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철학·과학·역사·사회·생태·문화·언론 등을 다루는 ‘아삭아삭 민주주의 학교’와 아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고래토론’을 격주로 싣습니다.
글 목수정, 박준성
그림 허지영</font>
<font size="4"><font color="#991900">문화</font></font> 목수정_ 다른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한 대로 살아가는 이모야. 편견과 관습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실천하려고 노력해. 프랑스에 살면서 여러 신문에 글을 쓰고 있어. 쓴 책으로 등이 있어.
지난해 페미니스트가 싫어서 이슬람국가(IS)에 합류한다며 터키에서 사라진 한 소년이 있었어. 그 얘기를 들으면 페미니스트는 마치 남성을 차별하고 헐뜯는 사람 같아. 정말 페미니스트는 그런 사람들이고 페미니즘은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겠다는 생각일까? 그렇지 않아. 페미니즘은 여성해방을 위한 운동을 뜻하고, 페미니스트는 여성이 해방되기를 희망하고 그것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야.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인간으로서 상생과 협력을 통해 세상을 함께 이끌어가려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 운동이야.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자신이 가진 피부색이나 성적 취향, 경제적 능력 등에 상관없이 신체의 자유, 의사 결정의 자유,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갖고 태어났어.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에서 20세기 전까지는 여성에게 정치에 참여할 권리인 참정권이 없었어. 그뿐만 아니라 직업 선택의 자유, 신체의 자유도 제한되어 있었지. 그런 현실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힘을 모아 싸웠고, 그렇게 해서 하나둘 제한된 권리를 얻어냈어.
한국에서는 1948년부터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됐거든. 그때부터 한국 여성은 적어도 정치에 참여할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것처럼 보여. 하지만 실제 국회의원 수를 볼까? 전체 의원 중에 여성 의원 수는 17%밖에 되지 않아. 여성 장관 수는 전체 17명 중 2명뿐이고, 외교 분야에서도 90명이나 되는 대사 중 여성은 단 1명뿐이야. 그러나 2016년 외교관이 되기 위해 봐야 하는 외교관후보자선발시험의 여성 합격자 비율은 68.6%나 되지.
기업에서도 비슷해. 한국 기업에서 여성 임원의 비율은 2.3%밖에 되지 않아. 여성의 임금은 남성 임금의 62.8%밖에 되지 않지. 이른바 ‘유리 천장’이라고 하는 것이 여성들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야. 남녀 모두에게 얼마든지 위로 올라갈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진 듯하지만, 여성은 더 올라갈 수 없게 하는 유리 천장이 있는 거지. 현대의 남녀평등 지수라 할 수 있는 이 유리 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매년 꼴찌를 차지해.
학교 친구들을 봐. 남자아이들이 시험점수를 100점 받을 때 여자아이들은 늘 62점만 받니? 여자아이가 학급 임원이 될 확률이 2.3%밖에 되지 않아? 전혀 그렇지 않을 거야. 학교 다닐 때 여학생은 오히려 남학생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는 예가 많거든. 대학 진학률도 여성이 더 높아.
그러나 세상이 여성에게 평등하게 기회를 주는 건 딱 거기까지야. 더구나 최근엔 여성을 난폭한 언어로 깎아내리고 혐오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어. 때로는 여성에 대한 혐오를 행동으로 옮기기도 하는데, 지난 2월 일어난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지. 여성들은 세상에서 여전히 차별받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자기의 권리가 여성들 때문에 위협받고 있고 그래서 더 불행해질 거로 생각하는 모양이야.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지.
세상에서 남녀평등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아이슬란드야. 세상에서 남성의 평균수명이 가장 높은 나라도 아이슬란드고. 덴마크에서도 남녀평등 지수 순위가 올라가자 남성의 평균수명이 3년이나 늘어났다고 해. 이뿐만 아니야. 행복한 나라, 민주적인 나라라고 여겨지는 나라들도 대부분 남녀평등 지수가 높아. 몇몇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여성이 남성과 함께 짐을 나눠서 지고 세상을 함께 이끌어나가면, 여성과 남성이 함께 행복해지는 거야. 남성도 적극적인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 이유지. 우린 함께 행복해져야 하니까.
<font size="4"><font color="#991900">역사</font></font> 박준성_ 역사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 노동자와 함께 역사를 연구하는 삼촌이야. 구로역사연구소(지금 역사학연구소)와 노동자교육센터 등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어. 나무로 작은 물건을 만들기도 해. 라는 책을 썼어.
사람들이 충청남도 부여에 갔을 때 즐겨 찾는 곳이 어딜까. 아마 백마강 옆 부소산에 있는 낙화암일 거야. 낙화암은 ‘의자왕과 삼천궁녀’ 전설로 유명한 곳이야.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부여 사비성으로 몰려올 때 삼천궁녀가 낙화암에서 몸을 던져 꽃잎처럼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지?
낙화암 아래쪽에 있는 고란사에는 그런 내용을 그려놓은 그림이 있어. 낙화암과 삼천궁녀의 한을 담은 노래, 영화, 연극도 많았지. 예전에는 삼천궁녀의 전설을 사실처럼 쓴 국사 사전도 있었고. 아직도 그런 이야기를 사실처럼 믿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아.
하지만 부여에 가서 왕궁터를 둘러보아도 삼천궁녀가 살 만큼 규모가 크지 않아. 낙화암 위에 삼천궁녀가 기다릴 만한 넓은 자리도 없고, 우르르 몰려가 꽃잎처럼 떨어져 자살할 만한 곳도 마땅치 않아. 무엇보다 삼국시대를 대상으로 삼은 와 어디에도 낙화암이나 삼천궁녀 이야기는 없어.
다만 에는 의자왕에게 서자가 41명이 있다고 했어. 후궁이 많았다는 뜻이지. 또 의자왕이 궁녀들과 더불어 음탕하게 놀고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기록해놓았어. 그래서 백제는 스스로 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거야. 에는 궁인들이 ‘타사암’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사실이 있다고 했어. 낙화암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때는 고려 말기였지만 그때까지도 삼천궁녀 이야기는 없었어.
그런데 조선시대에 와서 시인들이 폼 나게 시를 쓰고 싶어서 그랬는지 낙화암에서 떨어진 궁인 수를 과장해서 삼천궁녀라고 뻥을 치기 시작했어. 이런 이야기들에 점점 살이 붙어 ‘의자왕과 삼천궁녀’라는 전설이 만들어졌고, 백제가 신라와 당나라의 침략보다 의자왕의 사치와 방탕 때문에 망했다는 근거로 삼게 되었어.
고대사회로 올라갈수록 왕 한 사람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은 사실이야. 그렇다고 왕 혼자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나라가 흥하기도 하고 망한다고 보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백제를 멸망시킨 책임이 전체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게 되겠지. 또 부여 시대에 백제가 어떤 상황이었고 백제와 고구려, 신라의 관계와 삼국을 둘러싼 국제질서는 어땠는지, 백제의 군사력은 어느 수준이었고, 신라와 당나라의 힘은 얼마큼 컸는지 따져보지 못하게 만들어. 헛소문, 유언비어, 꾸며낸 이야기, 전설을 사실로 믿어버리면 그때 역사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도 제대로 보기 힘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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