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14일부로 내란죄 피의자인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심판이 시작됐다. 현재까지 윤석열 쪽 변호인들이 펼친 전략은 끊임없는 ‘트집 잡기’다. 우격다짐을 정당한 법적 논쟁처럼 연출하며 심판을 꾸준히 지연시키려 한다. 헌법재판소의 권위를 흔들고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목표다. 하지만 헌재는 변론 두 차례 만에 윤석열 쪽이 생산한 법적 쟁점을 모두 일축했다.
탄핵 위기에 놓인 윤석열을 구하는 데 가장 필요한 수단은 시간과 선동이다. 심판 기간이 길어지면 지지자를 결집하기 유리하고, 자극적으로 선동하면 헌재의 법적 권위가 흔들린다. 윤석열의 법률대리인단이 연일 재판과 기자회견에서 “헌재가 월권” “대통령은 고립된 약자” “법 위배” “편법적” 등 거친 언어를 쏟아내는 이유다.
‘재판관 흠집 내기’도 그중 하나다. 이들은 헌법재판관 8명 중 정계선 재판관을 콕 집어 ‘이 판사에게 재판받지 않겠다’(기피 신청)는 의사를 밝혔다. 정 재판관이 “법원 내 진보적 성향을 가진 우리법연구회의 회원이자 회장을 역임”했고 “인사청문회에서 (내란죄) 법률적 판단에 예단을 드러냈다”는 등의 이유를 댔다. 또 정 재판관의 배우자가 소속된 공익인권법재단의 이사장이 국회 쪽 대리인 김이수 변호사라는 점도 기피 사유라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법 제24조 3항에 따라 당사자는 ‘재판관에게 공정한 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경우’ 기피 신청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헌재는 윤석열 쪽이 제시한 사유만으론 “공정한 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객관적 사정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1월14일 신청을 기각했다. 정 재판관을 제외한 7명 재판관이 만장일치로 내린 결론이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대리인단도 마지막 변론을 앞두고 강일원 재판관에 대해 기피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리인단의 ‘헌재 흔들기’는 적어도 헌재 밖에서는 효과를 봤다. 보수 유튜브 등이 ‘정계선 재판관에게 재판받으면 안 되는 이유’ 등의 영상을 만들어 정 재판관을 일제히 공격한 것이다.
윤석열 쪽은 ‘재판이 너무 빠르다’며 재판 절차를 문제 삼는 지엽적 논쟁도 벌였다. 헌재는 2024년 12월27일과 2025년 1월3일 두 차례 변론준비기일(변론에 들어가기 전 쟁점을 정리하는 절차)을 연 뒤, 다음 변론기일을 한꺼번에 지정했다(1월14일~2월4일). 그러자 윤석열 쪽 대리인단은 ‘재판 날짜를 왜 이렇게 빨리 잡느냐’며 이의를 제기했다.
윤석열 쪽 대리인단은 헌재가 변론기일 날짜를 한꺼번에 지정할 땐 당사자(윤석열)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재가 형사소송법에 따라 탄핵심판 절차를 밟게 돼 있으니, 관련 하위 규칙도 모조리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재판장이 여러 공판기일을 일괄 지정할 경우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형사소송규칙 제124조의 2를 근거 삼았다.
그러나 피고인의 형사처벌 여부를 가리는 형사법정과 달리, 헌재는 피청구인의 헌정 질서 훼손 여부를 가리는 게 목적이다. 고유한 목적과 기능에 맞게 운영해야 할 탄핵심판을 형사법정과 똑같이 운영한다면 탄핵심판은 따로 존재할 이유가 없다.
“헌법 소송이 민사·형사소송보다 나중에 등장한 제도라 공통된 재판 절차를 따로 만들지 않고 민·형법을 준용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헌법재판의 성질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하는 것이다. 탄핵심판 목적에 맞게 형사소송법을 차용하라는 것이지 모든 조항을 기계적으로 형사재판처럼 하라는 뜻은 아니다.” 헌법재판연구원장을 지낸 김하열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의 말이다.
헌재도 이 점을 분명히 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윤석열 쪽 대리인단의 이의신청을 기각하며 1월14일 변론기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변론기일 일괄 고지·지정은 헌법재판소법 제30조 3항, 헌법재판소 심판 규칙 제21조 1항에 근거한 것이며 형사소송 규칙을 적용한 바가 없다. 왜냐하면 여기는 헌법재판소이지 형사 법정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판 진행에 있어 형사소송법이 아닌 헌재법과 헌재규칙을 적용할 것임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앞서 정형식 재판관도 12월27일 첫 변론준비기일에서 “탄핵심판은 형사소송의 피고인 권리 보호와는 다르다. 헌법 질서 유지가 가장 큰 목적”이라며 “어느 면에서는 엄밀하게 증거를 따지면서 피고인의 권리 보호를 형사소송처럼 보장해드리긴 어렵다. (피청구인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겠지만 협조해주셔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쪽 대리인단은 현재 수사 중인 내란죄 관련 기록을 탄핵심판에 활용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펼쳤다. 신속한 재판 진행을 위해선 앞서 검찰 등이 수사로 파악한 피의자 진술조서 등을 함께 봐야 한다. 수사기관이 이미 수사한 사람에 대해 헌재에서 동일한 내용으로 다시 따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국회 쪽이 수사기록 사본을 확보해 달라고 헌재에 신청하니 윤석열 대리인단이 막아섰다. ‘재판·소추 또는 범죄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 기록에 대해선 송부를 요구할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법 제32조 단서조항을 내세웠다.
헌재는 이 역시 ‘문제없다’고 일축했다. 해당 조항은 수사기록 원본을 전제로 하는데 헌재가 받아본 자료는 사본(인증등본)이라서다. 헌재는 이런 시비에 대응해 ‘원본이 아닌 사본 요청(인증등본 문서 송부촉탁)은 가능하다’는 헌재심판규칙도 미리 만들어둔 터다.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당사자 신청에 따라 실시하는 문서송부촉탁은 헌법 제10조 1항, 헌재심판규칙 제39조 1항과 제40조에 근거한 것이다. 헌재법 제32조 단서 위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1월13일 기자 브리핑에서 밝혔다. 2017년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도 같은 논쟁을 벌였으나 기각됐다.
‘내란죄를 철회할 거면 국회 탄핵소추안도 다시 의결하라’는 윤석열 쪽 대리인단의 주장도 여론 호도라는 비판을 받는다. 1월3일 2차 변론준비기일 때 국회 쪽 대리인단은 “형법과 헌법을 위반한 사실관계가 사실상 동일하다”며 “자칫 이 헌법재판이 형법 위반 여부에 매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헌법 위반 사실관계로서 다루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윤석열의 내란 등 행위가 형법과 헌법 둘 다 적용 가능하니 탄핵심판 성격에 맞게 헌법으로 통일하겠단 취지다. 실제 국회 쪽 대리인단은 1월16일 2차 변론기일에서 헌법 위배에 초점을 맞추어 대통령 윤석열의 비상 계엄 선포 행위 등을 설명했다.
그러자 윤석열 쪽 대리인단은 “형법 위반을 철회한다면 국회의 새로운 의결을 받아야 한다”고 맞대응했다. 마치 윤석열의 내란죄 혐의가 아예 탄핵 사유에서 빠져서 소추안도 바꿔야 하는 것처럼 논쟁을 붙인 것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기다렸다는 듯 “(내란 혐의) 핵심을 제외한다면 ‘앙꼬 없는 찐빵'이 아니라 ‘찐빵 없는 찐빵'”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헌법학자들은 이 사안이 논쟁거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해당 논란에 대해 “내란죄는 형법이 적용되니 형사재판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헌재 심판에서) 이건 제외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1월8일 ‘12·3 비상계엄 사태와 헌정 회복을 위한 과제’ 토론회) 헌법연구원장 출신인 김하열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동일한 사실에 관해 헌법 위반과 형법 위반이라는 평가가 동시에 가능할 때 헌재로서는 형법 문제는 그 전문가 법원에 맡기고 헌법 위배 심리에 집중함이 사법기관 간 권한 배분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사안들이 언뜻 보면 법률 논쟁 같지만, 실제로 윤석열 쪽 대리인단이 노리는 것은 딴 데 있다. 끊임없이 논쟁을 일으켜 헌재의 법적 정당성을 폄하하고 지지세를 결집할 시간을 버는 것이다. 윤석열 쪽은 1월16일 2차 변론기일에서도 부정선거 음모론을 줄줄이 나열하고 야당을 향해 거친 말을 쏟아냈다.
“지금 대통령 변호인단들의 궤변에 가까운 주장을 보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을 완전히 흔들고 공정성과 신뢰성을 훼손시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 헌재에서 파면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승복하지 않겠다며 지지자들을 결집할 가능성도 크다. 그건 헌정 질서를 완전히 파괴하는 행위다.” 노희범 전 헌법연구관의 말이다.
노 전 연구관은 “언론이 (대통령) 대리인단 발언으로 속보·단독 경쟁하는 것도 문제다. 궤변 중의 궤변을 마치 특종인 양 앞다퉈 소개하니까 신빙성 있는 말처럼 들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언론이 차분히 각 주장의 신빙성이나 법리에 대해 정확하게 따져보고 전달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본격적인 증인신문은 1월23일부터 이뤄진다.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등이 출석한다. 헌법재판소는 국회 추천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인 마은혁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의 헌법재판관 임명 권한을 다룬 권한쟁의심판도 심리하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마지막까지 임명을 미룬 헌법재판관 후보자다. 마 부장판사가 헌법재판관이 된다면 헌재는 ‘완전체’인 9명 체제로 갈 수 있다. 윤석열 쪽은 공수처의 2차 체포 영장이 적법한가에 관한 권한쟁의심판을 헌재에 신청했다. 이에 대해서도 “적법요건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고 헌재는 밝혔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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