었죠. 나중에 형편이 좀 나아지긴 했지만, 저는 가난이 편했어요. 단출함이 편했던 것 같아요. 일상의 복잡함이 없이 음식을 해먹어도 간단하고.
그런 단출함이 지속 가능한가요? 더 나이 들면 경제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도 크잖아요.저한테는 ‘무엇으로 행복한가?’가 핵심 같아요. 요양보호사 일이 ‘똥걸레 빠는 일’일 수도 있거든요. 모멸감을 느낄 때도 있었죠. 그러다 하룻밤 통곡하고 나면 이 우울과 자괴감이 뭔지 보게 돼요. ‘내가 나를 어떻게 여기느냐’가 중요한데,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니까 그런 거죠.
독거노인을 두고 보통 비참하다고 하지만, 실제 독거노인을 만나면 빈곤에 대해 그분들이 느끼는 것이 달라요. 어차피 평생 가난했어요. 새끼들 어떻게 밥해 먹일까 골치 아팠는데, 지금은 자식들 저대로 살고 오히려 현재가 제일 나아요. 물론 욕망이 삭제된 면이 있죠. 저 역시 그래요. 삭제한 면도 있고 벗어난 면도 있죠.
어제 누구와 얘기하다, 최현숙이야말로 한국형 히피네, 했어요. 혼자 완결적인 면에서 그렇다는 거죠.제가 상당히 유목민적이죠. 떠돌이라고 생각해요. 나한텐 정처, 정해진 어떤 곳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무엇을 하느냐’를 통해 느끼는 행복이나 족함이 중요해요.
가톨릭, 진보정당, 성소수자, 요양보호사 노동운동, 생애사 구술 작업….한 번도 누구를 따라간 적이 없어요. 내가 떠나서 선택했죠.
진보정당 활동가로 10년을 살다가 요양보호사로 전환한 이유가 뭐예요?2008년 총선이 끝나고 진보신당 부대표에 출마했는데, 제가 주장하는 의제와 당원들이 저를 보는 시선이 달라요. 2000년부터 지역에서 진보정치를 하고 여성위원회를 꾸리면서 다양한 의제를 품어왔는데, 매미 말려서 곤충채집하듯 나를 레즈비언이라고 핀셋으로 꽂아놓는다고 느꼈어요. 내가 생각하는 나는 성소수자 정체성만으로 규정되지 않거든요. 오히려 계급적 의제에 관심이 있죠.
<font color="#006699"><font size="4">‘가난을 낭만화한다’는 의문</font></font>‘부자는 행복하고, 가난하면 불행하다.’ 이것도 정상 이데올로기다. “세상이 자꾸 거꾸로 보인다”는 그녀의 눈에 독거노인은 “부자보다 잘 살다 가는 인간”이다. 짚고 넘어갈 질문이 있다. “가난을 낭만화한다”는 의문이다. 그녀는 “폐휴지를 줍는 노인이 열심히 몇 푼을 벌어야 하는 이유와 그걸 쓰면서 느끼는 행복의 ‘요맛’”을 말했다. 그들의 맛이 “많이 벌고 쓰는 부자들의 행복감보다 작다”는 양적, 질적 비교가 문제란 것이다. 빈곤 노인을 만나며 그녀는 ‘요맛’을 더욱 알았다.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구술사도 염두에 두었나요?아니요. 생각도 안 했죠. 중·장년 여성노동자 조직을 하러 갔어요. 근데 집에 가면 노인들이 계속 떠드는 거예요. 나는 그게 재밌더라고요. 제가 그분들 얘기에 ‘쿵짝’을 잘 맞춰요. 창하는 데 추임새 넣듯 하죠. 막상 생애사로 접근하니 노인들이 다르게 보여요. 지금의 존재만이 아닌 거예요. 얼굴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죽을 날만 남은 사람이 아닌 거죠. 살아온 내력 속에 이 사람이 존재하는 거잖아요.
가난해서 오히려 삶의 근본을 꿰뚫어보는 분들도 있겠어요.후원 물품을 전달하면 자괴감을 토로하는 노인들도 있지만 ‘땡큐’ 하고 받는 분이 많아요. 내가 평생 고생하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남의 것 좀 먹고 살면 어떠냐?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면 어떠냐? 내 것 없으면 남의 것으로 먹고살아도 되지! 그렇게 하시는 거죠. 나는 그게 인간 존재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저의 주제는 죽음인데, 평생 힘들게 살아온 노인들이 평등한 ‘꼬라지’를 보는 게 죽음이죠. 힘들게 살아온 사람이 마지막 순간 모두가 평등하니 얼마나 통쾌하겠어요.
행복 자영업자 같은 느낌이십니다.평등을 주장하는 이들이 접근해온 방식이 물질적 평등으로 한정돼서 사람들 마음을 못 잡고 못 모으는 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font color="#006699"><font size="4">“내가 사는 곳이 천국” </font></font>에 실린 평양 출신 할머니요. 누가 그 원고를 보더니 주인공이 약간 밉대요. 욕을 많이 해서. 20대 초반에 화신백화점이 너무 보고 싶어서 서울에 내려온 분이에요. 와서 보니까 서울 여자들이 행주치마 입고 있는 (촌스러운) 꼬라지가 너무 웃기더라는 거예요. 그분은 평양에서 신발공장, 담배공장 다니던 분이거든요. 그러다 남쪽에 발이 묶이고, 미군들 상대로 성매매도 했어요. 아들은 목사가 됐는데, 목사 아들이 성매매한 거랑 낙태한 걸 회계하라고 집에만 가면 통성기도를 한대요. 그래서 자기는 자기 사는 데가 천국이고 (아들 사는) 성남은 지옥이라는 거예요. 이런 낙인을 가진 분인데 나랑 구술사 작업을 하면서 자기 삶을 다르게 보게 됐죠. 자유로운 성격이나 활달함도 나랑 비슷해요. 화신백화점 보고 싶어서 온 거잖아요. 호기심!
이 사람이다 ‘감’이 오는 분들이 있나요?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 막말이 너무 많거나 너무 거친 분들은 뭔가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 뭔가가 궁금한 거죠.
그래서 뭔가를 캐내기 더 어렵지 않나요?마음을 사는 게 중요하죠. 제 구술사 주인공들은 2년 이상 관계를 맺은 분이에요.
그러니까 최현숙씨가 하는 작업은 삭제된 목소리를 듣는 인류학자의 일이요, 답답한 심정을 들어주고 위로하는 무당의 역할과 맞닿아 있다. ‘비주얼’은 그녀의 무기다. “내 얼굴이 앞치마 입으면 식당 아줌마, 빗자루 들면 청소 아줌마잖아요. 어디에 잘 섞이는 말투나 습관도 있고. 필요하면 칼도 들이밀 수 있고. 요즘 성명서나 진정서처럼.”
최근 그녀는 ‘제 버릇 못 버리고’ 정의의 칼을 휘둘렀다. 지난여름 폭염 주의보가 떨어진 날이면 마포구 생활관리사들은 독거노인에게 일일이 문자를 보내 안전을 확인해야 했다. 휴무일 명백한 업무 지시를 받아 일했지만 무급이었다. 반복된 관행에 그녀가 제동을 걸었다. 우여곡절 끝에 휴무일 폭염 근무 수당을 전국 최초로 따냈다.
<font color="#006699"><font size="4">타인의 생애와 ‘민주화’</font></font>요양보호사 일도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그만뒀다면서요. 왜 그랬어요?독거노인 생활관리사로 지내면서 문제가 보여도 지나갔어요. 그런데 이번엔 문제제기 안 하고 넘어가면 나를 배신하는 거라고 느꼈어요. 제가 사회운동을 떠난 사람도 아니고,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니까. 수당 지급이 결정되고 모였는데 생활관리사 한 분이 “민주화하느라고 고생했다”고 그래요. 다른 여성들도 “고맙다”고 해요. 아, 저 사람들이 자신의 생애사 속에서 느낀 ‘민주화’를 이렇게 이번 일과 연결해 해석하네 싶었죠. 그들에게 이번 일이 의미화되는 게 가장 중요했거든요.
예상치 못한 생애들을 만나면서 최현숙의 전후가 달라졌나요?사람을 어떻게 만나느냐가 달라졌어요. 예전엔 의제와 논리로 만났다면, 지금은 삶으로 만나면서 제가 사람들 속에서 배우는 거죠. 구술사 결과물을 통해 진보 진영에도 가난에 대한 통념과 다른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기나긴 생애사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이것만은 놓치지 말자’ 하는 게 있나요?음, 기본적으로 저는 옹호인 것 같아요. 필자의 입장에선 옹호하되 옹호를 넘어서야죠. 가난을 사회구조적으로 해석하고 그분들이 자긍심을 갖도록 돕는 거죠.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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